<?xml version="1.0"?>
<feed xmlns="http://www.w3.org/2005/Atom" xml:lang="ko">
		<id>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action=history&amp;feed=atom&amp;title=%EC%97%AC%EC%95%85%28%E5%A5%B3%E6%A8%82%29</id>
		<title>여악(女樂) - 편집 역사</title>
		<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action=history&amp;feed=atom&amp;title=%EC%97%AC%EC%95%85%28%E5%A5%B3%E6%A8%82%29"/>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title=%EC%97%AC%EC%95%85(%E5%A5%B3%E6%A8%82)&amp;action=history"/>
		<updated>2026-06-03T12:29:43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generator>MediaWiki 1.27.3</generator>

	<entry>
		<id>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title=%EC%97%AC%EC%95%85(%E5%A5%B3%E6%A8%82)&amp;diff=13670&amp;oldid=prev</id>
		<title>Silman: XML 가져오기</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title=%EC%97%AC%EC%95%85(%E5%A5%B3%E6%A8%82)&amp;diff=13670&amp;oldid=prev"/>
				<updated>2018-01-05T05:38:29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의식행사|대표표제=여악|한글표제=여악|한자표제=女樂|대역어=|상위어=|하위어=|동의어=|관련어=관기(官妓), 여기(女妓), 정재(呈才)|분야=문화/예술/음악|유형=의식·행사|지역=대한민국|시대=조선~대한제국기|왕대=조선~대한제국기|집필자=이정희|시작시기=|시행시기=|시행기관=|시행장소=|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5229|실록연계=}}&lt;br /&gt;
&lt;br /&gt;
궁중 연향에 동원되어 기악·노래·춤을 연행했던 여성 예능인 또는 그녀들이 연행했던 재예(才藝).&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여악(女樂)은 궁중과 지방 관청의 연회에서 기악[樂]·노래[歌]·춤[舞]을 공연하여 잔치의 흥겨운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중심 역할을 했던 관기(官妓)이다. 흔히 [[여기(女妓)]]라고 부른다. 한편으로 그녀들의 공연 자체를 일컫기도 한다.&lt;br /&gt;
&lt;br /&gt;
=='''연원 및 변천'''==&lt;br /&gt;
&lt;br /&gt;
여악은 경기 지역과 기타 지방에 각각 소속되어 있었다. 이러한 틀은 고려시대로부터 전래되었다. 즉 조선의 관기 제도는 고려에서 전해진 것이다. 그녀들은 평생 관에 예속되어 기예(技藝)를 펼치며 살았다. 현재의 관점에서는 전문성을 지닌 여성 예술가로 평가될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사회적 위상이 높지 않았다.&lt;br /&gt;
&lt;br /&gt;
그중 미모와 재능이 뛰어난 이는 [[종친(宗親)]]의 첩이 되기도 하였다. 드물지만 궁중 연향에서 탁월한 예술적 기량을 보인 경우 [[면천(免賤)]]되는 특별 보상이 제공되기도 하였다.&lt;br /&gt;
&lt;br /&gt;
한편 조선후기에는 여악의 인원이 부족한 경우 [[혜민서(惠民署)]], [[내의원(內醫院)]], [[제생원(濟生院)]] 소속의 [[의녀(醫女)]]나 [[상의원(尙衣院)]]의 침선비에게 춤을 가르쳐 임시로 여악의 기능을 맡기기도 하였다.&lt;br /&gt;
&lt;br /&gt;
궁중 연향에서 활약했던 여악의 이름과 그녀들이 공연했던 기악·노래·춤에 관한 상세한 정보는 궁중 연향의 전모를 기록한 여러 [[의궤(儀軌)]]에 기록되어 있다.&lt;br /&gt;
&lt;br /&gt;
궁중과 지방의 연회에 동원되던 여악은 갑오개혁 때에 이르러 제도적으로 신분이 해방되었다. 그러나 관습적으로 대한제국기까지 궁중 연향에 동원되었으며, 서양에서 온 외교관을 위해 설행하는 근대식 연회에서 정재를 연행하기도 하였다. 특히 여악이 추는 검무(劍舞)는 서양인들에게 인기가 많았다.&lt;br /&gt;
&lt;br /&gt;
=='''절차 및 내용'''==&lt;br /&gt;
&lt;br /&gt;
[[경기(京妓)]]와 [[향기(鄕妓)]]로 구성되었던 여기들은 궁중에 연향이 설행될 경우에만 서울로 올라와 지내면서 평소에 익혔던 기악·노래·춤을 [[장악원(掌樂院)]]에서 재교육받은 후 궁중에 투입되었다. 주로 자질과 특기가 뛰어난 이들이 선발되어 궁중 연향의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lt;br /&gt;
&lt;br /&gt;
그녀들의 장기(長技)는 [[정재(呈才)]]였다. 조선시대 궁중 연향에 선보인 정재 종목은 30여 가지가 넘을 정도로 다양했는데 바로 그 춤을 여악, 즉 여기들이 연행하였다. 미색이 수려한 여악들은 신하들과 종종 문제를 일으키곤 하여, 여악 폐지론이 조선시대에 빈번하게 거론되었다. 그러므로 이들을 주로 궁중 여인들이 참석했던 [[내연(內宴)]]에서 공연하게 하였다.&lt;br /&gt;
&lt;br /&gt;
여악이 공연했던 궁중 정재 중 가장 인기를 끌었던 종목은 [[무고(舞鼓)]]·선유락(船遊樂)·포구락(抛毬樂)이었다. 또한 여기들이 지방에서 특화한 정재가 궁중으로 유입되기도 하였는데 그 예로 검무(劍舞)를 꼽을 수 있다. 즉 여악은 중앙과 지방의 공연문화를 연결해주는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 이들이며, 대한제국기에 서양인들에게 한국의 궁중 정재를 통해 문화 외교를 수행했던 장본인이었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경국대전(經國大典)』      &lt;br /&gt;
*『기안(妓案)』      &lt;br /&gt;
*『악학궤범(樂學軌範)』      &lt;br /&gt;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      &lt;br /&gt;
*『순조무자진작의궤(純祖戊子進爵儀軌)』      &lt;br /&gt;
*『순조기축진찬의궤(純祖己丑進饌儀軌)』      &lt;br /&gt;
*『헌종무신진찬의궤(憲宗戊申進饌儀軌)』      &lt;br /&gt;
*『교방가요(敎坊歌謠)』      &lt;br /&gt;
*『고종정축진연의궤(高宗丁丑進宴儀軌)』      &lt;br /&gt;
*『고종정해진찬의궤(高宗丁亥進饌儀軌)』      &lt;br /&gt;
*『고종임진진찬의궤(高宗壬辰進饌儀軌)』      &lt;br /&gt;
*『고종신축진찬의궤(高宗辛丑進饌儀軌)』      &lt;br /&gt;
*『고종신축진연의궤(高宗辛丑進宴儀軌)』      &lt;br /&gt;
*『고종임인진연의궤(高宗壬寅進宴儀軌)』      &lt;br /&gt;
*국립고궁박물관,『조선 궁중의 잔치, 연향』, 글항아리, 2013.      &lt;br /&gt;
*김종수, 『조선시대 궁중연향과 여악연구』, 민속원, 2001.      &lt;br /&gt;
*이재숙, 『조선조 궁중의례와 음악』,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8.      &lt;br /&gt;
*한국학중앙연구원, 『조선후기 궁중연향문화』 1~3, 민속원, 2005.      &lt;br /&gt;
*권도희, 「20세기 기생의 음악사회사적 연구」, 『한국음악연구』 29집 , 한국국악학회, 2001.      &lt;br /&gt;
*이정희,  「개항기 근대식 궁정연회의 성립과 공연문화사적 의의」,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0.      &lt;br /&gt;
*조경아, 「조선후기 의궤를 통해 본 정재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9.      &lt;br /&gt;
&lt;br /&gt;
=='''관계망'''==&lt;br /&gt;
&amp;lt;html&amp;gt;&amp;lt;script&amp;gt;function reload() {window.location.reload();} &amp;lt;/script&amp;gt;&amp;lt;input type=&amp;quot;button&amp;quot; value=&amp;quot;Graph&amp;quot; onclick=&amp;quot;reload();&amp;quot;&amp;gt;&amp;lt;iframe width=&amp;quot;100%&amp;quot; height=&amp;quot;670px&amp;quot; src=&amp;quot;http://encysilloknetwork.aks.ac.kr/Content/index?id=na00015229&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분류:문화]][[분류:예술]][[분류:음악]][[분류:의식·행사]][[분류:대한민국]][[분류:조선~대한제국기]][[분류:조선~대한제국기]]&lt;/div&gt;</summary>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f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