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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여사(女士)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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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05T21:36:40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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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ilman: XML 가져오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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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8-01-01T12:09:4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개념용어|대표표제=여사|한글표제=여사|한자표제=女士|대역어=|상위어=|하위어=|동의어=|관련어=선비, 여중군자(女中君子)|분야=사회/사회구성원|유형=개념용어|지역=|시대=조선|왕대=|집필자=이남희|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5067|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da_11508115_003 『세종실록』 15년 윤8월 15일]}}&lt;br /&gt;
&lt;br /&gt;
성리학의 이념을 실천하는 여성 선비.&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조선 사회는 유교 문화에 바탕을 둔 남성 중심 혹은 남성 우위의 사회였다. 그런데 자신들의 지식과 학문을 바탕으로 자신을 둘러싼 생활 세계와 사회에 대해서 독자적인 의식을 가지고 학문 세계를 구축하는 여성들도 나타났다. 그들은 한문을 읽고 쓸 수 있었으며, 나아가 유교적인 소양을 갖추고 있었고, 개인 시문집도 남겼다. 독서와 학문을 통해서 유교가 추구하는 인격적인 완성을 추구하고자 한 여사(女士), 즉 여성 선비였다.&lt;br /&gt;
&lt;br /&gt;
=='''담당 직무'''==&lt;br /&gt;
&lt;br /&gt;
여사라는 용어는 고대 중국의 경서 『시경(詩經)』「대아(大雅)」, 「생민지십(生民之什)」, 「기취(旣醉)」편에 이미 나타나고 있다. 주석을 보면, &amp;quot;여사는 여자로서 사행(士行)이 있는 자&amp;quot;라고 적고 있다. 기원전부터 여사라는 용어가 사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조선왕조실록』에서 처음으로 여사, 여성 선비 용례가 나타나는 것은 세종조이다. &amp;quot;친족을 잘 보살피고 가정을 다스림에 항상 자비롭고 화목한 생각이 간절하였고, 홀몸이 되어서 한결같은 마음으로 절개를 지킨&amp;quot; 신안택주(信安宅主)를 여사라고 칭하고 있다([http://sillok.history.go.kr/id/kda_11508115_003 『세종실록』 15년 윤8월 15일]).&lt;br /&gt;
&lt;br /&gt;
『조선왕조실록』에서 여사 용례를 보면, 자신의 결백을 밝히기 위해서 죽은 14살짜리 홍처민(洪處敏)의 딸, 왕후와 왕대비 및 대왕대비, 관찰사김보택(金普澤)의 아내, 이조 참의[[박신규(朴信圭)]]의 아내, 병사이헌의 처, 순종의 계비 황태후 등에 대해서 쓰고 있다. 여사라고 지칭되는 인물이 14살 여자아이에서 왕후와 대왕대비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lt;br /&gt;
&lt;br /&gt;
제시된 덕목으로는 &amp;quot;천성으로 부드럽고 아름다운 덕을 타고나서 일찍부터 공손하고 검소한 마음&amp;quot;을 가진 것, &amp;quot;친족을 안보(安保)하고 가정을 다스림에 항상 자비롭고 화목한 생각이 간절하였고, 홀몸이 되어서 절개를 지키는 데 오로지 한결같은 마음이 더욱 굳건&amp;quot;한 것, &amp;quot;수렴청정을 하여 몹시 곤란했던 사세(事勢)를 크게 구제&amp;quot;한 것과 &amp;quot;현비(賢妃)로서 도와준 것이 컸고 성모(聖母)로서 성취시킨 것이 많&amp;quot;은 것, &amp;quot;천지 일월 같이 넓고 밝음으로 성인(聖人)의 배필이 되어 유유한정하게 부도(婦道)를 다하였으며, 단일 성장한 덕으로 내치(內治)를 다한 것&amp;quot;, &amp;quot;일상생활에서 행실이 아름다운 것&amp;quot; 등을 들고 있다.&lt;br /&gt;
&lt;br /&gt;
『승정원일기』에서는 『조선왕조실록』에 나온 문신 김보택의 처 이씨 외에 양성(陽城)의 선비 권두용의 처 이씨 사례가 보인다. 목숨을 끊어 마침내 큰 절개를 세운 김보택의 처 이씨의 사례와 같이 권두용의 처 이씨 또한 어려서부터 여사의 지조가 있었으며, 남편의 병으로 가세가 기운데다가 남편이 죽자 그 애달픔으로 인해서 죽었다는 것이다.&lt;br /&gt;
&lt;br /&gt;
그리고 순조대 수렴청정을 한 정순왕후(貞純王后)와 조선에서 유일하게 헌종과 철종 2대에 걸쳐 수렴청정을 하였던 순원왕후(純元王后)에 대해서도 여사라고 칭하고 있다.&lt;br /&gt;
&lt;br /&gt;
그런데 사행(士行)의 내역이 여성 신분에 따라 다르다는 점이 주목된다. 왕비, 대비, 왕대비 등의 왕실 여성에 대해서는 수렴청정의 다스림[治人]을 강조하고, 그 외에는 &amp;quot;시(詩)와 예(禮)를 행하는 훌륭한 여사로 내치(內治)를 다하였다.&amp;quot;, &amp;quot;지위가 높다고 해서 분노의 기색을 아랫사람에게 드러내지 않고 21년 동안 궁정에서 나쁘게 평가하는 말이 없었다.&amp;quot;고 하여 모범적인 행실을 칭찬하고 있다.&lt;br /&gt;
&lt;br /&gt;
사대부 집안의 부녀자에 대해서는 &amp;quot;청렴한 명성과 곧은 절개&amp;quot;, &amp;quot;남편이 죽고 장사를 지낸 뒤에 가사를 처리하고 의연히 자결&amp;quot;, &amp;quot;남편이 참화를 당하자 마침내 자살&amp;quot; 등 수절·절개의 사례로 여사를 칭하고 있다. 심지어 14살짜리를 여사로 칭한 사례에서도 &amp;quot;추악하게 무함하는 정신병자의 말을 한 번 듣고 자살하여 절개를 지켰다.&amp;quot;고 하였다. 이 점은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에 나타나는 여사 용례의 특징이라고 하겠다. 여성의 신분에 따라 사행(士行)의 내역이 달라진다는 것이다.&lt;br /&gt;
&lt;br /&gt;
이러한 점들을 볼 때 여사란 표현은 내용적으로 광범위하게 포괄적으로 쓰이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표현들은 조선후기 문집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여사로 평가되는 여성들의 덕목을 보면, 예와 법칙에 맞는 바른 생활, 정절과 순절, 효도와 공경, 내조와 근검절약 등을 거론하고 있다.&lt;br /&gt;
&lt;br /&gt;
=='''변천'''==&lt;br /&gt;
&lt;br /&gt;
조선후기에 접어들면서 당시 유행했던 여성들의 책 읽기와 글쓰기 열풍에 힘입어 여성도 점차로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런 여성 중에는 언문을 넘어서 한문을 읽고 쓰는 것이 가능한 사람들도 있었다. 자신들의 지식과 학문을 바탕으로 자신을 둘러싼 생활 세계와 사회에 대해서 독자적인 의식을 가지고 학문 세계를 구축해서 시문집을 남긴 여성도 있었다.&lt;br /&gt;
&lt;br /&gt;
예컨대 개인 문집 『윤지당유고』를 남긴 임윤지당(任允摯堂), 『의유당일기』를 남긴 남의유당(南意幽堂), 『태교신기(胎敎新記)』를 저술한 이사주당(李師朱堂), 『규합총서(閨閤叢書)』를 남긴 이빙허각(李憑虛閣), 『정일당유고』가 전해지는 강정일당(姜靜一堂), 시문집을 남긴 김호연재(金浩然齋), 시집을 남긴 김삼의당(金三宜堂)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시문을 넘어서 유교적인 소양을 갖추고 있던 지식인 여성들이었으며,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에 나오는 여사와는 다소 구별된다고 하겠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lt;br /&gt;
*『서경(書經)』      &lt;br /&gt;
*이해순, 『조선 후기 여성 지성사』,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07.      &lt;br /&gt;
*정형지 외 역주, 『17세기 여성 생활사 자료집 1~4』, 보고사, 2006.      &lt;br /&gt;
*황수연 외 역주, 『18세기 여성 생활사 자료집 1~8』, 보고사, 2010.      &lt;br /&gt;
*이남희, 「조선 후기의 ‘여사’와 ‘여중군자(女中君子)’개념 고찰: 지식인 여성 연구를 위한 시론적 접근」, 『역사와실학』47, 2012.      &lt;br /&gt;
*정해은, 「조선 후기 여성 실학자 빙허각 이씨」, 『여성과 사회』8, 1997.      &lt;br /&gt;
&lt;br /&gt;
[[분류:사회]][[분류:사회구성원]][[분류:개념용어]][[분류:조선]]&lt;/div&gt;</summary>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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