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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여관(女官)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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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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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ilman: XML 가져오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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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12-09T15:50:1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직역|대표표제=여관|한글표제=여관|한자표제=女官|대역어=|상위어=|하위어=|동의어=궁관(宮官), 궁녀(宮女), 내관(內官), 내명부(內命婦)|관련어=|분야=정치/행정/관속|유형=직역|지역=대한민국|시대=조선시대|왕대=조선시대|집필자=임혜련|제정시기=1428년(세종 10)|폐지시기=1910(융희4)|소속관서=내명부(內命婦)|관품=정일품∼종구품|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04493|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da_11003008_004 『세종실록』 10년 3월 8일], [http://sillok.history.go.kr/id/kda_11212116_003 『세종실록』 12년 윤12월 16일], [http://sillok.history.go.kr/id/kaa_10705111_002 『태조실록』 7년 윤5월 11일], [http://sillok.history.go.kr/id/kca_10103009_002 『태종실록』 1년 3월 9일], [http://sillok.history.go.kr/id/kca_10501015_003 『태종실록』 5년 1월 15일]}}&lt;br /&gt;
&lt;br /&gt;
조선시대 궁중에서 [[내명부(內命婦)]]의 품계(品階)를 받은 [[내관(內官)]]과 [[궁관(宮官)]].&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조선 왕조가 개창된 후 [[관계(官階)]]와 관직이 정비되면서 궁중의 여성들에게도 직제가 정비되었다. 궁중 여성들은 내명부의 품계를 받으며, 이는 크게 내관과 궁관으로 구분된다. 내관은 곧 왕과 세자의 후궁(後宮)인데 대전(大殿)과 세자궁(世子宮)으로 따로 규정되었다. 대전에는 정1품 빈(嬪)·종1품 [[귀인(貴人)]]·정2품 [[소의(昭儀)]]·종2품 [[숙의(淑儀)]]·정3품 소용(昭容)·종3품 [[숙용(淑容)]]·정4품 [[소원(昭媛)]]·종4품 [[숙원(淑媛)]]이 있었다. 세자궁에는 종2품 양제(良娣)·종3품 양원(良媛)·종4품 승휘(承徽)·종5품 소훈(昭訓)이 있었다.&lt;br /&gt;
&lt;br /&gt;
한편 대전과 세자궁에서 각각 품계를 받고 담당 직무에 종사하는 궁녀 조직을 궁관이라고 한다. 궁관으로는 대전에 정5품 [[상궁(尙宮)]]·[[상의(尙儀)]]부터 종9품 주변궁(奏變宮)까지가 있었고, 세자궁에 종6품 [[수규(守閨)]]·[[수칙(守則)]]에서 종9품 [[장의(掌醫)]]까지가 있었다.&lt;br /&gt;
&lt;br /&gt;
=='''담당 직무'''==&lt;br /&gt;
&lt;br /&gt;
대전 내관의 직무는 빈·귀인은 비(妃)를 보좌하고 무녀의 예를 논하는 것, 소의·숙의는 왕비 의례의 인도를 담당하는 것이었다. 소용·숙용은 제사와 빈객을 담당하였고, 소원·숙원은 [[연침(燕寢)]]과 명주, 모시 등 옷감을 다스려 헌공하게 하였다.&lt;br /&gt;
&lt;br /&gt;
대전 궁관의 직무를 살펴보면, 상궁은 중궁(中宮)의 인도를 맡고 궁내 문부(文簿)의 출입을 담당하던 정6품 사기(司記)와 선전(宣傳), 계품(啓稟)을 담당하던 정7품 [[전언(典言)]]을 통솔하였다. 상의는 의례의 기거(起居)를 담당하고 빈객·조현(朝見)·연회(宴會)를 담당하던 정6품 사빈(司賓)과 정7품 [[전찬(典贊)]]을 통솔하였다. 상복(尙服)은 의복과 장식품의 수량과 공급을 담당하였고, 의복과 수식(首飾)을 담당하는 정6품 사의(司衣), 고목(膏木)과 건즐(巾櫛)을 담당했던 정7품 [[전식(典飾)]]을 통솔하였다. [[상식(尙食)]]은 반찬과 음식의 공급을 담당하였고, 반찬을 만들던 정6품 사선(司膳), 약을 담당하던 정7품 [[전약(典藥)]]을 통솔하였다. [[상침(尙寢)]]은 잠자리와 진어(進御)의 차례를 담당하였고, 장막 등의 설치를 담당하던 정6품 사설(司設), 등촉을 담당하였던 정7품 [[전등(典燈)]]을 통솔하였다. [[상공(尙功)]]은 여공(女功)의 과정을 담당하였고, 의복과 재봉을 담당하던 정6품 사제(司製), 옷감을 담당하던 정7품 전채(典綵)를 통솔하였다. 이상의 각 궁관을 통솔하던 6명을 6상(尙)이라 하였다. 상정(尙正)은 궁관들의 규율과 금령, 적벌을 맡았다. [[전정(典正)]]은 상정을 보좌하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da_11003008_004 『세종실록』 10년 3월 8일]).&lt;br /&gt;
&lt;br /&gt;
세자궁의 궁관이 담당하였던 직무로 수규는 세자빈을 인도하였고, 문서의 출납을 담당하던 [[장정(掌正)]], 서적과 교학을 담당하던 [[장서(掌書)]]를 통솔하였다. 수칙은 의례와 그 참견(參見)의 직무를 담당하였고 개봉(改封)과 길쌈을 맡은 [[장봉(掌縫)]], 재산을 관리하던 [[장장(掌藏)]]을 통솔하였다. [[장식(掌食)]]은 음식과 술, 등불을 담당하였고, 장의는 약을 담당하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da_11212116_003 『세종실록』 12년 윤12월 16일]).&lt;br /&gt;
&lt;br /&gt;
=='''변천'''==&lt;br /&gt;
&lt;br /&gt;
태조대에는 여관을 쓸데없는 관원이라 인식하여 제거하자는 건의가 있었다([http://sillok.history.go.kr/id/kaa_10705111_002 『태조실록』 7년 윤5월 11일]). 그러나 태종이 즉위한 후 태상전(太上殿)의 여관에게 월봉(月俸)을 지급하였으며, 현의(賢儀)·[[숙의(淑儀)]]·찬덕(贊德)·순덕(順德)·사의(司儀)·사침(司寢) 등의 여관을 두었다([http://sillok.history.go.kr/id/kca_10103009_002 『태종실록』 1년 3월 9일]), ([http://sillok.history.go.kr/id/kca_10501015_003 『태종실록』 5년 1월 15일]). 여관을 내관과 궁관으로 체계적으로 정비한 것은 세종이 즉위한 후 당나라 제도를 참고하면서 이루어졌다.&lt;br /&gt;
&lt;br /&gt;
1428년(세종 10)에 만들어진 내명부 직제는 관품과 명칭이 변하다가 『경국대전』에 법제화되었다. 세종 때 정5품이었던 상복·상식·상침은 종5품과 정6품으로 품계가 변경되었으며, 궁정(宮正)은 종6품으로 품계의 변화와 함께 명칭도 상정으로 바뀌었다. 사기·사빈·사의·사선·사설·사제는 명칭이 [[상기(尙記)]]·[[전빈(典賓)]]·[[전의(典衣)]]·[[전선(典膳)]]·전설(典設)·[[전제(典製)]]로 바뀌었고, 관품도 모두 정6품이었던 것이 종6품에서 종7품까지로 조정되었다. 전언·전찬·전식·전약·전등·전채·전정은 정7품이었던 것이 종7품부터 종8품까지 관품이 조정되어 법제화되었다. 또한 『경국대전』에는 정9품의 주궁(奏宮)·주상(奏商)·주각(奏角)과 종9품 주변징(奏變徵)·주징(奏徵)·주변궁의 궁관직도 추가로 설치되었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경국대전(經國大典)』      &lt;br /&gt;
*한우근 외 역;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인문연구실 편, 『(역주)경국대전: 주석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7.      &lt;br /&gt;
&lt;br /&gt;
[[분류:정치]][[분류:행정]][[분류:관속]][[분류:직역]][[분류:대한민국]][[분류:조선시대]][[분류:조선시대]]&lt;/div&gt;</summary>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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