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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애사(哀辭)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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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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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ilman: XML 가져오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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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개념용어|대표표제=애사|한글표제=애사|한자표제=哀辭|대역어=|상위어=문체(文體)|하위어=|동의어=|관련어=제문(祭文), 조문(弔文), 뇌(誄)|분야=문화/인문학/어문학|유형=개념용어|지역=대한민국, 중국|시대=조선|왕대=|집필자=심경호|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1962|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da_10606016_004 『세종실록』 6년 6월 16일], [http://sillok.history.go.kr/id/ksa_11004003_001 『숙종실록』 10년 4월 3일]}}&lt;br /&gt;
&lt;br /&gt;
죽은 사람에 대한 애도의 정을 나타내는 문체.&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애사(哀辭)는 제문(祭文)·조문(弔文)·뇌(誄) 등과 같거나 유사한 문체로, 한나라 때의 역사가 반고(班固)가 양씨(梁氏)의 애사를 지은 것이 그 시초로 꼽힌다. 중국 양(梁)나라 때의 문학가 유협은 『문심조룡(文心雕龍)』 「애조(哀弔)」에서 &amp;quot;애사의 본질은 심정 면에서는 통상(痛傷)을 주안으로 하고, 문사 면에서는 애석(愛惜)의 느낌을 철저하게 표현함에 있다.&amp;quot;고 설명하였다.&lt;br /&gt;
&lt;br /&gt;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제문은 춘추시대에 비롯되었다. 진(秦)나라 목공이 죽자 대부 자거씨(子車氏)의 세 아들을 순장하였는데, 사람들이 그들의 죽음을 슬퍼하며 그들을 위해 『시경』「진풍(秦風)」의 「황조(黃鳥)」를 지었다고 한다. 그 후 신명(神明)에게 고하여 비는 축사(祝詞)가 나오게 되었고, 죽은 이의 공적을 드러내고 애도하는 뇌, [[사부(辭賦)]]에서 파생된 애사, 조문 등이 발달하였다.&lt;br /&gt;
&lt;br /&gt;
=='''내용 및 특징'''==&lt;br /&gt;
&lt;br /&gt;
애사는 원래 스무 살에 이르지 못하고 요절한 사람을 애도하는 글이다. 『문심조룡』에서는 &amp;quot;어려서 죽은 사람에게는 ‘애(哀)’라는 시호를 붙인다.&amp;quot;고 하였다. 조비의 「금호애사(金瓠哀辭)」, 조식의 「행녀애사(行女哀辭)」, 반악의 「금록애사(金鹿哀辭)」와 「택란애사」 등은 모두 요절한 사람을 애도하는 명편이다. 그에 비해 반악의 「애영서문(哀永逝文)」처럼 죽음 자체에 대해 쓴 글도 있다. 또 안연지(顔延之)의 「송문황제원황후애책문(宋文皇帝元皇后哀策文)」은 황후의 덕을 찬미하는 것을 위주로 하면서 애도의 뜻을 나타낸 작품이다.&lt;br /&gt;
&lt;br /&gt;
명나라의 서사증(徐師曾)이 지은 『문체명변』「애사」에 보면, 혹은 재주는 있었지만 쓰이지 못한 것을 애처로워하고, 혹은 덕망이 있었으나 장수하지 못한 것을 애통해한 글이라고 했다. 또 대상자가 어려서 덕을 이루지 못하였으면 총명하고 지혜가 있었다는 정도로만 칭찬하고, 나약해서 일을 감당하지 못하였으면 애도하는 마음을 표정에다 더하여 쓰는 것이라고 하였다.&lt;br /&gt;
&lt;br /&gt;
=='''변천'''==&lt;br /&gt;
&lt;br /&gt;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경덕왕 때 월명사가 지은 향가체의 「제망매가(祭亡妹歌)」가 애사의 시초라 할 수 있다. 또 최치원(崔致遠)은 오방·토지·산신에게 올리는 제문을 한문으로 지었다. 그 뒤 한문으로 된 애제문이 많이 창작되어, 『동문선(東文選)』에는 많은 제문과 애사가 함께 수록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유교식 제사가 정착되면서 애제문이 발달하였고, 그에 따라 애사도 많이 창작되었다([http://sillok.history.go.kr/id/kda_10606016_004 『세종실록』 6년 6월 16일]) ([http://sillok.history.go.kr/id/ksa_11004003_001 『숙종실록』 10년 4월 3일]).&lt;br /&gt;
&lt;br /&gt;
한편, 조선시대 후기의 학자인 이건창(李建昌)은 강화 사기리에 거처하면서, 당대에 순국하거나 충절을 다한 인물들을 위해 여러 가지 글을 남겼다. 그 가운데 1871년(고종 8) 신미양요 때, 진무중군(鎭撫中軍)으로서 [[광성보(廣城堡)]]에서 미국군에 맞서 항전하다가 장렬하게 전사한 어재연(魚在淵)을 애도하기 위해 지은 「진무중군어공애사(鎭撫中軍魚公哀辭)」가 있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문체명변(文體明辨)』      &lt;br /&gt;
*「애사(哀辭)」      &lt;br /&gt;
&lt;br /&gt;
[[분류:문화]][[분류:인문학]][[분류:어문학]][[분류:개념용어]][[분류:대한민국, 중국]][[분류:조선]]&lt;/div&gt;</summary>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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