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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심명세(沈命世)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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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인명사전|대표표제=심명세|한글표제=심명세|한자표제=沈命世|이칭=|대역어=|상위어=|하위어=|동의어=|관련어=|분야=정치·행정가/관료/문신|유형=인물|지역=한국|시대=조선|왕대=선조~인조|집필자=장준호|자= 덕용(德用) |호=|봉작= 청운군(靑雲君) |시호=|출신=양반|성별=남자|출생=1587년(선조 20)|사망=1632년(인조 10) 4월 4일|본관=청송(靑松)|주거지= 서울 |묘소소재지=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홍호리|증조부= 심강(沈鋼) |조부= 심의겸(沈義謙) |부= 심엄(沈㤿) |모_외조=능성 구씨(綾城具氏) : 구사맹(具思孟)의 딸|형제=(형)심광세(沈光世), 심정세(沈挺世) (동생)심장세(沈長世), 심안세(沈安世), 심필세(沈弼世), 심희세(沈凞世)|처_장인=완산 이씨(完山李氏) : 이유청(李幼淸)의 딸 →(자녀)1남 1녀|자녀=(양자)심격(沈格)|유명자손=|저술문집=|작품=|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10000919|실록연계=}}&lt;br /&gt;
&lt;br /&gt;
=='''총론'''==&lt;br /&gt;
&lt;br /&gt;
[1587년(선조 20)∼1632년(인조 10) = 46세]. 조선 중기 선조(宣祖)~인조(仁祖) 때의 문신. 형조 [[좌랑(佐郞)]]과 공조 [[참판(參判)]]을 역임하였다. 자는 덕용(德用)이다. 본관은 청송(靑松)이고 주거지는 서울이다. 아버지는 현감(縣監)심엄(沈㤿)이고, 어머니 능성 구씨(綾城具氏)는 능안부원군(綾安府院君)[[구사맹(具思孟)]]의 딸이다. 할아버지는 [[참판(參判)]]심의겸(沈義謙)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청릉부원군(靑陵府院君)[[심강(沈鋼)]]이다. 어머니의 친언니가 인조의 어머니인 인헌왕후(仁獻王后)이다.&lt;br /&gt;
&lt;br /&gt;
=='''인조시대 활동'''==&lt;br /&gt;
&lt;br /&gt;
심명세(沈命世)의 형인 심정세(沈挺世)는 인목대비(仁穆大妃)의 언니와 혼인을 하였는데, 1613년(광해군 5) &amp;lt;계축옥사(癸丑獄事)&amp;gt; 당시 영창대군(永昌大君)의 추대에 참여하였다는 죄명으로 고문을 받다가 세상을 떠났다.[『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광해군 5년 5월 18일, 광해군 5년 5월 24일] 그러면서 심명세의 집안도 화(禍)를 당하였고, 이에 심명세는 과거 공부를 버리고 객지로 떠돌아 다녔다.[『계곡집(谿谷集)』 권14 「청운군심공신도비명(靑雲君沈公神道碑銘)」 이하 「심명세신도비명」으로 약칭] 그런 가운데 1623년(인조 1) &amp;lt;[[인조반정(仁祖反正)]]&amp;gt;이 일어났다. 인조의 이종 사촌이었던 심명세는 유생의 신분으로 인조반정에 참여하여 큰 공을 세웠고, 이를 인정받아 형조 좌랑에 제수되었다.[『인조실록(仁祖實錄)』인조 1년 3월 17일, 인조 1년 3월 25일, 인조 10년 4월 4일] 이어 인조반정 때 공을 세운 공신 53명을 녹훈하였는데, 심명세는 김류(金瑬) 등과 함께 [[정사공신(靖社功臣)]] 1등에 책록되었으며, 아울러 청운군(靑雲君)에 봉해졌다.[『인조실록』인조 1년 윤10월 18일, 인조 1년 윤10월 19일, 『계해정사록(癸亥靖社錄)』]&lt;br /&gt;
&lt;br /&gt;
1624년(인조 2) &amp;lt;이괄(李适)의 난(亂)&amp;gt;이 발생하자 심명세는 운검(雲劒)이 되어 인조를 호종하였으며, 난이 진압된 후 가의대부(嘉義大夫)에 올라 공조 참판으로 호위장(扈衛將)을 겸하였고, 어영부사(御營副使)를 역임하기도 하였다.[『인조실록』인조 2년 7월 29일, 인조 2년 10월 11일, 「심명세신도비명」] 이듬해인 1625년(인조 3) 세자빈(世子嬪)을 책봉하였는데, 이때 인조는 [[윤의립(尹毅立)]]의 딸을 3차 간택에 포함시키도록 하였다.[『묵재일기(黙齋日記)』 권2 「편당논변(偏黨論辨)」] 그런데 윤의립의 사촌 오빠인 윤인발(尹仁發)이 이괄의 난에 연루되어 죽음을 당하였고, 아버지인 윤의립도 역모와 연루되어 면직을 당한 적이 있었다.[『인조실록』인조 3년 7월 28일] 이러한 이유를 들어 심명세는 김자점(金自點)과 함께 윤의립의 딸을 세자빈으로 간택하는 것을 반대하였고, 인조도 공의(公義)를 꺾을 수 없어 마침내 이 혼인은 중단되었다.[『인조실록』인조 3년 7월 28일, ] 이러한 과정에서 심명세는 인조의 뜻을 알지 못한 채 오만하였다고 하여, 충주(忠州)로 유배되었다.[『인조실록』인조 3년 8월 27일, 「심명세신도비명」] 이후 [[사간원(司諫院)]]을 비롯하여 [[신흠(申欽)]] 등이 그의 죄를 거두어 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이루어지지 않았다.[『인조실록』인조 3년 8월 29일, 인조 3년 9월 6일]&lt;br /&gt;
&lt;br /&gt;
1626년(인조 4) 인조의 어머니인 인헌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그해 4월 인조는 심명세가 유배를 간지 1년이 되어가는데다가, 인헌왕후가 조카들 가운데 심명세를 가장 아꼈다며 해배한 후에 [[회장(會葬)]]에 참여하게 하였다.[『인조실록』인조 4년 1월 14일, 인조 4년 4월 11일] 이후 1627년(인조 5) &amp;lt;[[정묘호란(丁卯胡亂)]]&amp;gt;이 발생하자, 심명세는 훈봉(勳封)이 회복되면서 호위장을 겸하였고, 강화도에서 환도한 후에는 [[내섬시(內贍寺)]][[제조(提調)]]가 되었다.[「심명세신도비명」] 그리고 이듬해인 1628년(인조 6) 자헌대부(資憲大夫)가 되었으며, 이후 원주목사(原州牧使)를 역임하였는데, 1630년(인조 8) 선조(宣祖)의 묘소인 [[목릉(穆陵)]]에 물이 찬다며 옮길 것을 주장하여 이에 대한 논의를 끌어냈다.[『인조실록』인조 6년 9월 26일, 인조 8년 2월 4일, 인조 8년 2월 30일] 그러나 목릉을 [[천장(遷葬)]]하는 과정에서 목릉에 물이 차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사헌부(司憲府)]]와 [[사간원(司諫院)]] 등에서 심명세의 처벌을 주장하였으나, 인조는 능 위에 물이 있었던 사실을 알린 것이므로 벌을 줄 수 없다며 따르지 않았다.[『인조실록』인조 8년 7월 13일, 인조 8년 11월 24일, 인조 8년 12월 3일, 인조 8년 12월 4일] 한편 심명세는 원주목사를 역임할 때부터 해수(咳嗽)를 앓았는데, 병이 더 심해지더니 1632년(인조 10) 4월 4일 4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인조실록』인조 10년 4월 4일, 「심명세신도비명」]&lt;br /&gt;
&lt;br /&gt;
=='''성품과 일화'''==&lt;br /&gt;
&lt;br /&gt;
심명세의 성품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전해진다. 사람됨이 조금 고지식하나 재물을 가벼이 여기고 의리를 좋아하였다. 일을 당하여서는 반드시 자기 견해를 고집하였는데, 사람들이 혹 이를 따르기도 하였다.[『인조실록』인조 10년 4월 4일] 또한 그 자질과 성품이 밝고 명석하였으며, 곧았고 행의(行誼)가 독실하였다. 계축옥사로 인해 둘째 형인 심정세가 죽고, 맏형인 [[심광세(沈光世)]]도 옥사에 연루되어 귀양을 가게 되는 사상(死喪)이 이어지자, 심명세는 그 가족들을 거두어 보살피며, 가사를 경영하였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그는 너무 슬퍼하여 몸을 상하기를 예에서 보다 더 하였다고 한다. 또한 광해군(光海君) 대에 인조의 동생 능창군(綾昌君)이 유폐되었다가 사망하였을 때, 핍박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친척들이 문상조차 하지 않았으나, 심명세는 직접 염까지 하여 묻어 주었다. 그리하여 원종(元宗)이 그 신의(信義)에 감동하여 항상 눈물을 흘렸다고 전한다.[「심명세신도비명」]&lt;br /&gt;
&lt;br /&gt;
또한 심명세는 재물을 가벼이 여겨 급한 사람의 액란(厄難)을 보살펴 주기를 좋아하였고, 사람들을 화에서 구해주고도 자신은 덕을 베푼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인조반정 이후 왕실과 가까운 척족의 신분으로 인조를 보좌하는 데 더욱 분발하고 힘을 기울였다. 그는 일을 만나면 강직한 말과 의논을 하였고, 나무라고 꾸짖는 것은 권귀(權貴)한 이들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였다고 한다. 한편 나라에 큰 일이 일어났을 때, 다른 사람들은 감히 나서서 말하지 못하는 것도 심명세는 서슴없이 다 하였다고 전한다.[「심명세신도비명」]&lt;br /&gt;
&lt;br /&gt;
=='''후손 및 묘소'''==&lt;br /&gt;
&lt;br /&gt;
심명세의 묘소는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홍호리에 있으며, 장유(張維)가 지은 신도비명(神道碑銘)이 남아 있다.&lt;br /&gt;
&lt;br /&gt;
심명세의 부인 완산 이씨(完山李氏)는 [[정랑(正郞)]]이유청(李幼淸)의 딸인데, 1남 1녀를 낳았으나, 모두 일찍 죽었다. 그래서 막내 동생인 심희세(沈凞世)의 아들 심격(沈格)을 후사로 삼았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lt;br /&gt;
*『인조실록(仁祖實錄)』      &lt;br /&gt;
*『계해정사록(癸亥靖社錄)』      &lt;br /&gt;
*『국조방목(國朝榜目)』      &lt;br /&gt;
*『국조보감(國朝寶鑑)』      &lt;br /&gt;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lt;br /&gt;
*『계곡집(谿谷集)』      &lt;br /&gt;
*『동춘당집(同春堂集)』      &lt;br /&gt;
*『묵재일기(黙齋日記)』      &lt;br /&gt;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lt;br /&gt;
*『우복집(愚伏集)』      &lt;br /&gt;
*『임하필기(林下筆記)』      &lt;br /&gt;
*『청음집(淸陰集)』      &lt;br /&gt;
&lt;br /&gt;
[[분류:정치·행정가]][[분류:관료]][[분류:문신]][[분류:인물]][[분류:한국]][[분류:조선]][[분류:선조~인조]]&lt;/div&gt;</summary>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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