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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시중(時中)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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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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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ilman: XML 가져오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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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12-09T17:33:4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개념용어|대표표제=시중|한글표제=시중|한자표제=時中|대역어=|상위어=|하위어=|동의어=|관련어=중용(中庸), 수성(守成)|분야=문화/인문학/유학|왕실/왕실문화|유형=개념용어|지역=|시대=|왕대=|집필자=김봉곤|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5122|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ca_10608024_003 『태종실록』 6년 8월 24일], [http://sillok.history.go.kr/id/kia_12301019_007 『성종실록』 23년 1월 19일], [http://sillok.history.go.kr/id/kva_10301023_001 『정조실록』 3년 1월 23일], [http://sillok.history.go.kr/id/kva_11504030_002 『정조실록』 15년 4월 30일], [http://sillok.history.go.kr/id/kva_11805025_002 『정조실록』 18년 5월 25일]}}&lt;br /&gt;
&lt;br /&gt;
상황에 맞게 대처하여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것.&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시중(時中)은 『중용』 2장의 &amp;quot;군자가 중용을 이룸은 때에 맞게 하기 때문이다[君子之中庸也 君子而時中]&amp;quot;라는 문장에서 비롯된다. 맹자는 여러 성인(聖人)을 열거하면서 공자를 &amp;quot;성인 중에서도 때에 딱 맞게 대처하신 분[聖之時者]&amp;quot;으로 이상화하였다. 백이(伯夷)〮 숙제(叔齊)는 성인 중 맑은 사람[聖之淸者], 이윤(伊尹)은 성인 중 맡길 만한 사람[聖之任者], 유하혜(柳下惠)는 성인 중 화합하는 사람[聖之和者]으로 처세가 고정되어 있는 데 비해 공자는 어느 때든 알맞게 하는 분으로 높이 받들어졌던 것이다.&lt;br /&gt;
&lt;br /&gt;
=='''내용 및 특징'''==&lt;br /&gt;
&lt;br /&gt;
조선시대에 시중이라는 말은 ‘때에 맞게 행한다’는 의미로 쓰였다. 조선 태종이 즉위하자 [[문하부(門下府)]] 낭사(郞舍)에서 [[종묘(宗廟)]]에 고하는 시기를 시중의 도에 맞추어 실시하자고 하였고, 태종이 양위하려고 하자 권근이 &amp;quot;진실로 나라가 태평한 때를 당하여 임기응변식의 권도(權道)를 쓰면 시중의 마땅함을 잃게 되어 재앙이 생긴다.&amp;quot;고 하며 반대하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ca_10608024_003 『태종실록』 6년 8월 24일]). 즉 나라가 태평한 때에는 떳떳한 도리를 다 해야지 권도를 쓰면 시중에 맞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조선초에 이미 시중의 의미가 때에 알맞게 하는 의미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이후 1492년(성종 23) 홍문관 직제학김응기(金應箕) 등은 승려의 신분을 공인해주는 도첩제를 폐지할 것을 건의하면서 &amp;quot;마땅히 지킬 것은 지키고 변통할 것은 변통하는 것이 성현의 시중이며 수성(守成)하는 요체(要諦)&amp;quot;라고 하여([http://sillok.history.go.kr/id/kia_12301019_007 『성종실록』 23년 1월 19일]), 선대의 법이라도 시속에 알맞게 고쳐야 한다는 뜻으로도 사용되었다.&lt;br /&gt;
&lt;br /&gt;
시중의 의미에 대해서는 『정조실록』에서 가장 자세하게 논하고 있다. 정조는 행동거지뿐만 아니라 마음속의 감정에서 시중의 의미와 위치에 대해서도 논하였다. 정조는 『논어』 「향당편」에 대한 경연에서 &amp;quot;이 편(篇)의 내용은 모두 경(敬)에 관한 것이다.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공경하지 않는 것이 없어서 행동거지가 일의 마땅함에 알맞은데, 시중의 뜻이 그 가운데 들어 있다.&amp;quot;고 하여, 어느 때에도 경은 시중이 바탕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였고([http://sillok.history.go.kr/id/kva_10301023_001 『정조실록』 3년 1월 23일]),  중용은 높고 요원하여 행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라 일상생활의 도리에서 그 알맞은 것을 행하는 것이니, 중용은 시중과 표리를 이룬다고 하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va_11504030_002 『정조실록』 15년 4월 30일]). 또한 정조는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樂愛惡慾)의 칠정이 하나의 마음에 근원을 두고 있는데, 칠정 중 하나가 격분하면 나머지 모두가 발동되어 절도를 잃게 된다고 하여, 치우치지도 기울지도 않고 지나침도 어긋남도 없는 시중의 의미가 크다고 논하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va_11805025_002 『정조실록』 18년 5월 25일]).&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한국사상연구회, 『조선유학의 개념들』, 예문서원, 2002.      &lt;br /&gt;
*유교사전편찬위원회 편, 『유교대사전(儒敎大辭典)』, 박영사, 1990.      &lt;br /&gt;
&lt;br /&gt;
[[분류:문화]][[분류:인문학]][[분류:유학]][[분류:왕실]][[분류:왕실문화]][[분류:개념용어]]&lt;/div&gt;</summary>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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