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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숭의묘(崇義廟)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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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ilman: XML 가져오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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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건축|대표표제=숭의묘|한글표제=숭의묘|한자표제=崇義廟|대역어=|상위어=무묘(武廟)|하위어=|동의어=|관련어=관왕묘(關王廟)|분야=정치/외교/외교사안|정치/군사·국방/전쟁|유형=건축|지역=대한민국|시대=대한제국기|왕대=대한제국기|집필자=허태용|일시=1903(광무 7)|장소=서울 돈화문 밖|규모=|양식=|관련인물=유비(劉備), 관우(關羽), 장비(張飛) 및 제갈량(諸葛亮), 조운(趙雲), 마초(馬超), 황충(黃忠), 왕보(王甫), 주창(周倉), 조루(趙累), 관평(關平)|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4813|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za_14011027_003 『고종실록』 40년 11월 27일], [http://sillok.history.go.kr/id/kzb_10207023_003 『순종실록』 2년 7월 23일]}}&lt;br /&gt;
&lt;br /&gt;
대한제국 시기에 촉한(蜀漢)의 유비·관우·장비 및 제갈량 등을 제사 지내기 위하여 돈의문 밖에 세운 사당.&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숭의묘는 유비를 주향(主享)으로 하고 관우와 장비를 배향한 것 외에도 제갈량·조운·마초·황충·왕보·주창·조루·관평 등의 8명을 함께 배향하기 위하여 1903년(광무 7)에 설립된 사당이다. 관우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관왕묘의 범주에서 이해될 수도 있으나 그보다 격이 높았고 제향 때 사용되는 악무(樂舞)의 종류가 현격히 달랐다. 대한제국 시기 황제에 대한 충성심을 높이고 부국강병을 꾀하려던 정치적 목적 하에 설립되었다고 이해된다.&lt;br /&gt;
&lt;br /&gt;
=='''위치 및 용도'''==&lt;br /&gt;
&lt;br /&gt;
숭의묘는 서울 돈의문 밖 서부(西部) 반송방(盤松坊)에 있었는데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인물들인 유비·관우·장비 및 제갈량·조운·마초·황충·왕보·주창·조루·관평 등 총 11명을 2월과 8월에 제사하였다.&lt;br /&gt;
&lt;br /&gt;
=='''변천 및 현황'''==&lt;br /&gt;
&lt;br /&gt;
임진왜란 발발 이후 조선에서는 관왕묘로 상징되는 무묘(武廟)의 창건과 제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는 시기마다의 다양한 목적과 의도에 의하여 이루어진 일이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왕에 대한 충성심을 강조함으로써 왕권의 신장을 도모하려는 정치적 목적 하에 이루어진 현상이었다고 이해된다. 1598년(선조 31)과 1601(선조 34)년에 각각 서울에 남관왕묘와 동관왕묘가 건립되었고 동 시기에 강진·성주·안동 등 지방에도 관왕묘가 건립되었다. 이후로는 창건된 관왕묘에 대한 보수·유지만이 이어지다가 고종대에 들어서 새로운 관왕묘가 증설되었는데 1883년(고종 20)에 서울에 북관왕묘를 설치한 것을 위시해서 전주와 하동 등지에도 새로이 관왕묘를 건립하였던 것이다.&lt;br /&gt;
&lt;br /&gt;
숭의묘의 건립 역시 바로 이 맥락에서 이루어졌던 것으로 이해되는데 대한제국 시기인 1902년(광무 6)에 의로움을 일으키는 단서가 될 수 있다는 궁내부 [[특진관(特進官)]]조병식(趙秉式)의 상소에 의하여 건립이 추진되기 시작하여 1903년 건립이 완료되었다([http://sillok.history.go.kr/id/kza_14011027_003 『고종실록』 40년 11월 27일]). 특히 이 시기는 대한제국의 전쟁 관련 제향이 강조되던 시기로서 숭의묘에 건립에는 부국강병을 꾀하던 정치적 의도가 일정하게 투사된 것으로 이해된다. 관우가 모셔졌다는 점과 돈의문 밖에 건립되었다는 점에서 볼 때 서관왕묘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숭의묘에는 기존의 관우뿐 아니라 유비·장비 및 제갈량·조운·마초·황충·왕보·주창·조루· 관평 등이 포함됨으로써 기존 관왕묘보다 격이 높아졌으며 제례 시에 [[아악(雅樂)]]·아악악현(雅樂樂懸)·육일무(六佾舞)가 수반되는 등 사용되는 악무(樂舞)의 종류가 현격히 달랐다는 점에서 구별될 수 있다. 1908년에 와서 국가적인 차원에서 제사 지내는 모든 절차가 폐지되었다([http://sillok.history.go.kr/id/kzb_10207023_003 『순종실록』 2년 7월 23일]).&lt;br /&gt;
&lt;br /&gt;
=='''관련사건 및 일화'''==&lt;br /&gt;
&lt;br /&gt;
러일전쟁 발발 직후 1904년(광무 8) 4월 27일에 첫 봉안의식이 행해진 후 1908년 7월에 폐지되기까지 숭의묘의 제례가 행해진 기간은 불과 4년밖에 안 되었으며 숭의묘 터를 조선총독부에서 고아원과 맹아원으로 사용해 버리는 바람에 그 묘역까지 철저히 훼손되어 버렸다. 그러나 숭의묘 제례는 조선의 전통적인 제례용 악무(樂舞)의 형태를 두루 갖추어 [[중사(中祀)]]격으로 행례된 중요한 국가 제례의 하나였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lt;br /&gt;
*김용국, 「관왕묘설치고」, 『향토서울』 25, 서울특별시, 1965.      &lt;br /&gt;
*심승구, 「조선후기 무묘의 창건과 향사의 정치적 의미」, 『조선시대의 정치와 제도』, 집문당, 2003.      &lt;br /&gt;
*이욱, 「근대 국가의 모색과 국가의례의 변화-1894~1908년 국가제사의 변화를 중심으로-」, 『정신문화연구』 95, 한국학중앙연구원, 2004.      &lt;br /&gt;
*이정희, 「숭의묘 건립과 숭의묘 제례악」, 『공연문화연구』 19, 한국공연문화학회, 2009.      &lt;br /&gt;
&lt;br /&gt;
=='''관계망'''==&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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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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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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