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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속삼강행실도(續三綱行實圖)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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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서명사전|대표표제=속삼강행실도|한글표제=속삼강행실도|한자표제=續三綱行實圖|대역어=|상위어=|하위어=|동의어=|관련어=|분야=철학/국어학/윤리|유형=그림, 한글|지역=한국|시대=조선|왕대=중종|집필자=성낙수|저편자=신용개(申用漑)|간행처=|간행년일=1514년(중종 9)|권책수=1책|사용활자=|표제=|소장처=서울대학교 일사문고, 일본 동양문고|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70000055|실록연계=}}&lt;br /&gt;
&lt;br /&gt;
1514년(중종 9)에 신용개(申用漑) 등이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의 속편으로 보다 많은 효자와 충신, 열녀의 사례를 덧붙여 간행한 책.&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속삼강행실도(續三綱行實圖)』는 1514년(중종 9) 대제학(大提學)신용개(申用漑) 등이 『삼강행실도』의 속편으로 편찬한 책이다.『삼강행실도』 이후의 뛰어난 효자 36인, 충신 6인, 열녀 28인의 사례를 추가하였다. 각 예의 끝머리에 7절 2수(首)의 찬시를 붙이고, 각 사례마다 삽화를 하나씩 그려 넣었다. 이 책은 간행된 뒤 여러 차례 중간되었으며, 1797년(정조 21)에는 『삼강행실도』와 『이륜행실도(二倫行實圖)』의 두 책을 합하여, 5권 4책의 『오륜행실도(五倫行實圖)』를 편찬하기도 하였다.&lt;br /&gt;
&lt;br /&gt;
=='''편찬/발간 경위'''==&lt;br /&gt;
&lt;br /&gt;
『삼강행실도』는 본래 1434년(세종 16)에 집현전(集賢殿) 부제학(副提學)설순(律循)이 왕명을 받아 편찬하였으며, 언해는 성종(成宗) 때에 이루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1514년(중종 9)에 신용개 등이 중종(中宗)의 명을 받아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에 빠진 효자, 충신, 열녀들에 대한 사적(事蹟)을 수록하고 언해하였다.&lt;br /&gt;
&lt;br /&gt;
=='''서지 사항'''==&lt;br /&gt;
&lt;br /&gt;
총 1책으로 구성되었으며, 목판본이다. 세로 35.6cm, 가로 20.6cm이고, 지질은 한지로 되어 있다.&lt;br /&gt;
&lt;br /&gt;
서울대학교 일사문고와 일본의 동양문고에 소장 중이다.&lt;br /&gt;
&lt;br /&gt;
=='''구성/내용'''==&lt;br /&gt;
&lt;br /&gt;
이 책은 『삼강행실도』의 속편이라 할 수 있는 것으로, 효자 36명, 충신 5명, 열녀 28명의 사적을 그림과 한문으로 설명하고 시(詩)를 붙인 후 난상(欄上)에 한글로 번역을 실음으로써 『삼강행실도』의 체재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lt;br /&gt;
&lt;br /&gt;
16세기 초의 자료임에도 불구하고 ‘ㅸ’, ‘ㆆ’ 등의 표기를 비롯해서, 15세기의 언어 사실을 반영하는 예를 다수 포함하고 있는 것도 『삼강행실도』에 전적으로 이끌렸기 때문으로 보인다.&lt;br /&gt;
&lt;br /&gt;
다른 교화서들과 마찬가지로 『속삼강행실도』 또한 원간본이 간행된 이후 오랜 기간을 두고 여러 차례에 걸쳐서 중간되었다. 백성을 계도할 목적을 가진 교화서의 속성상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특히 이 책은 『삼강행실도』 및 『이륜행실도』와 그 중간 과정을 대체로 함께 하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lt;br /&gt;
&lt;br /&gt;
원간본에는 한문 문장에 구두점이 찍혀져 있고, 국어 표기에도 방점과 반치음 ‘ㅿ’과 ‘ㆁ’이 쓰이고 있으며, 혼란되었기는 하나 순경음 ‘ㅸ’도 사용되었다.&lt;br /&gt;
&lt;br /&gt;
1581년(선조 14)에 『삼강행실도』와 함께 중간된 책이 있는데, 이 책은 원간본과 비교해서 표기법과 체재, 내용에 있어서 다소의 변화를 보인다. 이 책은 원간본과는 달리 난상(欄上) 언해가 한글만으로 되었고, 수록된 내용에서는 ‘심원척간(深源후斥姦)’조가 더 추가되어 충신이 5명에서 6명으로 늘어났다. 『속삼강행실도』는 1617년(광해군 9)에 간행된 『동국신속삼강행실도(東國新續三綱行實圖)』의 『동국속삼강행실도』 1권에 대부분 재수록됨으로써 사실상 이 시기에 다시 한 번 중간되었다고 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속삼강행실도』의 또 다른 중간본으로 1727년(영조 3)에 『이륜행실도』와 함께 평양에서 간행된 것이 있는데, 책 말미에 ‘정미윤이삼월일 기영개간(丁未閏三月日 箕營開刊)’이란 간기가 있어, 이 책이 간행된 연도와 월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18세기 초기 국어의 모습을 잘 보여주지만 서북 방언의 영향으로 이 시기의 문헌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구개음화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lt;br /&gt;
&lt;br /&gt;
이 책의 표기상 특징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중세국어에서 성조(聲調)를 표현하던 방점(傍點)을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둘째, 모음조화(母音調化)가 지켜지지 않았다. 셋째, 합용병서(合用竝書) 'ㅄ' 등 어두자음군이 사용되었다. 넷째, '·'(아래아)는 여전히 사용되었다. 다섯째, 끊어적기(分綴)와 이어적기(連綴)가 함께 사용되었다. 여섯째, 'ㅣ'모음 앞에서 'ㄷ, ㅌ'이 아직 구개음화되지 않았다.&lt;br /&gt;
&lt;br /&gt;
한편 『삼강행실도』는 본래 1434년(세종 16)에 집현전 부제학설순(律循)이 왕명을 받아 편찬하였으며, 언해는 성종 때에 이루어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책의 저자 신용개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고령(高靈)이며, 자는 개지(漑之), 호는 이요정(二樂亭) · 수옹(睡雍)ㆍ송계(松溪)다. 영의정신숙주(申叔舟)의 손자이고, 관찰사신면(申眄)의 아들로서, 김종직(金宗直)의 문인이다. 1483년(성종 14)에 사마시에 합격, 1488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그 해에 승문원(承文院)에 등용되었다. 그 뒤에 수찬 · 교리를 역임하고, 1492년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였다. 1498년(연산군 4) &amp;lt;무오사화(戊午士禍)&amp;gt; 때 김종직의 문인이라 하여 한때 투옥되었으나 곧 석방되어 직제학을 거쳐 도승지가 되었다. 1502년(연산군 8) 왕을 기피하는 인물로 지목되어 충청도수군절도사(忠淸道水軍節度使)로 좌천되었다가, 이듬해 형조 판서(判書)를 거쳐 예조 참판(參判)이 되어 명(明)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온 뒤 &amp;lt;갑자사화(甲子士禍)&amp;gt;에 연루되어 전라도 영광에 유배되었다. 1506년(중종 1) &amp;lt;중종반정(中宗反正)&amp;gt; 후 형조 참판으로 서용되었으며, 이어 홍문관(弘文館) 대제학과 예문관(藝文館) 대제학을 역임, 이듬해 성희안(成希顔)과 함께 명나라에 가서 고명(誥名)을 받아온 공으로 원종공신(原從功臣)이 되었다. 그 뒤 대제학 · 우참찬과 사헌부(司憲府) 대사헌(大司憲)을 거쳐서 이조 판서와 병조 판서, 예조 판서를 역임한 후 우찬성이 되었다. 1516년(중종 11)에 우의정에 오르고, 1518년(중종 13) 좌의정에 이르렀다. 그는 기품이 높고 총명하여 문명을 떨쳤을 뿐만 아니라, 활쏘기 등 무예에도 뛰어나 문무를 겸비하였다. 인품 또한 꿋꿋하여 범하지 못할 점이 있어 당시 선비들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일찍이 성종은 그의 높은 학덕을 사랑하여 어의(御衣)를 벗어서 입혀준 일도 있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의의와 평가'''==&lt;br /&gt;
&lt;br /&gt;
이 책은 당시의 풍속을 엿볼 수 있는 사료로서의 가치도 가지지만, 여러 번 중간됨에 따라 각 시기의 이본들을 비교함으로써 언어 사실의 변천 과정을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 국어사 자료로서의 가치가 큰 문헌이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김원용, 「삼강행실도에 대하여」, 『삼강행실도 효자편』,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82.      &lt;br /&gt;
*박종국, 『한국어 발달사』, 문지사, 1996.      &lt;br /&gt;
*최현배, 『한글갈』, 정음사, 1942.      &lt;br /&gt;
*홍윤표, 「속삼강행실도 해제」, 『속삼강행실도 원간본ㆍ중간본』, 홍문각, 1988.      &lt;br /&gt;
&lt;br /&gt;
[[분류:철학]][[분류:국어학]][[분류:윤리]][[분류:그림, 한글]][[분류:한국]][[분류:조선]][[분류:중종]]&lt;/div&gt;</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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