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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세창양행(世昌洋行)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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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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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집단기구|대표표제=세창양행|한글표제=세창양행|한자표제=世昌洋行|대역어=|상위어=|하위어=|동의어=|관련어=마이어(E. Meyer), 제물포(濟物浦), 묄렌도르프(Paul George von Möllendorff), 목인덕(穆麟德), 전환국(典圜局), 당현금광(堂峴金鑛), 마이어양행, 볼터양행|분야=경제/산업/상업·무역|유형=집단·기구|지역=대한민국|시대=조선후기, 대한제국기|왕대=조선후기, 대한제국기|집필자=조재곤|설치시기=1884년(고종 21) 5월|폐지시기=1950년|소속관서=|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09828|실록연계=}}&lt;br /&gt;
&lt;br /&gt;
1884년(고종 21) 독일 상인 마이어(E. Meyer)가 인천 제물포에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외국인 무역상사.&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개항 이후 인천에 진출한 독일계 상인자본으로 설립된 외국인 회사 세창양행(世昌洋行)은 초기에 한국의 고위 관료인 독일인 묄렌도르프([穆麟德], Paul George von Möllendorff)의 후원 아래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에도 독일의 지원을 받으며 일반 무역활동은 물론 각종 이권 사업에 참여하며 당시 조선의 사회에 큰 영향력을 끼쳤다.&lt;br /&gt;
&lt;br /&gt;
=='''설립 경위 및 목적'''==&lt;br /&gt;
&lt;br /&gt;
1883년 독일은 조선과 한독통상조약(韓獨通商條約)을 체결하고 조선에서 제국주의적 이권을 확보하려고 노력하였다. 이 구상은 청국 정부에서 관리로 근무했던 묄렌도르프가 한국의 외교 고문관 겸 통상업무의 총괄자로 부임하면서 구체화되었다. 그는 독일 함부르크에 본사를 두고 톈진[天津], 홍콩 등에 지사를 설치하여 무역사업을 하던 마이어상사와 접촉하여 제물포에 지사 설립을 추진하였다.&lt;br /&gt;
&lt;br /&gt;
드디어 당시 톈진의 마이어 지사에 근무하던 볼터([華爾德], Cal Walte)가 1884년 5월 제물포에 도착하여 건물을 짓고 세창양행[Edward Meyer &amp;amp; Co]을 설립하였다.&lt;br /&gt;
&lt;br /&gt;
=='''조직 및 역할'''==&lt;br /&gt;
&lt;br /&gt;
세창양행은 현재 인천시 중앙동에 단층 양옥을 짓고 볼터가 중심이 되어 무역활동을 시작하였다. 이후 독일인 류어스[魯伊斯], 바우만[斐禹萬] 등을 불러들여 경영에 참여시켰다. 조선에서 수입해간 물품은 홍삼·지금(地金) 등이었고, 수출한 물품은 면포·철기(鐵器)·인쇄기계 등이었다.&lt;br /&gt;
&lt;br /&gt;
묄렌도르프의 후원 아래 조선 정부와 본격적으로 사업을 전개한 것은 조폐(造幣) 관련 일이었다. 1883년 근대적 화폐의 주조를 위한 조폐기관인 [[전환국(典圜局)]]이 설치되었는데, 이에 필요한 독일 조폐기계 수입과 독일 기술자 초빙 알선을 세창양행이 담당하였다.&lt;br /&gt;
&lt;br /&gt;
세창양행이 조선에서 확고한 기반을 얻을 수 있었던 계기는 1885년 조선 정부에 2,000파운드를 2년 상환, 연리 10％의 조건으로 차관을 제공하면서부터이다. 당시 조선 정부는 ‘한성조약’으로 인한 일본에 대한 배상금 지불로 재정이 궁핍한 상태였다. 세창양행은 이 차관을 제공한 대가로 1886년부터 1년 동안 호남지역의 [[세곡(稅穀)]]을 운송하는 권리를 획득했다.&lt;br /&gt;
&lt;br /&gt;
세창양행이 추진한 이권사업 중에는 철도부설권과 전복채취권의 획득도 있었다. 철도부설권 획득에는 실패했지만 전복채취권은 얻어 남해 등지에서 조선인을 고용해 전복을 채취하여 이익을 얻었다.&lt;br /&gt;
&lt;br /&gt;
1897년에는 강원도 당현금광(堂峴金鑛)의 이권을 소유기간 25년, 채광한 금의 1/4을 조선정부에 납부한다는 조건으로 획득하였다. 해운사업도 지속적으로 추진하여 인천-상하이[上海] 간의 정기항로를 개척하였고, 이후 세창양행은 인천을 거점으로 상해·홍콩·톈진까지 거래처를 확장하였다.&lt;br /&gt;
&lt;br /&gt;
한편 세창양행의 인천-상하이-홍콩의 정기노선은 1910년 국권 상실 후 독립운동가들의 합법·비합법 운송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하였다.&lt;br /&gt;
&lt;br /&gt;
=='''변천'''==&lt;br /&gt;
&lt;br /&gt;
1900년 6월 서울에 지점을 설치하였다. 1907년 볼터는 마이어양행 제물포지점을 단독으로 인수하여 칼 볼터양행이라 개칭하였으나, 한국 이름인 세창양행을 고수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일본으로부터 적국 재산이라는 취급을 받아 독일인의 출자가 동결되었다. 1945년 해방 이후 재기를 추진하였으나 한국전쟁으로 좌절되었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황성신문(皇城新聞)』      &lt;br /&gt;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구한국외교문서』, 1966.      &lt;br /&gt;
*묄렌도르프(고병익 역), 「목인덕수기(穆麟德手記)」, 『진단학보』24, 1963.      &lt;br /&gt;
*이배용, 「개항 이후 독일의 자본침투와 세창양행」, 『한국문화연구원논총』48, 1986.      &lt;br /&gt;
*조흥윤,「세창양행, 마이어, 함부르크 민족박물관」, 『동방학지』46·47·48, 1985.      &lt;br /&gt;
&lt;br /&gt;
=='''관계망'''==&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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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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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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