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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선목제(先牧祭)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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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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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ilman: XML 가져오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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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의식행사|대표표제=선목제|한글표제=선목제|한자표제=先牧祭|대역어=|상위어=|하위어=|동의어=|관련어=목방(牧放), 우역(牛疫)|분야=왕실/왕실의례/길례|유형=의식·행사|지역=대한민국|시대=조선|왕대=|집필자=한형주|시작시기=|시행시기=|시행기관=|시행장소=|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1447|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ua_12509018_001 『영조실록』 25년 9월 18일]}}&lt;br /&gt;
&lt;br /&gt;
처음으로 사람에게 목방(牧放)을 가르쳐준 선목(先牧)에게 지내는 제사.&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선목제는 목축 전반을 범주로 하는 제사였다. 전근대는 농업 사회여서 가축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는데, 그에 따라 가축의 번성을 기원하고 [[우역(牛疫)]]을 비롯한 재앙을 막으려는 의도에서 시행되었다. 특히 전마(戰馬)의 양성 및 번식과 관련된 [[마조단(馬祖壇)]]·[[마사단(馬社壇)]]·[[마보단(馬步壇)]] 등의 독립된 제단이 설립되면서, 이들과 밀접한 연관을 맺으며 운영되었다. 제단은 마조단·마사단·마보단과 함께 동교의 전관목장(箭串牧場) 안에 있었다.&lt;br /&gt;
&lt;br /&gt;
=='''연원 및 변천'''==&lt;br /&gt;
&lt;br /&gt;
고려시대에는 선목제를 [[소사(小祀)]]로 규정하였다. 『고려사(高麗史)』「예지(禮志)」에 따르면, 선목단은 넓이가 9보(步), 높이가 3척(尺)에 낮은 담인 유(壝)가 25보로, 사면에 계단이 있었다. 또 폐백을 묻는 [[예감(瘞坎)]]도 갖추고 있었다. 제사는 중하(仲夏)에 길일을 택해 시행하는데, 희생(犧牲)은 돼지 1마리를 사용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그런데 『고려사』「예지」에 제사의 구체적인 의식이 기재되어 있는 것과는 달리, 연대기 자료에서는 선목제를 시행했다는 기사를 찾아볼 수 없다.&lt;br /&gt;
&lt;br /&gt;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1413년(태종 13) 4월에 소사로 규정되었고, 같은 해 6월에 제단이 마련되었다. 이때 제단은 고려 예종 때 최윤의(崔允儀)가 편찬한 『상정고금례(詳定古今禮)』를 모방하여 축조되었기 때문에 『고려사』에 기재된 규모와 동일하였다. 그러나 1415년(태종 15)에는 사방 2장 1척, 높이 2척 5촌에 1유로 그 규모가 축소되었다. 이것은 국가의 사전(祀典) 체제를 제후국의 격에 맞추어 개편하면서 일어난 일인데, 이러한 제단의 규모는 이후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그대로 수록되었다.&lt;br /&gt;
&lt;br /&gt;
선목제는 『국조오례의』에 수록됨으로써 나라에서 지내는 제사로 인정받았지만, 16세기 이후에는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다.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선목제를 시행했다는 기사는 찾아볼 수 없는데, 이것은 마조제를 비롯한 말[馬]과 관련된 제사들이 시행되지 않은 것과도 관련이 있다.&lt;br /&gt;
&lt;br /&gt;
그 뒤 1749년(영조 25) 9월에 여러 지역에서 우역이 심해지자 영조는 강화유수(江華留守) 원경하(元景夏)의 건의에 따라 마단(馬壇) 가운데에 목신(牧神)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기로 하고, 선목의 의식[先牧儀]을 수정하도록 조처하였다. 그렇지만 이 기사 바로 뒤에, 『국조오례의』에 따라 새로 제단과 위판을 마련하였지만 그 뒤에 별도로 시행한 적이 없었다고 한 것을 보면([http://sillok.history.go.kr/id/kua_12509018_001 『영조실록』 25년 9월 18일]), 선목제는 지속적으로 시행되지는 못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러한 현실은 [[예전(禮典)]]에 그대로 반영되어 『국조속오례의(國朝續五禮儀)』에는 기존에 소사에 포함되었던 선목제가 마사제·마보제·마제(禡祭) 등과 함께 폐지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lt;br /&gt;
&lt;br /&gt;
=='''절차 및 내용'''==&lt;br /&gt;
&lt;br /&gt;
소사의 구체적인 의식에 대한 기록은 『태종실록』 14년 9월 무인 조에 처음 등장하는데, [[영성(靈星)]]·마조·사한(司寒)·산천(山川)·[[영제(禜祭)]]의 의주(儀註)가 있을 뿐 선목·마사·마보의 의주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세종실록』 「오례」의 [[사마조의(祀馬祖儀)]]에는 선목·마사·마보의 의주가 부기(附記)되어 있고, 『국조오례의』 향선목의(享先牧儀)에는 마사·마보·마제[[포제(酺祭)]]의 의식이 동일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아마도 동일한 부류의 같은 의식으로 간주하였기 때문에 따로 언급하지 않은 듯하다.&lt;br /&gt;
&lt;br /&gt;
『국조오례의』 향선목의에 따르면, 선목제는 5월 중기(仲夏) 후의 [[강일(剛日)]]에 시행하는데, 선목의 칭호는 선목의 신이며, 축문에는 조선 왕의 명칭을 썼다. 제사는 3품관 1명이 주관하며, 희생으로는 돼지 1마리를, 폐백으로는 1장 8척의 흰색 비단을 사용한다.&lt;br /&gt;
&lt;br /&gt;
의식은 3일간의 제계를 거친 뒤 준비 과정, 행례(行禮), 송신(送神)의 3단계로 진행된다. 본 의식인 행례는 먼저 신위에 폐백을 올리는 전폐례(奠幣禮)를 시행하는데, 세 차례 향을 피운 뒤 폐백을 올리고 부복(俯伏)한다. 다음으로 술을 올리는 [[작헌례(酌獻禮)]]를 행하는데, 헌관(獻官)이 술잔을 올린 뒤 축문을 읽는 초헌례, 두 번째 술을 올리는 아헌례, 세 번째 술을 올리는 종헌례로 이어진다. 종헌례를 마치면 올린 술과 고기를 맛보는 음복(飮福)과 수조(受胙)를 행한다. 행례를 마치면 [[변두(籩豆)]]를 거둔 뒤 헌관이 폐백을 묻는 것을 지켜보는 망예(望瘞)를 행하고 신위판을 봉안하며, 헌관 이하가 퇴장하면서 의식이 종결된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고려사(高麗史)』      &lt;br /&gt;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lt;br /&gt;
*『국조속오례의(國朝續五禮儀)』      &lt;br /&gt;
*『춘관통고(春官通考)』      &lt;br /&gt;
*『구당서(舊唐書)』      &lt;br /&gt;
*『신당서(新唐書)』      &lt;br /&gt;
*『송사(宋史)』      &lt;br /&gt;
*『명사(明史)』      &lt;br /&gt;
*논총간행위원회,  『동봉신천식교수정년기념사학논총』, 경인문화사, 2005.      &lt;br /&gt;
*이범직, 『한국중세 예사상 연구』, 일조각, 1991.      &lt;br /&gt;
*한형주, 『조선초기 국가제례 연구』, 일조각, 2002.      &lt;br /&gt;
&lt;br /&gt;
=='''관계망'''==&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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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분류:왕실]][[분류:왕실의례]][[분류:길례]][[분류:의식·행사]][[분류:대한민국]][[분류:조선]]&lt;/div&gt;</summary>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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