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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석전의(釋奠儀)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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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의식행사|대표표제=석전의|한글표제=석전의|한자표제=釋奠儀|대역어=|상위어=중사(中祀)|하위어=|동의어=상정제(上丁祭), 정제(丁祭)|관련어=문묘(文廟), 성균관(成均館)|분야=왕실/왕실의례/길례|유형=의식·행사|지역=대한민국|시대=조선|왕대=|집필자=강문식|시작시기=삼국시대|시행시기=조선|시행기관=예조(禮曹), 성균관(成均館)|시행장소=성균관(成均館)|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3584|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aa_10606002_001 『태조실록』 6년 6월 2일], [http://sillok.history.go.kr/id/kba_10202002_002 『정종실록』 2년 2월 2일], [http://sillok.history.go.kr/id/kca_10703021_002 『태종실록』 7년 3월 21일], [http://sillok.history.go.kr/id/kna_13802026_003 『선조실록』 38년 2월 26일]}}&lt;br /&gt;
&lt;br /&gt;
성균관(成均館)의 문묘에서 공자(孔子)를 비롯한 선성선현(先聖先賢)에게 제사하는 의식.&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석전(釋奠)이란 [[문묘(文廟)]]에서 공자를 비롯한 성인(聖人)과 현인(賢人)들인 선성선현에게 제사지내는 의식이다. 석(釋)은 ‘놓다[舍]’ 또는 ‘두다[置]’의 뜻을 지닌 글자로서 ‘베풀다’ 또는 ‘차려놓다’라는 뜻이며, 전(奠)은 추(酋)와 대(大)의 합성자로서 ‘추(酋)’는 술병에 술을 담은 뒤 덮개를 덮어놓은 형상으로 술을 의미하고, ‘대(大)’는 물건을 놓는 받침대를 상징한다. 따라서 석전은 술을 받들어 올린다는 의미가 된다.&lt;br /&gt;
&lt;br /&gt;
『주례(周禮)』나 『예기(禮記)』 등의 경전 기록에 따르면, 석전은 본래 산천(山川)과 묘사(廟社)에서 거행하는 제사였고, 또 학교에서 선성선사(先聖先師)에게 올리는 제사를 석전으로 부르기도 했다. 그러다가 후대로 내려오면서 전자의 의식은 사라지고 학교에서 거행하는 제사 의식만을 석전이라고 부르게 되었다.&lt;br /&gt;
&lt;br /&gt;
석전은 ‘정제(丁祭)’ 또는 ‘상정제(上丁祭)’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석전을 음력 2월과 8월의 상정일(上丁日)에 거행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lt;br /&gt;
&lt;br /&gt;
=='''연원 및 변천'''==&lt;br /&gt;
&lt;br /&gt;
석전의 유래는 유학이 수입되고 국립 학교가 설립된 삼국시대부터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특히 신라에서 648년(신라 진덕여왕 2) 김춘추(金春秋)가 당나라 국학(國學)에서 석전 의식을 참관하고 돌아온 후 국학 설립을 추진한 점, 717년(신라 성덕왕 16)에 당나라로부터 공자·10철(十哲)·72제자의 화상(畵像)을 가져 와서 국학에 안치했던 점 등은 국학에서 석전이 봉행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고려에서는 국학에 [[문묘(文廟)]]를 설치하고 석전을 거행했으며, 왕이 직접 술잔을 올리는 헌작(獻酌) 의식을 거행하기도 했다.&lt;br /&gt;
&lt;br /&gt;
조선에서는 1397년(태조 6) 6월 한양에 새 문묘가 조성되기 시작하여([http://sillok.history.go.kr/id/kaa_10606002_001 『태조실록』 6년 6월 2일]) 이듬해 완성되었다. 이후 정종대에 화재로 건물이 소실되었다가([http://sillok.history.go.kr/id/kba_10202002_002 『정종실록』 2년 2월 2일]), 태종대에 한양으로 재천도한 이후에 재건되었다([http://sillok.history.go.kr/id/kca_10703021_002 『태종실록』 7년 3월 21일]). 그리고 임진왜란 때 다시 소실되었다가 1601년(선조 34)부터 1604년(선조 37)까지 두 차례로 나누어 복원하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na_13802026_003 『선조실록』 38년 2월 26일]).&lt;br /&gt;
&lt;br /&gt;
문묘에서의 석전은 매년 음력 2월과 8월 상정일에 거행되었으며, [[중사(中祀)]]의 규정이 적용되었다. 조선의 문묘에 봉안된 신위는 약간의 변화가 있었으나 최종적으로 정비된 것을 살펴보면, [[정전(正殿)]]인 [[대성전(大成殿)]]에는 공자를 비롯한 4성(四聖)·10철과 송조(宋朝)의 6현(六賢) 등 유학(儒學)에서 성인과 철인, 현인으로 받드는 인물 21위(位)가 봉안되었고, [[동무(東廡)]]와 [[서무(西廡)]]에는 우리나라의 명현(名賢) 18위와 중국의 유현(儒賢) 94위 등 모두 112위가 봉안되었다. 한편, 지방의 향교(鄕校)에서도 성균관과 마찬가지로 봄과 가을로 1년에 두 차례씩 석전을 올렸다.&lt;br /&gt;
&lt;br /&gt;
=='''절차 및 내용'''==&lt;br /&gt;
&lt;br /&gt;
조선초기 국가 전례 정비의 내용을 담고 있는 『세종실록』「오례」에는 석전 의식이 네 가지로 정리되어 있다. ‘[[시학작헌문선왕의(視學酌獻文宣王儀)]]’는 국왕이 성균관에 행차하여 문묘의 공자 신위에 술을 올리고, 성균관 유생들을 대상으로 시학(視學)하는 의식이다. 시학은 국왕이 유생들의 공부 상황을 둘러보는 것을 가리키며, 때로는 이때에 [[알성시(謁聖試)]]를 베풀어 인재를 뽑기도 하였다. ‘[[왕세자석전문선왕의(王世子釋奠文宣王儀)]]’는 왕세자가 주관하여 석전을 거행하는 의식이며, ‘[[유사석전문선왕의(有司釋奠文宣王儀)]]’는 관원들이 주관하여 석전을 거행하는 의식이다. 마지막으로 ‘[[주현석전문선왕의(州縣釋奠文宣王儀)]]’는 각 주현에 있는 향교에서 거행하는 석전 의식이다.&lt;br /&gt;
&lt;br /&gt;
이상의 석전 의식들이 성종대에 편찬된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서는 새로운 의식들이 추가되고 세분화되고 명칭도 일부 조정되어 수록되었다. 『국조오례의』에 실린 석전 의식은 ‘향문선왕시학의(享文宣王視學儀)’, ‘작헌문선왕시학의(酌獻文宣王視學儀)’, ‘왕세자작헌문선왕입학의(王世子酌獻文宣王入學儀)’, ‘[[왕세자석전문선왕의(王世子釋奠文宣王儀)]]’, ‘[[유사석전문선왕의(有司釋奠文宣王儀)]]’, ‘문선왕삭망전의(文宣王朔望奠儀)’, ‘문선왕선고사유급이환안제의(文宣王先告事由及移還安祭儀)’, ‘[[주현석전문선왕의(州縣釋奠文宣王儀)]]’, ‘주현문선왕선고사유급이환안제의(州縣文宣王先告事由及移還安祭儀)’ 등이다.&lt;br /&gt;
&lt;br /&gt;
『국조오례의』에서 정비된 석전 의식은 조선후기까지 큰 변화 없이 계속 이어졌다. 또, 1897년(광무 1) 대한제국 선포 이후 제정된 『대한예전(大韓禮典)』에서도 왕세자가 황태자, 문선왕이 [[문묘(文廟)]]로 바뀌는 등의 명칭 변화만 있을 뿐, 실제 거행되는 의식의 절차는 『국조오례의』의 내용을 준수하였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삼국사기(三國史記)』      &lt;br /&gt;
*『고려사(高麗史)』      &lt;br /&gt;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lt;br /&gt;
*『태학지(太學志)』      &lt;br /&gt;
*『대한예전(大韓禮典)』      &lt;br /&gt;
*국립문화재연구소 편, 『석전대제』, 국립문화재연구소, 1998.      &lt;br /&gt;
&lt;br /&gt;
=='''관계망'''==&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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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분류:왕실]][[분류:왕실의례]][[분류:길례]][[분류:의식·행사]][[분류:대한민국]][[분류:조선]]&lt;/div&gt;</summary>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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