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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석수라(夕水刺)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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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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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ilman: XML 가져오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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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개념용어|대표표제=석수라|한글표제=석수라|한자표제=[夕水刺]|대역어=|상위어=수라(水剌)|하위어=|동의어=|관련어=조수라(朝水剌)|분야=생활·풍속/식생활/음식|유형=개념용어|지역=대한민국|시대=조선|왕대=|집필자=한복진|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4284|실록연계=}}&lt;br /&gt;
&lt;br /&gt;
조선시대 궁중에서 왕에게 올리는 저녁밥을 높여 이르던 말.&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조선시대 궁중에서 평소 일상의 식사는 5차례인데, 이른 아침의 자리조반[初朝飯], 아침의 조수라[朝水剌], 저녁의 석수라[夕水剌], 낮의 낮것[點心], 밤에 내는 야참[夜食]이다.&lt;br /&gt;
&lt;br /&gt;
=='''내용 및 특징'''==&lt;br /&gt;
&lt;br /&gt;
조선시대 궁중에서 아침수라[朝水剌]는 10시가 지나야 드시고, 저녁수라[夕水剌]는 오후 5시경에 드셨다.&lt;br /&gt;
&lt;br /&gt;
=='''변천'''==&lt;br /&gt;
&lt;br /&gt;
1700년대 궁중의 일상식은 1795년(정조 19) 화성현륭원에 [[행행(行幸)]]한 기록인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의 찬품(饌品)조에 남아 있다. 음력 윤2월 9일 창덕궁을 나와 음력 윤2월 16일 환궁까지 8일간의 자궁·왕·군주께 올린 일상식의 기록이다. 일정 중에 석수라는 9일은 시흥참(始興站)에서, 10~14일은 화성참(華城站)에서, 15일은 시흥참에서 총 7회 올렸다.&lt;br /&gt;
&lt;br /&gt;
화성참에서 윤2월 10일에 자궁께 올린 석수라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자궁께 올린 상은 원반(元盤)과 협반(挾盤)인데, 모두 검은 칠을 한 족반(足盤)으로서 원반에는 은기로 12기를 올리고 협반에는 화기로 3기를 올렸다. 밥[飯] 1기는 백반(白飯)이고, 국[羹] 1기는 양숙(羘熟)이고, 찌개인 조치 2기는 생복초(生鰒炒) 1기와 생치볶기 1기이고, 구이 1기는 침방어(沈魴魚)구이이다. 약산적 1기와 자반 1기는 민어·전복포·대구다식·약포·장볶이를 한데 담았고, 젓갈 1기는 연어란·하란이고, 채 1기는 도라지 잡채이고, 침채 1기는 석박지[交沈菜]이고, 담침채 1기는 꿩김치인 치저(雉菹)이다. 즙장 1기와 장 3기, 즉 간장·초장·겨자 각 1기로 이상을 원반 은기에 담아 올렸다. 협반에는 탕 1기는 잡탕이고, 각색적은 1기로 꿩과 쇠꼬리적이고, 전유어 1기를 올렸다.&lt;br /&gt;
&lt;br /&gt;
고종과 순종 재위 당시 수라상은 아침과 저녁 2차례 올렸는데, 12첩 반상차림으로 수라와 탕을 2가지씩 올리고 기본 찬품과 쟁첩에 담는 12가지 찬물로 구성했다.&lt;br /&gt;
&lt;br /&gt;
수라는 백반과 팥 삶은 물로 지은 찹쌀밥인 붉은 빛의 홍반(紅飯) 2가지를 수라기에 담고, 탕은 미역국[藿湯]과 곰탕 2가지를 모두 탕기에 담아 올려 그날에 따라 좋아하는 것을 골라 드시도록 준비했다. 조치는 토장조치·젓국조치 2가지이고, 찜·전골·침채 3가지가 기본 음식에 속했다. 찬물 12가지는 다양한 식품 재료로 조리법도 각기 달리하여 만들었다. 상 위에 놓이는 장류는 청장·초장·윤집·겨자집으로 그날의 찬물에 맞게 종지에 담았다. 윤집은 초고추장이다.&lt;br /&gt;
&lt;br /&gt;
[[파일:T00014284_01.PNG|300px]]&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      &lt;br /&gt;
*『한중록(閑中錄)』      &lt;br /&gt;
*강인희, 『한국식생활사』, 삼영사, 1978.      &lt;br /&gt;
*김명길, 『낙선재 주변』, 중앙일보·동양방송, 1977.      &lt;br /&gt;
*김상보, 『조선왕조 궁중의궤 음식문화』, 수학사, 1995.      &lt;br /&gt;
*김용숙, 『조선조 궁중풍속연구』, 일지사, 1987.      &lt;br /&gt;
*신영훈, 『조선조 궁중생활연구』, 문화재관리국, 1992.      &lt;br /&gt;
*황혜성 외, 『이조궁정요리통고(李朝宮廷料理通攷)』, 학총사, 1957.      &lt;br /&gt;
*김춘련, 「18세기 궁중음식고-원행을묘정리의궤를 중심으로」, 『대한가정학회지』22(4), 1984.      &lt;br /&gt;
*이성우, 「조선왕조 궁중식에 관한 문헌학적 연구」, 『한국식문화학회지』1(1), 1986.      &lt;br /&gt;
*황혜성 외, 「궁중의 식생활」, 『한국음식대관』6권 , 한국문화재보호재단, 1997.      &lt;br /&gt;
&lt;br /&gt;
[[분류:생활·풍속]][[분류:식생활]][[분류:음식]][[분류:개념용어]][[분류:대한민국]][[분류:조선]]&lt;/div&gt;</summary>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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