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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삼양(三陽)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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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ilman: XML 가져오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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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개념용어|대표표제=삼양|한글표제=삼양|한자표제=三陽|대역어=|상위어=명당(明堂)|하위어=|동의어=|관련어=내양(內陽), 외양(外陽), 이양(二陽), 일양(一陽), 중양(中陽)|분야=생활·풍속/풍수|유형=개념용어|지역=대한민국|시대=조선|왕대=|집필자=김두규|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3809|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da_12704004_003 『세종실록』 27년 4월 4일], [http://sillok.history.go.kr/id/kga_11009007_003 『세조실록』 10년 9월 7일]}}&lt;br /&gt;
&lt;br /&gt;
풍수에서 명당을 그 범위에 따라 3개로 나누어 표기한 것.&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풍수서마다 사물을 지칭하는 용어가 다르다. 명당의 다른 이름으로서 내명당을 내양(內陽), 중명당을 중양(中陽), 대명당을 외양(外陽)이라 하여 삼양이라고도 한다. 삼양을 따지는 것은 그 안에 형성되는 혈이 진혈(眞穴)인가 [[가혈(假穴)]]인가를 구분하기 위해서이다. 이 용어는 조선전기 풍수 논쟁에서 등장하지만 이후 사라진다.&lt;br /&gt;
&lt;br /&gt;
=='''내용 및 특징'''==&lt;br /&gt;
&lt;br /&gt;
『조선왕조실록』에서 삼양은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첫째 풍수에서 명당을 지칭하는 경우이며, 두 번째는 음력 정월의 봄기운을 의미한다. 동짓달에 처음 일양(一陽)이 생기고, 섣달에는 이양(二陽)이, 정월에는 삼양이 생겨난다는 의미에서이다.&lt;br /&gt;
&lt;br /&gt;
풍수에서는 명당의 다른 명칭으로 사용하는데, 명당의 규모와 범위가 크기 때문에 이를 3분화하여 말한 것이다. 조선조 지관 선발 고시과목에서는 『동림조담(洞林照膽)』과 『명산론(明山論)』에 등장하며, 그 밖의 다른 풍수 서적에서도 등장한다.&lt;br /&gt;
&lt;br /&gt;
그 밖에 풍수학인에 따라 삼양의 개념이 다르기도 하는데, 당나라 때의 천문지리학자 이순풍(李淳風)은 유수(流水)가 한번 교차하는 곳을 일양, 내명당을 이양, 외명당을 삼양이라 하였고, 또 다른 중국의 풍수학인 증문천(曾文辿)은 명당을 내양, [[안산(案山)]]을 중양, [[조산(朝山)]]을 외양(外陽)이라 하였다.&lt;br /&gt;
&lt;br /&gt;
조선전기 『조선왕조실록』에서 삼양이 주제어로 떠오른 것은 왕릉 선정과 관련하여서이다. 궁궐이나 왕릉을 선정할 때 입지 선정에 참여하는 대신, 종친 그리고 지관들마다 땅을 보는 안목이 다르기 때문에 동일한 장소를 두고 의견이 갈릴 수밖에 없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헌릉(獻陵)]] 옆에 세종이 자신의 수릉(壽陵)을 정하려 할 때 발생한 논쟁이다. 대모산이라는 하나의 주산 아래 두 개의 혈이 생길 수 없다는 것이 논란의 핵심이다. 이때 이곳에 수릉을 정하고자 하는 측은 삼양이 촉급[促]하지 아니하므로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주장하여 그들의 주장을 관철시킨다([http://sillok.history.go.kr/id/kda_12704004_003 『세종실록』 27년 4월 4일]). 또한 조선초기 경복궁 터가 과연 진혈인가 가혈인가 논쟁이 발생하였을 때 풍수학훈도 최연원(崔演元)이 삼양이 촉박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근거로 경복궁이 진혈임을 주장하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ga_11009007_003 『세조실록』 10년 9월 7일]).&lt;br /&gt;
&lt;br /&gt;
=='''변천'''==&lt;br /&gt;
&lt;br /&gt;
풍수에서 말하는 삼양이란 용어는 조선초기 명당 논쟁에서 언급되지만 임진왜란 이후 많은 풍수 서적의 유실과 동시에 중국에서 들어오는 새로운 풍수 서적의 영향으로 『조선왕조실록』에서 사라진다. 그 대신 정월의 봄기운이란 뜻으로 더 많이 쓰인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김두규, 『조선 풍수학인의 생애와 논쟁』, 궁리출판사, 2000.      &lt;br /&gt;
*梁湘潤 編集, 『堪輿辭典』, 台北, 民國 85年.      &lt;br /&gt;
&lt;br /&gt;
[[분류:생활·풍속]][[분류:풍수]][[분류:개념용어]][[분류:대한민국]][[분류:조선]]&lt;/div&gt;</summary>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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