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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삼수진(三水鎭)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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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ilman: XML 가져오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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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집단기구|대표표제=삼수진|한글표제=삼수진|한자표제=三水鎭|대역어=|상위어=|하위어=|동의어=|관련어=삼수군(三水郡), 삼수도호부사(三水都護府使), 함흥도(咸興道)|분야=정치/군사·국방/편제|유형=집단·기구|지역=대한민국|시대=조선|왕대=조선|집필자=윤훈표|설치시기=1441년(세종 23)|폐지시기=|소속관서=|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2584|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da_12805001_003 『세종실록』 28년 5월 1일], [http://sillok.history.go.kr/id/kga_10801029_001 『세조실록』8년 1월 29일], [http://sillok.history.go.kr/id/kqa_10701008_005 『효종실록』 7년 1월 8일]}}&lt;br /&gt;
&lt;br /&gt;
조선시대 함경도의 삼수 지역에 설치한 군진.&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삼수진(三水鎭)은 본디 갑산군(甲山郡)의 삼수보(三水堡)였다. 조선세종 때 사군(四郡)이 설치되자 압록강 상류 지역의 방위가 중요해졌다. 이에 1441년(세종 23) 황보인(皇甫仁)의 건의로 삼수보가 설치되었다. 1446년에 다시 그 지리적 중요성을 인정받아 삼수군이 신설되고, 1457년 삼수진이 설치되었다. 진관 체제로 개편하는 과정에서 방어상의 중요성과 지정학적인 위치로 인해 『경국대전』에 독진(獨鎭)으로 수록되었다. 조선후기에 도호부로 승격하였고 『속대전』에 이르면 소속 진을 거느렸다.&lt;br /&gt;
&lt;br /&gt;
=='''설립 경위 및 목적'''==&lt;br /&gt;
&lt;br /&gt;
세종 때 사군을 개척하면서 압록강 상류 쪽의 방어를 강화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갑산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던 관계로 유사시에 지원이 어려웠다. 1441년(세종 23) 당시 함길도도체찰사였던 황보인의 건의에 따라 [[만호(萬戶)]]를 설치하여 이에 대처했다.&lt;br /&gt;
&lt;br /&gt;
1446년에 황보인이 또다시 삼수보가 갑산·혜산(惠山)과 거리가 너무 멀어 위급한 일이 벌어지면 구원할 수가 없으니, 군대를 배치하고, 읍(邑)을 설치하여 수령을 파견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삼수군(三水郡)이 신설되었고, 곧 함길도의 군익도(軍翼道)체제에 편입되어 함흥도(咸興道)의 우익(右翼)에 속하게 되었다([http://sillok.history.go.kr/id/kda_12805001_003 『세종실록』 28년 5월 1일]).&lt;br /&gt;
&lt;br /&gt;
1455년(세조 1) 양계(兩界)의 군익도체제가 전국으로 확장되면서 연해뿐만 아니라 내륙에도 [[거진(巨鎭)]]을 두게 되었다. 갑산처럼 독진으로 설정되지도 않았다. 1457년 군익도체제를 진관체제로 개편할 때도 삼수군은 주요 지역을 거진으로 삼고 주변의 [[제진(諸鎭)]]을 그 휘하에 소속시켰는데, 이때에도 함흥진(咸興鎭)에도 보이지 않고 독진에서도 누락되었다. 다만, 삼수진의 설치 사실이 『경국대전』에 ‘영안남도(永安南道)에 둔다’고 기재된 것을 통해 확인된다.&lt;br /&gt;
&lt;br /&gt;
=='''조직 및 역할'''==&lt;br /&gt;
&lt;br /&gt;
『경국대전』에 따르면 삼수진은 독진으로 설정되어 제도상으로는 종4품인 삼수군수가 종3품 병마첨절제사를 겸하여 통솔하도록 되었다. 그리고 중앙에 올라가 왕의 검열을 받을 때에는 오위(五衛)에 소속되었는데, [[후위(後衛)]]였던 충무위(忠武衛)의 좌부(左部)에 속하였다.&lt;br /&gt;
&lt;br /&gt;
삼수진은 갑산을 [[주진(主鎭)]]으로 설정하여 삼수의 방어 상황을 검찰하게 하였고([http://sillok.history.go.kr/id/kga_10801029_001 『세조실록』8년 1월 29일]), 이런 과정과 상황 등이 결부되어 『경국대전』에 이르러 비로소 독진으로 정립된 것으로 보인다. &lt;br /&gt;
&lt;br /&gt;
=='''변천'''==&lt;br /&gt;
&lt;br /&gt;
임진왜란 이후에 지방 군제를 개편하면서 삼수진에 변화가 생겼다. 전에 쌓았던 성이 지대가 높고 척박하며, 기후도 추워서 농사가 잘 안 되어 거주민이 적다는 이유로, 100여 리 떨어진 적생(積生)으로 옮겼다. 아울러 성을 새로 쌓았다([http://sillok.history.go.kr/id/kqa_10701008_005 『효종실록』 7년 1월 8일]).&lt;br /&gt;
&lt;br /&gt;
1696년(숙종 22) 한때 현(縣)으로 강등되었다가 1710년(숙종 36) 방위상의 중요성이 6진과 다를 바가 없다는 이유로 도호부로 승격되었다.&lt;br /&gt;
&lt;br /&gt;
그로 인해 『속대전(續大典)』에서는 종3품의 삼수도호부사가 동품의 병마첨절제사를 겸하게 되었다. 소속 진도 새로 배속되어 갈파지(乫波知)에 종4품의 병마동첨절제사를 두면서 남도에 속하였다. 인차외(仁遮外)·신방(神方)·구비(仇非)·나난(羅暖)·어면(魚面)에는 종4품의 병마만호(兵馬萬戶)를 두었으며, 역시 남도에 소속시켰다. 『대전회통(大典會通)』에서는 신방·구비·어면은 모두 혁파되었다.&lt;br /&gt;
&lt;br /&gt;
다른 한편 지방군을 강화하려고 영장제(營將制)를 도입하였다. 처음에는 전임 영장을 두었으나 비용이 과다하다는 이유로 폐지했다. 병자호란 이후에 하삼도, 즉 충청·전라·경상도를 제외한 곳에는 수령으로 하여금 영장을 겸임하게 했다. 1693년(숙종 19)에 우영장(右營將)을 겸하게 되었는데, 이는 『속대전(續大典)』에서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부사에 무관 출신을 임명해서 영장을 겸하게 했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경국대전(經國大典)』      &lt;br /&gt;
*『속대전(續大典)』      &lt;br /&gt;
*『대전통편(大典通編)』      &lt;br /&gt;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lt;br /&gt;
*민현구, 『조선초기 군사제도와 정치』, 한국연구원, 1983.      &lt;br /&gt;
*서태원, 『조선후기 지방군제연구』, 혜안, 1999.      &lt;br /&gt;
*육군본부, 『한국군제사 - 근세조선전기편 -』, 1968.      &lt;br /&gt;
*차문섭, 『조선시대군제연구』, 단국대학교출판부, 1973.      &lt;br /&gt;
*오종록, 「조선초기 양계의 군사제도와 국방체제」,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2.      &lt;br /&gt;
&lt;br /&gt;
[[분류:정치]][[분류:군사·국방]][[분류:편제]][[분류:집단·기구]][[분류:대한민국]][[분류:조선]][[분류:조선]]&lt;/div&gt;</summary>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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