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feed xmlns="http://www.w3.org/2005/Atom" xml:lang="ko">
		<id>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action=history&amp;feed=atom&amp;title=%EC%82%B0%EB%8C%80%28%E5%B1%B1%E8%87%BA%29</id>
		<title>산대(山臺) - 편집 역사</title>
		<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action=history&amp;feed=atom&amp;title=%EC%82%B0%EB%8C%80%28%E5%B1%B1%E8%87%BA%29"/>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title=%EC%82%B0%EB%8C%80(%E5%B1%B1%E8%87%BA)&amp;action=history"/>
		<updated>2026-05-08T03:01:45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generator>MediaWiki 1.27.3</generator>

	<entry>
		<id>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title=%EC%82%B0%EB%8C%80(%E5%B1%B1%E8%87%BA)&amp;diff=2108&amp;oldid=prev</id>
		<title>Silman: XML 가져오기</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title=%EC%82%B0%EB%8C%80(%E5%B1%B1%E8%87%BA)&amp;diff=2108&amp;oldid=prev"/>
				<updated>2017-12-09T13:40:2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의식행사|대표표제=산대|한글표제=산대|한자표제=山臺|대역어=|상위어=|하위어=|동의어=|관련어=산붕(山棚), 채붕(彩棚), 화산대(火山臺)|분야=문화/예술/연극|유형=의식·행사|지역=중국, 대한민국|시대=고려시대~조선시대|왕대=|집필자=김순주|시작시기=고려|시행시기=큰 경사, 칙사의 영접, 인산(因山), 왕의 행행|시행기관=예조|시행장소=궁궐, 거리|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03155|실록연계=}}&lt;br /&gt;
&lt;br /&gt;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시렁을 산처럼 엮고 나무로 다락을 만들어 놀이 등을 공연할 수 있게 만든 무대 시설.&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산대(山臺)는 산을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두 가지로 해석된다. 하나는 산과 같은 외형을 갖는 무대, 다른 하나는 산처럼 높이 설치한 무대라는 뜻으로 새긴다. 이 둘을 합쳐서 이해하기도 한다. 산대나례(山臺儺禮)는 나라에 큰 경사가 있거나 유명일(有名日)일 때 잡귀의 침범을 물리치기 위하여 궁중이나 왕이 [[행행(行幸)]]하던 앞길에서 하던 가면 놀이를 말한다.&lt;br /&gt;
&lt;br /&gt;
나례는 음력 섣달 그믐밤에 민가와 궁중에서 사신(邪神)을 쫓기 위해 베풀던 의식으로 고려 정종 이후로 행해졌다. 칙사의 영접, 인산(因山), 왕의 행행 때도 나례를 행하였다. 나례를 산대나례와 채붕나례(彩棚儺禮)로 구분한다면, 둘 중 더 많은 장비를 갖춘 것이 산대나례다.&lt;br /&gt;
&lt;br /&gt;
고려 때 이미 산대극(山臺劇) 놀이가 있었는데, 산대는 곧 나무로 다락을 만들고 그 위에 오색(五色) 비단 장막을 늘어뜨려 임시로 꾸민 무대였다. 이것을 채붕(彩棚)이라 부르는 경우가 더 많았고, 둘을 합쳐 [[산붕(山棚)]]이라고도 한다.&lt;br /&gt;
&lt;br /&gt;
산대 중에 특별히 불놀이, 즉 화희(火戱)를 하는 무대를 화산대(火山臺)라고 한다. 고려 때 신돈(辛旽)이 불놀이 구경을 위해 화산대를 설치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화희는 궁중의 사기(邪氣)를 물리치기 위하여 열었던 놀이로, 원일(元日)에 금원(禁苑)에 오산(鰲山)을 설치하고 그 산 위에 불꽃을 올렸다.&lt;br /&gt;
&lt;br /&gt;
=='''연원 및 변천'''==&lt;br /&gt;
&lt;br /&gt;
산대 공연은 고려 때부터 있었다. 『고려사』「제사도감각색(諸司都監各色)」에 1279년(고려 충렬왕 5) 정전(庭殿)에서 하던 산대색(山臺色)을 없애고 연등도감에서 관할하게 하였다. 1407년(태종 7) 12월 30일, 즉 섣달 그믐날에 화산대를 대궐 가운데서 열었는데, 화약이 너무 맹렬하여 왜사(倭使)가 보고 놀라고 두려워하였다. 1423년(세종 5) 7월 30일 예조에서 사신을 영접할 때 [[사목(事目)]]을 계하면서 연회 때에 음악을 쓰지 말고, 산대나례를 없애고 다만 채붕만 맺을 것을 건의하였다. 그러나 이듬해인 1424년(세종 6) 6월 14일에 태종의 신주를 부묘하는 의주에서는, 환궁 시 경복궁 문밖 좌우에 산대를 설치하기로 하였다.&lt;br /&gt;
&lt;br /&gt;
1511년(중종 6) 10월 24일 왕이 명을 내려 [[정조(正朝)]]에 나례와 화산대를 정지하게 하였는데, 흉년 때문이었다. 1623년(인조 즉위)에 나례를 정지시키고, 1634년(인조 12)에 산대희를 폐지하였다. 그러나 『동국문헌비고』「예고」에 따르면 나례는 오례의(五禮儀)에 따라 대나(大儺)가 계동(季冬)에 광화문 및 도성 사대문에서 행해졌으며, 1623년에 나례가 정지된 적이 있었지만 1692년(숙종 18) 『국조오례의』에 따라 나례를 부활하였다고 하였다.&lt;br /&gt;
&lt;br /&gt;
1754년(영조 30)에 나례를 없애고 교년절(交年節), 즉 12월 24일에 지내는 경신수야(庚申守夜) 풍속을 없애라고 지시하였다. 이로써 나례는 궁중에서는 볼 수 없는 공연이 되었다. 1819년에 작성된 『열양세시기』에서 김매순(金邁淳)은 자신이 일찍이 궁에서 수세(守歲)한 일은 있었지만 한 번도 나례를 보지 못했다고 하였다.&lt;br /&gt;
&lt;br /&gt;
=='''절차 및 내용'''==&lt;br /&gt;
&lt;br /&gt;
1426년(세종 8) 2월 28일에 왕은 산대의 높이에 대한 규정을 정하도록 하였다. 산대의 높이에 대해서는 상세한 규정이 없어서 산대를 맺을 적마다 좌우편 쪽만 높게 하려고 하였다가 바람이 심하면 혹 기울어져 쓰러질 위험성이 있으므로 이후로는 산대의 기둥을 땅에서부터 60척 이상을 더 올리지 못하게 하였다.&lt;br /&gt;
&lt;br /&gt;
산대를 꾸밀 때는 백성들이 잡역으로 동원되었다. 사신 길에 인접한 지역의 백성들은 산대를 만드는 일에 역사(役事)를 해야 했다. 만약 그 지역에 흉년이 들면 이를 면해준다. 그러한 경우 역사는 경정병(京正兵)들이 맡았다. 산대를 꾸밀 때 [[기계목(機械木)]]이 사용되었던 것 같다.&lt;br /&gt;
&lt;br /&gt;
=='''생활ㆍ민속적 관련 사항'''==&lt;br /&gt;
&lt;br /&gt;
구파발이나 양주 등지의 산대놀이는 원래 사신 영접이나 인산, 또는 왕의 행행 때 공연되었는데 대한제국말에 민간 차원으로 확대되어 공연된 것들이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고려사(高麗史)』      &lt;br /&gt;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      &lt;br /&gt;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      &lt;br /&gt;
*김은영, 「산대와 채붕(綵棚)」, 『생활문물연구』 10, 2003.      &lt;br /&gt;
&lt;br /&gt;
=='''관계망'''==&lt;br /&gt;
&amp;lt;html&amp;gt;&amp;lt;script&amp;gt;function reload() {window.location.reload();} &amp;lt;/script&amp;gt;&amp;lt;input type=&amp;quot;button&amp;quot; value=&amp;quot;Graph&amp;quot; onclick=&amp;quot;reload();&amp;quot;&amp;gt;&amp;lt;iframe width=&amp;quot;100%&amp;quot; height=&amp;quot;670px&amp;quot; src=&amp;quot;http://encysilloknetwork.aks.ac.kr/Content/index?id=na00003155&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분류:문화]][[분류:예술]][[분류:연극]][[분류:의식·행사]][[분류:중국, 대한민국]][[분류:고려시대~조선시대]]&lt;/div&gt;</summary>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f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