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feed xmlns="http://www.w3.org/2005/Atom" xml:lang="ko">
		<id>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action=history&amp;feed=atom&amp;title=%EC%82%AC%EC%8B%9C%28%E5%BE%99%E5%B8%82%29</id>
		<title>사시(徙市) - 편집 역사</title>
		<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action=history&amp;feed=atom&amp;title=%EC%82%AC%EC%8B%9C%28%E5%BE%99%E5%B8%82%29"/>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title=%EC%82%AC%EC%8B%9C(%E5%BE%99%E5%B8%82)&amp;action=history"/>
		<updated>2026-04-28T06:44:25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generator>MediaWiki 1.27.3</generator>

	<entry>
		<id>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title=%EC%82%AC%EC%8B%9C(%E5%BE%99%E5%B8%82)&amp;diff=1843&amp;oldid=prev</id>
		<title>Silman: XML 가져오기</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title=%EC%82%AC%EC%8B%9C(%E5%BE%99%E5%B8%82)&amp;diff=1843&amp;oldid=prev"/>
				<updated>2017-12-09T13:36:2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의식행사|대표표제=사시|한글표제=사시|한자표제=徙市|대역어=|상위어=|하위어=|동의어=이시(移市), 항시(巷市)|관련어=가뭄, 정조시(停朝市)|분야=경제/산업/상업·무역|유형=의식·행사|지역=중국, 대한민국|시대=고대~조선시대|왕대=|집필자=김순주|시작시기=고대|시행시기=가뭄이나 국상이 났을 때|시행기관=|시행장소=|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03024|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aa_10504017_003 『태조실록』 5년 4월 17일], [http://sillok.history.go.kr/id/kda_13005001_003 『세종실록』 30년 5월 1일], [http://sillok.history.go.kr/id/kfa_10207017_002 『단종실록』 2년 7월 17일], [http://sillok.history.go.kr/id/kia_10206002_004 『성종실록』 2년 6월 2일]}}&lt;br /&gt;
&lt;br /&gt;
가뭄이 들거나 국상을 당하여 저자를 옮기는 일.&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사시(徙市)는 이시(移市) 또는 항시(巷市)라고도 한다. 우리나라는 신라 때부터 농사철에 가뭄이 심하면 기우제를 지내고 장터를 옮겼다. 국상이 나도 저자를 길거리로 옮겼다. 상인들은 저자를 닫고, 서민들을 위해 일용품 등에 한하여 거리에서 사고팔게 한 것이다.&lt;br /&gt;
&lt;br /&gt;
=='''연원 및 변천'''==&lt;br /&gt;
&lt;br /&gt;
『예기』 「사시조(徙市條)」에 “천자가 죽으면 7일 동안 항시하고, 제후가 죽으면 3일 동안 항시하니, 사시하는 것도 옳지 않겠는가[天子崩 巷市七日, 諸侯薨 巷市三日, 爲之徙市 不亦可乎]”라고 하였다. “주(註)에 이르기를 사시, 또는 항시라는 것은 교역 물건을 항(巷)으로 옮기는 것이다. 이는 서민들이 나라의 큰 상사(喪事)에 슬픔을 표하여 저자를 파하였지만 일용 필수품은 거래가 되어야 하므로 거리로 저자를 옮기는 것이다[註言 徙市又巷市者 徙交易之物於巷也. 此庶人爲國之大喪 憂戚罷市 而日用所需 又不可缺, 故徙市於巷也]”라고 하였다.&lt;br /&gt;
&lt;br /&gt;
『후한서』「낭의전(郞顗傳)」에 “가뭄이 들면 산천과 지렁이에 제사하고 이시한다[薦祭山川暴龍移市]” 하였는데 이는 사시와 같은 뜻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는 628년(신라 진평왕 50) 큰 가뭄이 들어 시장을 옮기고 용을 그려 비를 기원했다.&lt;br /&gt;
&lt;br /&gt;
고려나 조선에서도 가뭄이 심하게 들면 시장을 옮겼다는 기록이 자주 나온다. 『고려사』에는 “오래 비가 오지 않아 사시하였다[以久旱徙市]”든가, “비를 기원하기 위해 단선하고 사시하였다[禱雨斷扇徙市]”라고 하였다. 단선은 햇볕을 가리는 [[산선(繖扇)]]을 거두었다는 뜻이다. 조선에서도 1396년(태조 5) 가뭄 때문에 저자를 옮겼다고 하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aa_10504017_003 『태조실록』 5년 4월 17일]) 또한 1448년(세종 30)에는  예조에서 무당과 중을 불러 비를 빌고 시장을 옮기며 다섯 방위의 토룡(土龍), 즉 지렁이에게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왕에서 아뢰었다.([http://sillok.history.go.kr/id/kda_13005001_003 『세종실록』 30년 5월 1일]) 『사문류취』에 의하면 지렁이는 비를 내리게 한다고 한다.&lt;br /&gt;
&lt;br /&gt;
1454년(단종 2)에는 왕이 예조에 전지(傳旨)하여 가뭄이 심하니 남문은 닫고 북문을 열어 두며, 사시하게 하고, 무당을 모아 비를 빌도록 하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fa_10207017_002 『단종실록』 2년 7월 17일]) 조선초기와 달리 중기 이후로는 비를 기원할 때 무격 행사나 불사는 행하지 않았지만 사시는 여전히 시행하였다. 1471년(성종 2) 예조에서 사시하고 숭례문을 닫게 하며 [[격고(擊鼓)]]하지 말라고 청하였지만 이전과 달리 무격 행사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http://sillok.history.go.kr/id/kia_10206002_004 『성종실록』 2년 6월 2일])&lt;br /&gt;
&lt;br /&gt;
기우의 경우에 비해 국상 때 사시를 행한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 『국조오례의』의 「흉례의식」 계령(戒令)에 국상이 나면 5일간 항시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영조 때 기사를 보면 이에 관한 그간의 전례가 많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1728년(영조 4) 11월 16일 왕세자가 창경궁 진수당(進修堂)에서 훙서(薨逝)하였다. 이틀 후 예조에서 을유년, 즉 1645년(인조 23)의 [[등록(謄錄)]]을 상고해 보았으나 항시에 관하여 나타난 글이 없어서 무술년, 즉 1718년(숙종 44)의 전례에 따라 5일 동안 조시를 정지할 뜻을 아뢰었다.&lt;br /&gt;
&lt;br /&gt;
=='''절차 및 내용'''==&lt;br /&gt;
&lt;br /&gt;
가뭄이 심하면 산선으로 햇볕을 가리는 일을 그만두고, 도살을 금하고, 도랑[溝渠]을 소제하고, 사시하는 것은 고려 이래로 조선에까지 이어진 관행이었다. 또한 조선초기에는 이러한 일과 더불어 [[우사단(雩祀壇)]]과 원단(圓壇)에 제사를 지내 비를 빌고, 드러난 뼈를 덮어 주고, 짐승의 뼈를 묻어 주라는 명을 내렸다. 철주(輟酒), 즉 근신하는 의미에서 왕이 금주를 하고 [[감선(減膳)]], 즉 수랏상의 반찬 가짓수를 줄였으며, 전렵(田獵)을 금하였다. 의정부에 명하여 형조로 하여금 가벼운 죄는 용서하거나 면제하고 무거운 죄는 결단하게 하게 한 것도 가뭄이 심각할 때 내려진 조처였다.&lt;br /&gt;
&lt;br /&gt;
=='''생활ㆍ민속적 관련 사항'''==&lt;br /&gt;
&lt;br /&gt;
가뭄이 들어 사시를 할 때 서울 장안에서는 점포를 닫고 거리로 나오는 항시를 하지만, 지방에서는 장을 강가 또는 평소 물에 잠겨 있는 곳으로 옮겼다. 즉 시끄러운 시장을 물 가까이 둠으로써 잠자는 용을 깨워 비를 내리게 하려는 주술적인 의미다. &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고려사(高麗史)』      &lt;br /&gt;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lt;br /&gt;
&lt;br /&gt;
[[분류:경제]][[분류:산업]][[분류:상업·무역]][[분류:의식·행사]][[분류:중국, 대한민국]][[분류:고대~조선시대]]&lt;/div&gt;</summary>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f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