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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마시(司馬試)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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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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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ilman: XML 가져오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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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법제정책|대표표제=사마시|한글표제=사마시|한자표제=司馬試|대역어=|상위어=과거(科擧)|하위어=생원시(生員試), 진사시(進士試)|동의어=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소과(小科)|관련어=|분야=정치/인사/선발|유형=법제·정책|지역=|시대=조선|왕대=조선|집필자=최진옥|시행시기=1393년~1894년|시행기관=예조(禮曹), 성균관(成均館)|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6532|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aa_10107028_004 『태조실록』 1년 7월 28일], [http://sillok.history.go.kr/id/kaa_10302029_005 『태조실록』 3년 2월 29일], [http://sillok.history.go.kr/id/kca_10911014_002 『태종실록』 9년 11월 14일], [http://sillok.history.go.kr/id/kca_10507006_001 『태종실록』 5년 7월 6일]}}&lt;br /&gt;
&lt;br /&gt;
조선시대 과거 시험 중 생원진사시의 또 다른 이름.&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생원시와 진사시를 합하여 부를 때 사마시(司馬試) 또는 소과(小科)라고 하였다. 사마시는 3년마다 정기적으로 설행하는 식년시와 국가에 큰 경사가 있을 때 축하하기 위하여 실시하는 증광시로 구분되었다. 식년 사마시와 증광 사마시는 시행 시기만 다를 뿐 시험의 절차와 내용은 같았다. 생원시와 진사시는 항상 같이 설행하였는데 시험 절차는 같고 시험 과목이 달랐다.&lt;br /&gt;
&lt;br /&gt;
=='''제정 경위 및 목적'''==&lt;br /&gt;
&lt;br /&gt;
문과는 관리 선발이 목적이지만 사마시의 목적은 학문을 장려하는 데 있었다. 사마시 합격자에게는 성균관에 입학할 자격을 주었고 성균관에서 원점 300점을 취득하면 문과에 응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원칙이 반드시 지켜지지는 않았다. 생원·진사가 된 후에도 성균관에 입학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유학(幼學) 신분으로도 문과에 응시할 수 있었다. 사마시는 입사(入仕)와 무관하였지만 선비들은 사마시 합격을 문과 합격으로 가는 징검다리로 여겨 명예롭게 생각하였다.&lt;br /&gt;
&lt;br /&gt;
=='''내용'''==&lt;br /&gt;
&lt;br /&gt;
사마는 조선초 훈련관의 종4품 무관직이었다([http://sillok.history.go.kr/id/kaa_10107028_004 『태조실록』 1년 7월 28일]). 1394년(태조 3)에는 제위(諸衛)의 장군을 사마라 하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aa_10302029_005 『태조실록』 3년 2월 29일]). 이는 주(周)나라 제도에 군사를 맡은 관원을 사마라 한 데서 연유하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ca_10911014_002 『태종실록』 9년 11월 14일]).&lt;br /&gt;
&lt;br /&gt;
무관직의 하나였던 사마가 생원·진사를 지칭하게 된 것은 주나라 제도에 조사(造士)는 향학에서 국학으로 오르고 국학에서 사마에 오르는 것을 진사라 하였는데 이를 모방한 것이었다. 생원·진사는 주나라의 조사에 해당하며 문과 출신은 주의 진사에 해당하므로 문과를 사마시라 해야 옳은데 소과를 사마시라 한 것은 소과의 격을 높이기 위해서였다고 보는 연구자도 있다.&lt;br /&gt;
&lt;br /&gt;
사마시라는 용어는 조선초부터 썼다. 1405년(태종 5) 의정부(議政府) 찬성사(贊成事)곽추(郭樞)의 졸기(卒記)에 곽추가 일찍이 사마시를 관장하여 선비를 매우 잘 뽑았다는 기록이 있었다([http://sillok.history.go.kr/id/kca_10507006_001 『태종실록』 5년 7월 6일]).&lt;br /&gt;
&lt;br /&gt;
사마시가 생원진사시를 합칭하는 말이지만 조선초 약 60년간은 진사시가 설행되지 않고 생원시만 설행되었다. 따라서 이 시기의 사마시는 생원시만을 지칭하였다. 1393년(태조 2) 과거에서 설행된 생원시는 감시라 불렸다. 이후 1894년(고종 31) 과거제가 폐지되기까지 502년간 설행된 사마시는 식년시 163회, 증광시 67회로 모두 230회였다.&lt;br /&gt;
&lt;br /&gt;
정기적인 시험인 식년시가 결행된 것은 심한 가뭄과 임진왜란·병자호란으로 인한  5회뿐이었다. 태종 즉위 기념으로 처음 실시한 증광시는 선조 이전에는 즉위 원년에 한 번 시행하였다. 선조대부터 나라에 크고 작은 경사가 생기면 이를 축하하기 위하여 증광시를 시행하였는데 후기로 가면서 명분이 늘어나고 설행 빈도가 잦아졌다. 존호(尊號)를 올리거나 태자의 탄생과 왕비·왕세자의 책봉, 세자의 입학·가례(嘉禮), 원자(元子)·원손(元孫)의 탄생 등 국가의 경사를 치를 때마다 증광시를 실시하였다. 경사가 합쳐질 때는 대증광을 설행하였다.&lt;br /&gt;
&lt;br /&gt;
=='''변천'''==&lt;br /&gt;
&lt;br /&gt;
사마시의 합격 정원은 생원시에 100명, 진사시에 100명이었다. 19세기 이전까지는 잘 지켜졌으나 19세기 후반 철종 연간부터 증가하기 시작하여 고종 말년에 가서는 크게 늘어났다. 생원의 증가보다 진사의 증가가 두드러졌다. 이는 생원보다 진사를 더 선호한 경향이 반영된 것이었다. 1891년(고종 28) 증광시에서는 생원 238명, 진사 559명을 뽑았고, 마지막 과거인 1894년에는 생원 278명, 진사 1,055명을 뽑았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최진옥, 『조선시대 생원진사연구』, 집문당, 1998.      &lt;br /&gt;
*조좌호, 「이조사마시고」(상), 『성균관대학교논문집 인문사회계』 제14집 , 1969.      &lt;br /&gt;
&lt;br /&gt;
=='''관계망'''==&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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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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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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