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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빈전(殯殿)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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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20T23:17:00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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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ilman: XML 가져오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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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12-09T13:36:2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의식행사|대표표제=빈전|한글표제=빈전|한자표제=殯殿|대역어=|상위어=|하위어=|동의어=|관련어=빈궁(殯宮), 재궁(梓宮)|분야=왕실/왕실의례/흉례|유형=의식·행사|지역=대한민국|시대=조선|왕대=|집필자=이현진|시작시기=고려|시행시기=조선|시행기관=빈전도감(殯殿都監)|시행장소=궁궐|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3535|실록연계=}}&lt;br /&gt;
&lt;br /&gt;
왕이나 왕후가 승하하고 5개월 뒤 발인(發靷)할 때까지 왕 또는 후의 관(棺)인 [[재궁(梓宮)]]을 두는 전각.&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예기(禮記)』에 천자는 승하한 뒤 7개월 만에, 제후는 5개월 만에, 대부(大夫)·사(士)는 3개월 만에 무덤에 가서 장례를 치른다고 규정되어 있다. 조선의 왕은 중국 천자 다음의 제후에 해당하므로 승하한 뒤 5개월 만에 발인했는데, 발인할 때까지 관을 넣어두는 곳이 빈전이었다. 빈전은 별도의 전각을 새로이 짓지 않고 기존에 있던 전각 중에서 택하였고, 빈전 이름도 별도로 정하지 않았다.&lt;br /&gt;
&lt;br /&gt;
왕이나 왕후에 대해 빈전이라고 한다면, 세자와 세자빈, 후궁 등은 [[빈궁(殯宮)]]이라 일컬었다. 전통시대 예(禮)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등급을 구분 짓는 것이기 때문에 시신을 넣어두는 전각을 가리키는 명칭 또한 이렇듯 구분했던 것이다. 드물기는 하지만 왕이나 왕후에게 빈전이 아닌 빈궁이라고 쓴 기록도 있다. 태종의 경우 그의 시신을 넣어둔 전각을 빈궁이라고 일컬었다.&lt;br /&gt;
&lt;br /&gt;
=='''연원 및 변천'''==&lt;br /&gt;
&lt;br /&gt;
오례(五禮)의 의주(儀註)를 마련해서 동아시아 예제의 전범(典範)이 된 국가 전례서가 『대당개원례(大唐開元禮)』였다. 그런데 당(唐)나라의 이의부(李義府)·허경종(許敬宗)이 국가의 흉사(凶事)는 신하들이 말할 수 있는 바가 아니라고 하여 [[국장(國葬)]] 기록 자체를 없애고 기록 또한 하지 않았다. 명(明)나라의 『대명집례(大明集禮)』를 편찬할 때까지 변화가 없었다. 따라서 중국 황실의 기록에서 빈전의 설립 및 운영에 대한 기록을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그 대신 『대당개원례』에 당나라 벼슬아치[品官]들의 상례 과정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것이 조선 왕실의 국장과 유사한 형태를 보인다. 이 기록에 ‘빈소(殯所)’, ‘빈당(殯堂)’, ‘빈(殯)’ 등의 용어가 확인된다.&lt;br /&gt;
&lt;br /&gt;
우리나라에서는『고려사(高麗史)』에서 ‘빈(殯)’, ‘빈전(殯殿)’이라는 용어가 확인된다. 『고려사』에는 오례 중 [[흉례(凶禮)]]가 실려 있고 국가의 장례인 국휼(國恤)이 항목으로 들어가 있다. 그러나 고려 역시 국휼에 관한 의식은 당나라처럼 제정하지 않고 ‘나라에 큰 변고가 있으면 모두 임시로 고전을 참고하고 전례를 인용하여 일을 치렀으며, 일이 끝난 뒤에는 꺼리고 전하지 않아 역사에 나타난 것은 다만 대체적인 것 뿐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에 따라 고려 왕실에서 빈전을 운영했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lt;br /&gt;
&lt;br /&gt;
조선에 들어와서는 1396년(태조 5)에 승하한 태조의 계비(繼妃) 신덕왕후(神德王后)의 국상에서부터 빈전 기록을 볼 수 있다. 빈전의 설립과 운영에 대해 국가 전례서에 분명하게 제시한 곳은 없지만 왕이나 왕후의 상장(喪葬) 의례인 국장을 치를 때 빈전을 설치하여 발인할 때까지 빈전에서 거행한 의례들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1897년(광무 1)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한 뒤, 1898년(광무 2) 연말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되는 『대한예전(大韓禮典)』에는 흉례 항목이 있으나 국장 절차는 싣고 있지 않다. 따라서 대한제국 황실에서 빈전을 운영했는지는 기록으로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러나 고종의 국장 후 『고종태황제빈전혼전주감의궤(高宗태太皇帝殯殿魂殿主監儀軌)』를, 순종의 국장 후 『순종효황제빈전혼전주감의궤(純宗孝皇帝殯殿魂殿主監儀軌)』를 각각 작성한 데서 국장이 발생했을 때 빈전을 설치하고 운영했음이 단적으로 입증된다.&lt;br /&gt;
&lt;br /&gt;
=='''절차 및 내용'''==&lt;br /&gt;
&lt;br /&gt;
왕이 승하하면, 햇솜을 왕의 입과 코 사이에 얹어서 숨이 끊어졌는지를 확인한 뒤 안팎으로 곡하였다. 내시(內侍)는 왕이 평소 입던 웃옷을 매고 지붕에 올라가 왕의 몸에서 떠난 혼(魂)을 다시 돌아오라고 불렀다. 이어 왕의 시신을 목욕시키고, 사자(死者)에게 일체의 의복(衣服)을 갈아입히는 [[습(襲)]]을 행하였다. 시신에 옷을 입히고 이불로 싸는 소렴(小歛), 입관하는 대렴(大歛)을 마친 뒤, 왕 혹은 왕비의 시신을 안치한 재궁을 궁궐에 미리 마련해 둔 빈전에 봉안하였다. 재궁은 이후 발인 때까지 빈전에 봉안되어 있었다.&lt;br /&gt;
&lt;br /&gt;
왕이 승하하고 5개월째 되는 그 달에, 빈전에 봉안되어 있던 재궁을 상여인 [[대여(大轝)]]에 싣고 궁궐을 떠나 장지인 산릉으로 이동하였다. 그러면 역할이 끝난 빈전은 해체되고, 그와 관련하여 빈전해사제(殯殿解謝祭)를 지냈다. 이후 빈전으로 사용했던 전각은 본래의 용도로 되돌아갔다.&lt;br /&gt;
&lt;br /&gt;
빈전에서 거행된 의례는 1758년(영조 34)에 편찬된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을 따랐다. 『국조상례보편』이 조선 왕실의 상장 의례를 정비한 최종 결과물이었고, 이후에 편찬된 정조대 『국조오례통편(國朝五禮通編)』과 『춘관통고(春官通考)』에도 『국조상례보편』의 내용을 수록하였기 때문이다.&lt;br /&gt;
&lt;br /&gt;
조선시대 각 왕과 왕후의 빈전을 설치한 상황은 다음 &amp;lt;표&amp;gt;와 같다.&lt;br /&gt;
&lt;br /&gt;
[[파일:T00013535_01.PNG|150px]]&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고려사(高麗史)』      &lt;br /&gt;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lt;br /&gt;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      &lt;br /&gt;
*『국조오례통편(國朝五禮通編)』      &lt;br /&gt;
*『춘관통고(春官通考)』      &lt;br /&gt;
*『대한예전(大韓禮典)』      &lt;br /&gt;
*『고종태황제빈전혼전주감의궤(高宗태太皇帝殯殿魂殿主監儀軌)』      &lt;br /&gt;
*『순종효황제빈전혼전주감의궤(純宗孝皇帝殯殿魂殿主監儀軌)』      &lt;br /&gt;
*『예기집설대전(禮記集說大全)』      &lt;br /&gt;
*동경대학 동양문화연구소, 『대당개원례(大唐開元禮)』, 고전연구회, 1972.      &lt;br /&gt;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춘관통고(春官通考)』,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1977.      &lt;br /&gt;
*이현진, 「조선시대 종묘의 부묘 의례와 성격」, 『서울학연구』43, 2000.      &lt;br /&gt;
*정유미, 「조선시대 궁궐의 상·장례 공간에 관한 연구」, 고려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0.      &lt;br /&gt;
&lt;br /&gt;
=='''관계망'''==&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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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분류:왕실]][[분류:왕실의례]][[분류:흉례]][[분류:의식·행사]][[분류:대한민국]][[분류:조선]]&lt;/div&gt;</summary>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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