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feed xmlns="http://www.w3.org/2005/Atom" xml:lang="ko">
		<id>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action=history&amp;feed=atom&amp;title=%EB%B6%80%EC%A0%95%EC%9E%90%28%E5%89%AF%E6%AD%A3%E5%AD%97%29</id>
		<title>부정자(副正字) - 편집 역사</title>
		<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action=history&amp;feed=atom&amp;title=%EB%B6%80%EC%A0%95%EC%9E%90%28%E5%89%AF%E6%AD%A3%E5%AD%97%29"/>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title=%EB%B6%80%EC%A0%95%EC%9E%90(%E5%89%AF%E6%AD%A3%E5%AD%97)&amp;action=history"/>
		<updated>2026-04-20T19:48:33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generator>MediaWiki 1.27.3</generator>

	<entry>
		<id>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title=%EB%B6%80%EC%A0%95%EC%9E%90(%E5%89%AF%E6%AD%A3%E5%AD%97)&amp;diff=4539&amp;oldid=prev</id>
		<title>Silman: XML 가져오기</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title=%EB%B6%80%EC%A0%95%EC%9E%90(%E5%89%AF%E6%AD%A3%E5%AD%97)&amp;diff=4539&amp;oldid=prev"/>
				<updated>2017-12-09T15:48:2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직역|대표표제=부정자|한글표제=부정자|한자표제=副正字|대역어=|상위어=녹관(祿官), 동반(東班), 실직(實職), 정자(正字), 정직(正職), 참하관(參下官)|하위어=|동의어=|관련어=권지부정자(權知副正字), 문서응봉사(文書應奉司), 이문(吏文), 초직(初職)|분야=정치/행정/관직·관품|유형=직역|지역=대한민국|시대=조선|왕대=|집필자=오항녕|제정시기=1411년(태종 11)|폐지시기=조선말|소속관서=교서관(校書館), 승문원(承文院)|관품=종구품|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1216|실록연계=}}&lt;br /&gt;
&lt;br /&gt;
승문원(承文院)과 [[교서관(校書館)]]의 종9품 관원.&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1411년(태종 11) 문서응봉사(文書應奉司)를 승문원으로 고치면서 승문원에 부정자(副正字)를 처음 설치했다. 이때의 부정자는 정8품으로 2명이었다. 이들은 [[정자(正字)]]를 도와 책[典籍]·문장(文章)의 교정을 맡았으며, 각종 편찬에도 참여했다. 문과 급제자가 처음 하는 벼슬로 기능하기도 했다.&lt;br /&gt;
&lt;br /&gt;
=='''담당 직무'''==&lt;br /&gt;
&lt;br /&gt;
부정자는 승문원과 교서관의 종9품 관직이었으므로, 정자를 도와 책과 문장을 교정하는 직무를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초기에는 정자와 마찬가지로 세자관속(世子官屬)인 좌·우부정자가 있었는데, 이들은 왕세자에게 경서(經書)를 강론하던 [[서연(書筵)]]의 직무를 띠었을 것이다. 문과 급제자 중에서 나이 적고 글씨를 잘 쓰며 총명한 사람 10명을 선발하여, 성균권지(成均權知)·교서권지(校書權知)의 예에 따라 승문원 권지부정자(權知副正字)로 삼아 이문(吏文)을 익히게 하기도 했다. 부정자는 도서 편찬에 참여하기도 했다. 세종 때 집현전에서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편찬을  논의할 때나 실록청에서 『조선왕조실록』을 편찬할 때 교서관 부정자 등이 참여한 사례가 있다.&lt;br /&gt;
&lt;br /&gt;
=='''변천'''==&lt;br /&gt;
&lt;br /&gt;
1411년 정8품 관원 2명으로 부정자를 처음 설치했다. 1417년(태종 17)에는 정8품 부정자를 [[저작랑(著作郞)]]으로 고치고, 임시로 설치한 정9품 2명과 종9품 2명을 정자와 부정자로 칭하였다. 이것이 나중에 『경국대전』의 승문원과 교서관 종9품 관원이 되었다. 이런 직제는 변동이 없다가, 고종 연간에는 홍문관에도 부정자를 둔 듯하나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경국대전(經國大典)』      &lt;br /&gt;
*『대전회통(大典會通)』      &lt;br /&gt;
*김창현, 『조선초기 문과 급제자 연구』, 일조각, 1999.      &lt;br /&gt;
*박홍갑, 「조선 초기 승문원의 성립과 그 기능」, 『사학연구』 62, 2001.      &lt;br /&gt;
*오항녕, 「조선초기 문한관서의 정비와 사관제도」, 『한국사학보』 7, 1999.      &lt;br /&gt;
*차미희, 「조선후기 문과 급제자의 분관」, 『한국사학보』 6, 1999.      &lt;br /&gt;
&lt;br /&gt;
[[분류:정치]][[분류:행정]][[분류:관직·관품]][[분류:직역]][[분류:대한민국]][[분류:조선]]&lt;/div&gt;</summary>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f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