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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봉요(蜂腰)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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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5-22T06:56:51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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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ilman: XML 가져오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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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12-09T17:25:0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개념용어|대표표제=봉요|한글표제=봉요|한자표제=蜂腰|대역어=|상위어=과협(過峽)|하위어=|동의어=|관련어=결인(結咽), 봉요학슬지처(蜂腰鶴膝之處), 양성협(陽星峽), 양절목(陽節目), 음성협(陰星峽), 음절목(陰節目), 학슬(鶴膝)|분야=생활·풍속/풍수|유형=개념용어|지역=대한민국|시대=조선|왕대=|집필자=김혜정|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3825|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da_11507009_001 『세종실록』 15년 7월 9일], [http://sillok.history.go.kr/id/kda_11207007_003 『세종실록』 12년 7월 7일], [http://sillok.history.go.kr/id/kda_11208021_001 『세종실록』 12년 8월 21일], [http://sillok.history.go.kr/id/kda_11507022_006 『세종실록』 15년 7월 22일], [http://sillok.history.go.kr/id/kga_11004022_002 『세조실록』 10년 4월 22일]}}&lt;br /&gt;
&lt;br /&gt;
[[과협(過峽)]]의 하나로서 마치 벌[蜂]의 허리[腰]처럼 생겼다는 데서 생긴 이름.&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봉요는 용(龍)의 생사와 혈의 진위 여부를 살피는 데 중요한 풍수의 핵심 개념으로서 과협의 하위 개념이다. 과협을 이루는 두 산봉우리 사이가 짧은 것을 봉요라고 하고, 그 사이가 비교적 긴 것을 학의 무릎을 뜻하는 [[학슬(鶴膝)]]이라고 하는데 한꺼번에 봉요학슬이라고도 한다. 봉요학슬처는 대개 현무봉 주위에 형성되어 사람들이 고갯길로 많이 활용하기 때문에 자칫 지맥의 손상을 우려하여 조선왕조에서 왕릉이나 궁궐 뒤 봉요에 출입을 통제하여 문제가 되기고 했고, 더러는 보토를 하거나 혹은 엷은 돌을 깔기도 했다.&lt;br /&gt;
&lt;br /&gt;
=='''내용 및 특징'''==&lt;br /&gt;
&lt;br /&gt;
『지리신법(地理新法)』에서는 용이 살아 있어 혈을 맺기 위해서는 때때로 벌의 허리 모습, 말의 뒷덜미 모습, 크게 엎드렸다가 살짝 일어나는 모습 등이 있어야 부귀의 땅이라고 하였다. 즉 봉요를 [[내룡(來龍)]]이 낙혈(落穴)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조건으로 본 것이다.&lt;br /&gt;
&lt;br /&gt;
『감룡경(撼龍經)』에서도 봉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내룡이 뻗어 가다가 잠시 그 자취를 과협처에서 숨기기도 하는데, 이때 많은 사람들은 그 지맥의 행방을 놓쳐 버리기 쉽다고 한다. 그러나 이때 맥이 끊긴 것이 아니라 마치 베틀 북 속의 실처럼, 말발굽 자국처럼, 거미줄처럼, 벌의 허리처럼 이어짐을 잘 살펴야 함을 강조한다.&lt;br /&gt;
&lt;br /&gt;
여러 풍수서가 봉요에 대해 주의를 강조하는 것은 자칫 봉요 부분을 맥이 잘려 더 이상 지기가 흐르지 않는 것으로 보고 착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때문에 조선왕조에서 단맥 논쟁이 발생하기도 하는데 봉요는 주산이 낙맥할 때 끊긴 듯하지만 실처럼 이어진 것이며, 그것이 바로 현무수두(玄武垂頭)와도 같다는 해석을 통해서도 매우 강조되고 있다([http://sillok.history.go.kr/id/kda_11507009_001 『세종실록』 15년 7월 9일]).&lt;br /&gt;
&lt;br /&gt;
1430년(세종 12)에 상지관최양선(崔揚善)이 올린 한 장의 상소에 대해 고중안(高仲安)이 글을 올린 이후 30년 동안 [[헌릉(獻陵)]]에 대한 풍수 논쟁이 전개된다. 최양선은 여러 풍수고전을 근거로 하여 태종이 묻혀 있는 헌릉의 내룡 즉, [[주산(主山)]]에 혈장에 이르는 산 능선이 고갯길로 끊겨서 후손에게 불리하기 때문에 왕릉 뒤로 나 있는 고갯길을 막아 사람이 다니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여기서 고갯길은 다름 아닌 봉요이다. 그런데 그 봉요가 큰 길로 사용되고 있는데, 그것은 풍수에 능한 사람들이 금기시하는 것이라는 것이 최양선이 주장하는 핵심이다. 이에 대해 다른 상지관고중안은 그 고갯길은 기의 흐름을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기의 흐름을 보여주는 봉요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그대로 두어야 한다고 반박한다([http://sillok.history.go.kr/id/kda_11207007_003 『세종실록』 12년 7월 7일])([http://sillok.history.go.kr/id/kda_11208021_001 『세종실록』 12년 8월 21일]). 세종은 집현전 학자들에게 이에 대해 본격적인 연구를 하도록 지시하여 3년 뒤인 1433년(세종 15)에 그 결과물이 보고된다([http://sillok.history.go.kr/id/kda_11507022_006 『세종실록』 15년 7월 22일]). 대체로 고중안의 의견과 같은 것이었다. 헌릉 봉요처 단맥 논쟁은 그 후에도 오랫동안 지속되다가 1464년(세조 10) 이순지(李純之)에 의해 마무리된다. 이순지는 과협처의 손상을 막기 위해 새로(塞路)에 전돌을 깔자는 절충안을 제시하고 세조는 이것을 받아들인다([http://sillok.history.go.kr/id/kga_11004022_002 『세조실록』 10년 4월 22일]). 흔히 박석고개로 불리는 곳은 바로 이와 같은 봉요처를 보호함으로써 단맥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lt;br /&gt;
&lt;br /&gt;
=='''변천'''==&lt;br /&gt;
&lt;br /&gt;
『조선왕조실록』에서는 봉요가 조선전기 풍수지리 논쟁이 활발할 때 등장하나 조선중기 이후로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민간 풍수서적이나 풍수지리가 또는 연구자들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쓰고 있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동림조담(洞林照膽)』      &lt;br /&gt;
*김두규, 『조선 풍수학인의 생애와 논쟁』, 궁리출판사, 2000.      &lt;br /&gt;
*양균송 저·김두규 교감역주, 『감룡경·의룡경』, 비봉출판사, 2009.      &lt;br /&gt;
*채성우 저·김두규 역해, 『명산론』, 비봉출판사, 2002.      &lt;br /&gt;
*최창조 역주, 『청오경·금낭경』, 민음사, 1993.      &lt;br /&gt;
*최창조, 『한국의 풍수사상』, 민음사, 1984.      &lt;br /&gt;
*호순신 저·김두규 역해, 『지리신법』, 비봉출판사, 2004.      &lt;br /&gt;
&lt;br /&gt;
=='''관계망'''==&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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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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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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