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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벽온신방(辟瘟新方)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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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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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ilman: XML 가져오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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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서명사전|대표표제=벽온신방|한글표제=벽온신방|한자표제=辟瘟新方|대역어=|상위어=|하위어=|동의어=|관련어=|분야=의서/국어|유형=문헌|지역=한국|시대=조선|왕대=중종|집필자=성낙수|저편자=안경창(安景昌)|간행처=교서관|간행년일=1653년(효종 4)|권책수=1권 1책|사용활자=|표제=|소장처=규장각, 이화여자대학교 도서관|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70000031|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ua_10111017_004 『영조실록』 즉위년 11월 17일]}}&lt;br /&gt;
&lt;br /&gt;
1653년(효종 4) 전염병 치료를 위하여 안경창(安景昌) 등이 만든 의학서.&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1653년에 황해도 지방에서 전염병이 크게 유행하여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자, 효종(孝宗)의 명을 받아 어의인 안경창(安景昌) 등이 전염병 치료를 목적으로 의학서를 만들었다. 이어 국문(國文)으로 된 언해(諺解)를 덧붙여 『벽온신방(廦瘟新方)』이라 이름 짓고, 교서관(校書館)을 통하여 간행한 후 팔도에 널리 반포하였다.&lt;br /&gt;
&lt;br /&gt;
=='''편찬/발간 경위'''==&lt;br /&gt;
&lt;br /&gt;
1653년 황해도 지방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전염병이 서로(西路)를 통해 경기도와 수도인 한성 및 강원도까지 번지면서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였다. 효종은 약재를 내리며 치료를 하도록 하였으나, 조부양(趙復陽)이 “약물은 많은 사람을 구제할 수 없으니, 치료법이나 약명을 널리 알려주는 것이 더 좋다.”는 건의를 하였다. 이에 전염병을 미리 예방하거나 치유하는 방법을 널리 알리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의관을 시켜 『간이벽온방(簡易辟瘟方)』을 상고하여 보완한 후 인포(印布)하도록 결정을 하였고, 효종은 어의인 안경창 등에게 명하여 이 책을 완성한 후에 국문의 언해를 덧붙이게 하였다. 그리고 『벽온신방』이라 이름을 붙여 교서관(校書館)에서 간행하게 한 후 팔도의 여러 읍에 널리 반포하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ua_10111017_004 『영조실록』 즉위년 11월 17일])&lt;br /&gt;
&lt;br /&gt;
=='''서지 사항'''==&lt;br /&gt;
&lt;br /&gt;
총 1권 1책이며, 목판본이다. 책 크기는 세로 30.6, 가로 20.6cm이고, 지질은 한지이다.&lt;br /&gt;
&lt;br /&gt;
저자 안경창은 자는 자흥(子興)으로, 1627년(인조 5) 23세 때 정묘식년시에서 9명을 뽑은 의과에 급제하여 내의원 내의(內醫)가 되었으며, 이후 통정대부(通政大夫)에까지 올랐다.&lt;br /&gt;
&lt;br /&gt;
한편 현재 전하는 책이 초간본인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1723년(경종 3)에 갑인자(甲寅字)로 다시 재간되기도 하였다. 규장각과 이화여자대학교 도서관에 소장 중이다.&lt;br /&gt;
&lt;br /&gt;
=='''구성/내용'''==&lt;br /&gt;
&lt;br /&gt;
중종 대에 전염병의 유행은 중요한 사회 문제였는데, 이에 대하여 정부 측은 그 대응책의 일환으로 전염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하는 『벽온방』 의서를 여러 차례 간행되었다. 1613년(광해군 5)에 허준(許浚)이 참여한 『신찬벽온방(新纂辟溫方)』은 조선 후기 『벽온방』 중 가장 뛰어난 의학서였지만, 내용이 너무 전문적이어서 민간에서 사용하기 쉬운 실용적인 의학서가 필요하였던 것이다. 이에 『벽온신방』이 편찬되었다.&lt;br /&gt;
&lt;br /&gt;
이 책은 『벽온방』에서 약재의 난해한 것은 빼고, 속방의 쓰기 쉬운 것을 첨가하여 언해를 붙여 간행한 것이 특징이다.&lt;br /&gt;
&lt;br /&gt;
책의 머리에는 도승지겸양관대제학(都承旨兼兩館大提學)인　채유후(蔡裕後)의 서문이 있다. 주요한 내용을 살펴보면, 「온역병원(瘟疫病原)」에서는 병의 원인과 초기의 치료 방법을 설명했는데, 온역(瘟疫 : 전염병)의 증세가 나타날 때의 치료법으로 땀을 내게 하는 승마갈근탕(升麻葛根湯)의 효능과 조제 방법·복용법을 설명했다. 특히 도엽(桃葉)·연근총백(蓮根蔥白)·개채자(芥采子)·부평(浮萍) 등 우리 생활주변에 있는 초약(草藥)으로 초기의 증세를 치유하는 방법을 적었다. 「온역반표반리의화해(瘟疫半表半裏宜和解)」에서는 병이 4~5일 경과한 중기의 치유법으로, 화해(和解)를 중시하고 소시호탕(小柴胡湯)의 효능과 조제법·복용법을 설명했다. 「온역리증의하(瘟疫裏證宜下)」는 6~7일 경과한 후의 치유법으로 대시호탕(大柴胡湯)의 약효와 조제방법·복용법을 설명했다. 「온역양법(瘟疫穰法)」과 「온역벽법(瘟疫辟法)」에서는 온역을 물리치고 피하는 방법을, 「부전염법(不傳染法)」에서는 전염되지 않게 하는 방법을, 「금기(禁忌)」에서는 병자가 금해야 할 사항을 설명했다. 여기에서의 온역은 장티푸스나 발진티푸스로 보이는데, 허준의 『신찬벽온방』보다 간략하고 임상을 거치지 않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실용면에서는 뒤떨어진다.&lt;br /&gt;
&lt;br /&gt;
이 책의 국어사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이 책은 17세기에 간행된 것이므로, 표기에도 시대적 경향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 체언 중에서 ‘ㅅ’종성인 경우 모음으로 시작되는 조사가 오면 예외 없이 연철되는 것 외에 많은 경우에 분철과 중철이 혼용되었다. 합용병서에는 ‘ㅅ계, ㅂ계’만 보이고, ‘ㅄ계’는 나타나지 않는다. 종성은 ‘ㄷ 종성’이 사라져 7종성이 되었으며, 자음동화는 ‘ㅅ, ㄷ’이 종성에서 ‘ㄴ’으로 동화되는 예 외에는 반영하지 않았다. 모음 사이의 유기음 표기 방법은 다양하게 나타나고, 받침 다음의 경음화 현상은 표기에 반영했다.&lt;br /&gt;
&lt;br /&gt;
문법면에서 주격조사 ‘가’가 쓰이고, 의도법으로 쓰이던 ‘-오/우-’가 소멸되었고, 접속조사도 ‘와/과’로 음운조건에 따라 변이형태로 나타난다.&lt;br /&gt;
&lt;br /&gt;
어휘는 ‘즉시’와 ‘즉제’가 같이 쓰이며, ‘다ᄉᆞᆸ’이 ‘다섯 홉’을 나타내고, ‘알ᄑᆞ다’와 ‘앓다’와 병용되고 있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영조실록(英祖實錄)』      &lt;br /&gt;
*김두종, 『한국의학사(韓國醫學史)』, 탐구당, 1979.      &lt;br /&gt;
*박종국, 『한국어 발달사』, 세종학연구원, 1996.      &lt;br /&gt;
*최현배, 『고친 한글갈』, 정음사, 1961.      &lt;br /&gt;
&lt;br /&gt;
[[분류:의서]][[분류:국어]][[분류:문헌]][[분류:한국]][[분류:조선]][[분류:중종]]&lt;/div&gt;</summary>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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