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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법화사(法華寺)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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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ilman: XML 가져오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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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개념용어|대표표제=법화사|한글표제=법화사|한자표제=法華寺|대역어=|상위어=|하위어=|동의어=|관련어=미타삼존(彌陀三尊), 황엄(黃儼), 장보고(張保皐)|분야=문화/종교/불교|유형=개념용어|지역=제주|시대=조선|왕대=|집필자=오경후|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4385|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ca_10604020_002 『태종실록』 6년 4월 20일], [http://sillok.history.go.kr/id/kca_10604020_004 『태종실록』 6년 4월 20일], [http://sillok.history.go.kr/id/kca_10607016_001 『태종실록』 6년 7월 16일], [http://sillok.history.go.kr/id/kca_10802028_002 『태종실록』 8년 2월 28일]}}&lt;br /&gt;
&lt;br /&gt;
원나라 간섭기에 일본 정벌의 전초 기지로 활용되었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 있던 절.&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법화사(法華寺)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하원동에 있는 절이다. 통일신라시대 때 창건되었으며, 고려후기에는 원나라가 일본 정벌의 전초 기지로 활용하기도 하였다. 법화사에는 당시 원나라의 양공(良工)이 주조한 아미타삼존불상이 안치되어 있었는데, 조선 태종대에 명나라의 사신이 이 금동불상 3좌(座)를 가져갔다.&lt;br /&gt;
&lt;br /&gt;
=='''내용 및 특징'''==&lt;br /&gt;
&lt;br /&gt;
법화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장보고가 창건했다고 알려져 있다. 국태민안(國泰民安)과 왕실의 융성을 기원했던 [[비보사찰(裨補寺刹)]]이었다. 고려시대 원나라의 간섭기였던 1269년(고려 원종 10)부터 1279년(고려 충렬왕 5)까지 대대적인 중창이 이루어졌다. 당시 원나라의 장인이 구리로 주조한 아미타삼존불 3좌가 안치되어 있었다. 이후 조선시대 들어서 1406년(태종 6)에 명나라 사신 황엄(黃儼)이 이 불상을 가져가고자 하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ca_10604020_002 『태종실록』 6년 4월 20일]).&lt;br /&gt;
&lt;br /&gt;
태종은 황엄의 방문이 제주의 형세를 염탐하기 위한 것이라는 신료들의 말을 듣고는 법화사의 불상을 미리 옮겨왔다. 왕명을 전하기 위해 임시로 선발한 선차(宣差) 김도생(金道生)과 5위(五衛)에 속하는 정5품의 무관직(武官職)인 [[사직(司直)]]박모(朴模)를 보내 법화사의 불상을 황엄보다 먼저 가져오게 한 것이다. 불상을 전라도 나주(羅州)에 먼저 가져다 놓으면 황엄 등이 제주에 들어갈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http://sillok.history.go.kr/id/kca_10604020_004 『태종실록』 6년 4월 20일]). 이에 김도생과 박모는 도성을 떠나 17일이나 걸려 삼존불을 모셔와 황엄에게 전달했다([http://sillok.history.go.kr/id/kca_10607016_001 『태종실록』 6년 7월 16일]).&lt;br /&gt;
&lt;br /&gt;
=='''변천'''==&lt;br /&gt;
&lt;br /&gt;
조선초까지만 해도 법화사는 매우 큰 사찰이었으나, 태종대의 불교 억제 정책에 의해 크게 축소되었다. 1408년(태종 8) 제주목사가 올린 보고에 따르면 이전까지 법화사에는 노비 280구가 있었는데 30구만 남겨놓고 나머지는 모두 전농시에 귀속되었다([http://sillok.history.go.kr/id/kca_10802028_002 『태종실록』 8년 2월 28일]). 이후 법화사는 계속 퇴락해서 16세기 후반에는 폐사되었다. 이후 17세기에 초가 암자 몇 채가 지어져 사찰의 명맥을 유지해 갔으나 18세기에는 그것마저 사라지게 되었다.&lt;br /&gt;
&lt;br /&gt;
법화사는 근대 이후에도 수차례 복원과 폐사를 반복하였다. 1926년 제주 관음사의 포교당으로 중창이 되었다가 1948년 제주4·3사건이 발발한 후 토벌대에 의해 전소되었다. 1950년에 다시 법당과 요사 등을 지었는데 한국전쟁 발발 이후 육군의 제3숙영지로 사용되었다. 1960년대 후반부터 발굴 조사가 진행되었고, 1987년에 대웅전이 중창되었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lt;br /&gt;
*권상로, 『한국사찰전서』, 동국대학교출판부, 1979.      &lt;br /&gt;
*이능화, 『조선불교통사』, 신문관, 1918.      &lt;br /&gt;
*한우근, 『유교정치와 불교』, 일조각, 1993.      &lt;br /&gt;
*이정 편저, 『한국불교사찰사전』, 불교시대사, 1996.      &lt;br /&gt;
&lt;br /&gt;
[[분류:문화]][[분류:종교]][[분류:불교]][[분류:개념용어]][[분류:제주]][[분류:조선]]&lt;/div&gt;</summary>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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