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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박돈부(朴敦復)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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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ilman: XML 가져오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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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인명사전|대표표제=박돈부|한글표제=박돈부|한자표제=朴敦復|이칭=|대역어=|상위어=|하위어=|동의어=|관련어=|분야=정치·행정가/관료/문신, 학자|유형=인물|지역=한국|시대=조선 중기|왕대=선조~인조|집필자=박은화|자= 무회(无悔) |호= 창주(滄洲) |봉작=|시호=|출신=양반|성별=남자|출생=1584년(선조 17)|사망=1647년(인조 25)|본관=무안(務安)|주거지= 경상도 영해(寧海) |묘소소재지=|증조부= 박붕(朴鵬) |조부= 박효장(朴孝長) |부= 박응발(朴應發) |모_외조=재령이씨(載寧李氏): 이은보(李殷輔)의 딸|형제=(동생)박이부(朴以復), 박양부(朴陽復), 박지부(朴知復)|처_장인=한양조씨(漢陽趙氏): 조효원(趙孝元)의 딸|자녀=|유명자손=|저술문집=『창주문집(滄洲文集)』|작품=|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10000536|실록연계=}}&lt;br /&gt;
&lt;br /&gt;
=='''총론'''==&lt;br /&gt;
&lt;br /&gt;
[1584년(선조 17)~1647년(인조 25) = 64세]. 조선 중기 선조~인조 때 활동한 문신이자 학자. 행직(行職)은 [[사헌부(司憲府)]][[장령(掌令)]]이다. 자는 무회(无悔)이고, 호는 창주(滄洲)이다. 본관은 무안(務安)이며, 주거지는 경상도 영해(寧海)이다. 아버지는 [[군자감(軍資監)]][[첨정(僉正)]]박응발(朴應發)이며, 어머니 재령이씨(載寧李氏)는 이은보(李殷輔)의 딸이다. 부인 한양조씨(漢陽趙氏)는 조효원(趙孝元)의 딸이다. 외삼촌 이함(李涵)에게 수학하였다.&lt;br /&gt;
&lt;br /&gt;
=='''선조~인조 시대 활동'''==&lt;br /&gt;
&lt;br /&gt;
1606년(선조 39) 23세 때 사마시(司馬試)에 [[생원(生員)]]으로 합격하였다. 그 뒤 곧바로 아버지의 상(喪)을 당하였고, 이어 광해군의 난정(亂政)이 전개되면서 십여 년 동안 진취를 단념하였다.&lt;br /&gt;
&lt;br /&gt;
1624년(인조 2) [[증광시(增廣試)]][[문과(文科)]]의 병과(丙科)에 합격하여 [[성균관(成均館)]][[학유(學諭)]]가 되었다가 이듬해 [[학록(學錄)]]이 되었으나 어머니의 상을 당하여 사직하고 돌아왔다. 1629년(인조 7) [[박사(博士)]]가 되고, 그 뒤 [[전적(典籍)]]이 되었으며, 이어 예조 [[좌랑(佐郞)]]·호조 좌랑·병조 좌랑, 전라도도사(全羅道都事), [[춘추관(春秋館)]][[기주관(記注官)]]을 역임하였다. 1634년(인조 12) 진주판관(晉州判官)으로 나갔다. 당시 진주는 일이 많아 다른 고을에 비해 다스리기 벅찬 고을로 손꼽혔으나, 그가 부임한지 두어 달에 경내를 크게 정화시켰다. 또 [[둔전(屯田)]]·[[공납(貢納)]] 등에 따른 고질적인 민폐(民弊)들을 관찰사에게 보고하여 모두 시정함으로써 백성들로부터 높은 칭송을 받았다. 1636년(인조 14) &amp;lt;[[병자호란(丙子胡亂)]]&amp;gt;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의병을 모아 [[남한산성(南漢山城)]]으로 달려갔다가 강화가 성립됨에 따라 어가(御駕)를 모시고 환도하여 다시 형조 [[정랑(正郞)]]이 되었다. 이어 [[직강(直講)]]·[[장령(掌令)]]·[[호군(護軍)]]·[[사예(司藝)]]를 거쳐 1644년(인조 22) 김해부사(金海府使)로 나갔다. 이듬해 다시 장령이 되었다가 권신 [[홍무적(洪茂績)]]의 탄핵을 받자 벼슬길을 단념하였다. 경상도 영해(寧海)로 돌아와 죽림(竹林) 속에 서당을 짓고 학문탐구로 여생을 지내다가 1647년(인조 25) 세상을 떠나니, 향년 64세이다. 저서로는 『창주문집(滄洲文集)』 3권이 있다.&lt;br /&gt;
&lt;br /&gt;
=='''성품과 일화'''==&lt;br /&gt;
&lt;br /&gt;
박돈부의 성품과 자질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그는 의지가 굳고 기개가 높았다. 1637년(인조 15)부터 1644년(인조 22)의 8년 사이에 장령을 여섯 번 역임하였는데, 그때 마다 대의(大義) 앞에서는 어떠한 권신에게도 굽히지 않았다. 또 청렴하여 지방관을 지내고 돌아올 적이면 사사로이 쓰던 집기까지도 궁핍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책 상자만을 챙겼다. 문장에 있어서도 수식을 숭상하지 않고 온건한 문체로 써서 일가를 이루었으며, 한때 여헌(旅軒)장현광(張顯光)과 종유(從遊)하며 경학과 예학도 많은 연구를 하였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인조실록(仁祖實錄)』      &lt;br /&gt;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      &lt;br /&gt;
*『사마방목(司馬榜目)』      &lt;br /&gt;
*『조선인명사서(朝鮮人名辭書)』      &lt;br /&gt;
*『해동인물지(海東人物志)』      &lt;br /&gt;
&lt;br /&gt;
[[분류:정치·행정가]][[분류:관료]][[분류:문신, 학자]][[분류:인물]][[분류:한국]][[분류:조선 중기]][[분류:선조~인조]]&lt;/div&gt;</summary>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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