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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문묘출향(文廟黜享)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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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ilman: XML 가져오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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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사건|대표표제=문묘출향|한글표제=문묘출향|한자표제=文廟黜享|대역어=문묘배향(文廟配享)|상위어=문묘(文廟)|하위어=|동의어=문묘철향(文廟撤享)|관련어=|분야=정치/정치운영/정쟁·정론|유형=사건|지역=|시대=|왕대=|집필자=이영춘|발생시기=|발생장소=|관련인물집단=|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2745|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sa_11503014_001 『숙종실록』  15년 3월 14일], [http://sillok.history.go.kr/id/ksa_11503018_001 『숙종실록』 15년 3월 18일]}}&lt;br /&gt;
&lt;br /&gt;
문묘에 배향된 선현의 위판을 퇴출하고 제사에서 제외하는 일.&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문묘출향(文廟黜享)은 문묘철향(文廟撤享)이라고도 하는데, 문묘에 배향되어 있던 특정 선현(先賢)의 위판(位版)을 퇴출하고 봄·가을의 석채(釋菜) 제사에서 제외시키는 일을 말한다. 이는 그 당사자의 학문이나 행실에 심각한 비판이 제기되거나 당시의 정치 상황에 따라 일어나는 것이 보통이었다. 조선시대의 문묘출향은 주로 1689년(숙종 15)에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남인이 정권을 잡은 후 서인의 학문적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이이(李珥)와 성혼(成渾)의 위패를 문묘에서 퇴출시킨 일을 말한다.&lt;br /&gt;
&lt;br /&gt;
=='''역사적 배경'''==&lt;br /&gt;
&lt;br /&gt;
이이를 문묘에 배향하자는 의논은 [[인조반정(仁祖反正)]] 다음 해인 1624년(인조 2)에 서인들을 중심으로 한 조정에서 처음으로 건의되었고, 1635(인조 13)에는 [[송시형(宋時瑩)]] 등의 유생들이 성혼(成渾)과 아울러 양현(兩賢)의 문묘 종사를 상소하였다.[『인조실록』 5월 11일 1번째기사] 그러나 인조는 두 사람의 평판에 논란이 있다 하여 허락하지 않았다. 이후 서인들은 지속적으로 배향을 요청하였으나 남인들은 이이의 불교 전력과 성혼의 왜란 시 몽진하던 선조가 집 앞을 지나가는데도 나와 뵙지 않았다는 과오를 들어 반대하였다. 두 사람의 종사는 이후 50여 년간 서인과 남인들 간의 당론으로 논쟁이 지속되다가 1680년(숙종 6) 경신환국(庚申換局)으로 남인들이 일망타진 된 후 1682년(숙종 8)에 와서 비로소 이루어졌다.&lt;br /&gt;
&lt;br /&gt;
=='''발단'''==&lt;br /&gt;
&lt;br /&gt;
1689년(숙종 15) 2월에 경종(景宗)을 원자로 정한 데 대하여 송시열(宋時烈)이 반대 상소를 올려 숙종을 격분시킴으로써 [[기사환국(己巳換局)]]이 일어나 남인이 정권을 잡았다. 이는 평소 이이와 성혼의 문묘배향에 불만을 품고 있던 남인에게 두 사람을 문묘에서 출향시킬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lt;br /&gt;
&lt;br /&gt;
=='''경과'''==&lt;br /&gt;
&lt;br /&gt;
1689년 2월에 정권을 잡은 남인은 이이와 성혼의 문묘출향을 추진하였다. 3월 14일 대사간권해(權瑎)와 헌납이현조(李玄祚)가 출향을 발론하였는데,([http://sillok.history.go.kr/id/ksa_11503014_001 『숙종실록』  15년 3월 14일]) 17일에 영부사이상진(李尙眞)이 이를 비판하자 숙종은 다음날 바로 출향을 결정하여 반포하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sa_11503018_001 『숙종실록』 15년 3월 18일]) 이후 서울의 성균관과 지방의 향교에서 두 사람의 위판을 퇴출시키는 조치가 단행되었으나 일부 지방의 향교에서는 이를 거부하고 출향을 시행하지 않은 곳도 많았다. 이에 남인 정권은 수시로 이를 단속하는 조치를 취하였다.&lt;br /&gt;
&lt;br /&gt;
5년 후인 1694년(숙종 20) 3월에 갑술환국(甲戌換局)이 일어나 서인이 재집권하자 그 해 6월에 두 사람을 다시 문묘에 배향하는 복향(復享)이 이루어졌다. 이때도 남인 측 사림에서 반대하는 상소가 많았지만, 서인들은 그들을 처벌하고 복향을 관철하였다. 이이와 성혼의 문묘배향과 철향, 복향은 당쟁의 향배와 관련하여 많은 분란과 갈등을 유발하였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김상오, 「당쟁사의 입장에서 본 이이의 문묘종사 문제」, 『전북사학』4, 전북대학교 사학회, 1980.      &lt;br /&gt;
*정옥자, 「조선후기 문묘사전의 이정; 중국유현의 승출에 관련하여」, 『한국문화』7, 서울대학교 한국문화연구소, 1986.      &lt;br /&gt;
&lt;br /&gt;
[[분류:정치]][[분류:정치운영]][[분류:정쟁·정론]][[분류:사건]]&lt;/div&gt;</summary>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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