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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맥반(麥飯)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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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21T02:29:48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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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12-09T16:23:4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음식|대표표제=맥반|한글표제=맥반|한자표제=麥飯|대역어=보리밥|상위어=|하위어=|동의어=|관련어=|분야=생활·풍속/식생활/음식|유형=음식|지역=대한민국|시대=조선|왕대=|집필자=차경희|재료=보리[麥], 멥쌀[粳米], 물[水]|관련의례행사=|계절=상시|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5876|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ga_10805015_001 『세조실록』 8년 5월 15일], [http://sillok.history.go.kr/id/ksa_13011012_002 『숙종실록』 30년 11월 12일], [http://sillok.history.go.kr/id/kua_11912020_002 『영조실록』 19년 12월 20일]}}&lt;br /&gt;
&lt;br /&gt;
보리만으로 밥을 짓거나 보리에 쌀을 섞어 지은 밥.&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보리를 푹 삶아 불린 쌀과 함께 섞어 지은 보리밥이다. 보리쌀만으로 꽁보리밥을 짓기도 하고, 보리에 쌀을 섞어 짓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보리를 삼국시대 이후부터 식용하였고, 조선시대에 보리밥은 검박한 삶을 의미하였다.&lt;br /&gt;
&lt;br /&gt;
=='''만드는 법'''==&lt;br /&gt;
&lt;br /&gt;
보리는 쌀에 비해 섬유질이 많아 잘 무르지 않으므로 먼저 삶아야 한다. 보리를 깨끗하게 씻은 후 넉넉히 물을 부어 푹 무르게 삶아 건진다. 쌀은 씻어서 불린 후 솥에 삶아 놓은 보리와 함께 섞어 물을 붓고 끓인다. 처음에는 센 불에서 끓이다가 한소끔 끓어오르면 불을 줄여 끓이고, 약한 불에서 충분히 뜸을 들인다.&lt;br /&gt;
&lt;br /&gt;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는 보리가 완전히 누렇게 여물기 전에 베어 말렸다 타작해서 멥쌀을 섞어 밥을 지으면 잘 익고 맛도 구수하다고 하였다.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 기록된 취맥이숙법(炊麥易熟法) 즉 보리밥을 쉽게 무르게 하는 법에는 보리쌀은 단단하여 잘 익지 않으므로 물에 담갔다 밥을 지으면 쉽게 익고 밥맛도 있고 땔감도 절약할 수 있다고 하였다.&lt;br /&gt;
&lt;br /&gt;
『조선요리제법(朝鮮料理製法)』에 기록된 보리밥을 짓는 법은 “보리를 잘 씻어 솥에 넣고 물을 맞추어 부은 후 덮개를 덮고 불을 때어 끓이다가 한참 끓거든 불을 그치고 잠깐 있다가 다시 물을 조금 뿌리고 잠깐 더 끓여서 뜸을 들여 푸나니 이는 순 보리로만 하는 것이요. 만일 쌀을 섞으려면 먼저 보리를 1홉쯤 정하게 씻어 삶아서 건져 물을 따라 버리고 솥에 넣고 쌀 5홉을 보리 위에 얹고 물을 맞춰서 붓고 끓이나니라.”고 했다.&lt;br /&gt;
&lt;br /&gt;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料理製法)』에는 보리밥을 지을 때 쌀을 섞어서 하려면 먼저 보리를 삶아서 물을 따라 버리고, 쌀을 씻어 함께 담고 새로 물을 부어 끓여서 뜸을 오래 들였다가 퍼내어 먹되 먼저 보리 삶을 때 통팥을 넣고 함께 삶아 짓는 것이 맛이 제일 좋다고 하였다.&lt;br /&gt;
&lt;br /&gt;
=='''연원 및 용도'''==&lt;br /&gt;
&lt;br /&gt;
보리의 원산지는 이란·이라크·터키·이스라엘·시리아 등의 중동 지역으로, 북인도·네팔·중국을 거쳐 한국에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부여를 떠난 주몽(朱蒙)에게 그의 생모인 유화(柳花)가 비둘기 목에 보리씨를 달아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또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고구려와 신라에 큰 우박이 내려 콩과 보리와 같은 작물의 피해가 많았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므로 한국에는 삼국시대에 보리가 보급된 것으로 여겨진다.&lt;br /&gt;
&lt;br /&gt;
보리는 쌀보다 비교적 경작이 용이하다. 냉해에 약하긴 하나 척박한 땅에서 잘 자라 예나 지금이나 소박한 음식의 표본이 되고 있다. 세조는 성균관 생원(生員) 손비장(孫比長) 등 5인을 불러 전교할 때에 유생(儒生)들에게 어선(御膳)과 맥반(麥飯)을 내려주고, 맥반의 의미를 파악하여 겸손하고 교만하지 말아야 함을 강조하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ga_10805015_001 『세조실록』 8년 5월 15일]). 숙종대에 홍영(洪泳)의 단(壇) 쌓는 일을 논한 상소에 대한 호조 참판김진규(金鎭圭)의 상소문에서 역시 ‘한 그릇의 맥반도 천신(薦新)하지 못하였는데……’라고 하여 맥반을 하찮은 음식으로 비유하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sa_13011012_002 『숙종실록』 30년 11월 12일]). 또한 영조는 후한(後漢)의 광무제(光武帝)가 잠시 어지러운 성중을 피해 남궁(南宮)에 이르렀을 때에 큰 풍우(風雨)를 만나 길가의 빈집에 들어가 불을 피워 놓고 젖은 옷을 말린 다음 맥반을 지어 요기한 고사(故事)를 인용하면서, 즉 어지러운 난세에 힘든 환경을 견디며 극복하여 훗날을 도모할 인재가 되지 못함을 비유할 때 맥반을 예로 들었다([http://sillok.history.go.kr/id/kua_11912020_002 『영조실록』 19년 12월 20일]).&lt;br /&gt;
&lt;br /&gt;
이런 맥반의 의미는 사대부들의 문집에서도 찾을 수 있다. 윤선도(尹善道)는 『고산유고(孤山遺稿)』에서 「밥상을 마주하고[對案]」라는 시에서 안빈낙도(安貧樂道)의 뜻을 전했다. &lt;br /&gt;
&lt;br /&gt;
앞산에 비온 뒤에 돋아나는 고사리 싹 / 前山雨後蕨芽新&lt;br /&gt;
&lt;br /&gt;
밥 짓는 아낙이여 봄 왔으니 얼굴 펴오 / 饌婦春來莫更顰&lt;br /&gt;
&lt;br /&gt;
샘물 가득 떠서 보리밥 말아 먹으면 / 滿酌玉泉和麥飯&lt;br /&gt;
&lt;br /&gt;
유인의 살림살이 가난하지 않다오 / 幽人活計不爲貧&lt;br /&gt;
&lt;br /&gt;
정약용(丁若鏞)의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에서도 「여름날에 소회를 적어 족부(族父)인 이조 참판에게 올리다[夏日述懷 奉簡族父吏曹參判]」는 글에서 “명아줏국 서둘러 주발에 푸고[藜羹催瀉碗] / 보리밥 사발에 수북해 좋다네[麥飯喜盈盂].”라고 했고, 「장기농가(長鬐農歌)」에서도 “상추쌈에 보리밥을 둘둘 싸서 삼키고는[萵葉團包麥飯呑] / 고추장에 파뿌리를 곁들여서 먹는다[合同椒醬與葱根]”라고 하였다.&lt;br /&gt;
&lt;br /&gt;
『일성록(日省錄)』에 의하면, 보리밥은 약용으로도 쓰였다. 영조가 병환 때문에 약방의 문안계사(問安啓辭)에 답하기를, “맥반을 붙여 둔 곳은 좀 나았지만 아직도 남은 기운이 있다.”라고 한 것으로 보아 보리밥을 환부에 붙이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lt;br /&gt;
&lt;br /&gt;
=='''생활·민속적 관련 사항'''==&lt;br /&gt;
&lt;br /&gt;
『온주법(醞酒法)』에 옷에 먹물이 묻은 것은 따뜻한 보리밥이나 뜨거운 초로 지운다고 하였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삼국사기(三國史記)』      &lt;br /&gt;
*『삼국유사(三國遺事)』      &lt;br /&gt;
*『일성록(日省錄)』      &lt;br /&gt;
*『고산유고(孤山遺稿)』      &lt;br /&gt;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      &lt;br /&gt;
*『온주법(醞酒法)』      &lt;br /&gt;
*『임원경제지(林園經濟志)』      &lt;br /&gt;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料理製法)』      &lt;br /&gt;
*『조선요리제법(朝鮮料理製法)』      &lt;br /&gt;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      &lt;br /&gt;
&lt;br /&gt;
[[분류:생활·풍속]][[분류:식생활]][[분류:음식]][[분류:음식]][[분류:대한민국]][[분류:조선]]&lt;/div&gt;</summary>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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