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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마포(麻布)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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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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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ilman: XML 가져오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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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물품도구|대표표제=마포|한글표제=마포|한자표제=麻布|대역어=|상위어=|하위어=|동의어=대마포(大麻布), 포(布)|관련어=구승포(九升布), 면포(綿布), 백저포(白紵布), 상포(常布), 세포(細布), 십승포(十升布), 오승포(五升布), 저마(苧麻), 저포(紵布), 정포(正布), 추포(麤布), 포목(布木)|분야=생활·풍속/의생활/직물|유형=물품·도구|지역=대한민국|시대=조선|왕대=|집필자=송양섭|용도=|재질=|관련의례=|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01912|실록연계=}}&lt;br /&gt;
&lt;br /&gt;
대마(大麻) 껍질의 섬유로 짠 직물.&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마포는 흔히 삼베라고 하며 베, 대마포(大麻布)로도 불린다. 대마 껍질 안쪽에 있는 인피섬유(靭皮纖維)를 이용하여 짜는데, 수분을 빨리 흡수하고 배출할 뿐 아니라 곰팡이를 억제하는 항균성과 항독성이 있다. 견고성과 내구성이 뛰어나 서민의 옷감으로 주로 이용되었다.&lt;br /&gt;
&lt;br /&gt;
=='''연원 및 변천'''==&lt;br /&gt;
&lt;br /&gt;
마포는 뼈바늘과 가락바퀴, 베실 등의 유물이 발견되는 것으로 볼 때 청동기나 철기시대부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통일신라시대에 작성된 『신라촌락문서(新羅村落文書)』를 통해 각 촌락에서 마포를 수취한 정황을 파악할 수 있다. 『고려사』에도 마포를 공물로 수취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송과의 무역에서 수출품으로 쓰이거나 화폐로서 기능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전세 대납품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강원도영동 9읍과 영서 4읍, 전라도 산군 2읍, 경상도 산군 4읍은 마포로 [[대납(代納)]]하고, 강원도영동 9읍과 영서 7읍은 마포로 환납(換納)하도록 규정하였다. 대동법 시행 이후에는 공물가 납부도 강원도영서 산군 및 영동 각 읍에서는 미(米) 5두에 마포 1필로 대납하였다. 이외에도 곡물로 납부가 어려운 지역에서 마포로 대납이 시행됐는데 그 환산가는 호서 미 6두, 호남 미 8두, 영남 미 7두로 지역별 차이가 있었다. 19세기 후반 『대전회통』 단계에서는 마포로 환납하던 것 중 일부가 [[전(錢)]]으로 대납할 수 있게 되면서 마포의 부세 비중은 줄어들게 되었다.&lt;br /&gt;
&lt;br /&gt;
=='''형태'''==&lt;br /&gt;
&lt;br /&gt;
마포의 품질은 승수(升數)로 평가하는데 한 폭에 날실 80올로 직조된 것을 1승이라고 한다. 국가에서 부세로 수취하던 마포 1필은 길이 35척, 너비 7촌의 5승포가 정포(正布)로 규정되었다.&lt;br /&gt;
&lt;br /&gt;
=='''생활·민속 관련 사항'''==&lt;br /&gt;
&lt;br /&gt;
마포는 일상적인 교환수단인 화폐로서의 기능과 곡물 납부가 어려운 지역에서 부세납부 수단으로 기능하기도 하였지만, 가장 중요한 용도는 옷감이었다. 고가의 저포나 면포를 구할 수 없는 백성은 비교적 저렴한 마포를 주된 옷감으로 사용하였다. 한편, 마포는 장례문화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정확한 시기를 알 수 없지만, 삼국시대 이래로 마포는 장례에서 상복과 수의를 만드는 옷감으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전통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고려사(高麗史)』      &lt;br /&gt;
*『대전회통(大典會通)』      &lt;br /&gt;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lt;br /&gt;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lt;br /&gt;
*『신라촌락문서(新羅村落文書)』      &lt;br /&gt;
*이재룡, 『조선전기 경제구조연구』, 숭실대학교출판부, 1999.      &lt;br /&gt;
*박평식, 「조선초기의 화폐정책과 포화유통」, 『동방학지』158,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2012.      &lt;br /&gt;
&lt;br /&gt;
=='''관계망'''==&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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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분류:생활·풍속]][[분류:의생활]][[분류:직물]][[분류:물품·도구]][[분류:대한민국]][[분류:조선]]&lt;/div&gt;</summary>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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