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feed xmlns="http://www.w3.org/2005/Atom" xml:lang="ko">
		<id>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action=history&amp;feed=atom&amp;title=%EB%A7%88%EA%B3%84%28%EC%82%AC%ED%9A%8C%29</id>
		<title>마계(사회) - 편집 역사</title>
		<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action=history&amp;feed=atom&amp;title=%EB%A7%88%EA%B3%84%28%EC%82%AC%ED%9A%8C%29"/>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title=%EB%A7%88%EA%B3%84(%EC%82%AC%ED%9A%8C)&amp;action=history"/>
		<updated>2026-04-27T11:25:58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generator>MediaWiki 1.27.3</generator>

	<entry>
		<id>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title=%EB%A7%88%EA%B3%84(%EC%82%AC%ED%9A%8C)&amp;diff=15539&amp;oldid=prev</id>
		<title>Silman: XML 가져오기</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title=%EB%A7%88%EA%B3%84(%EC%82%AC%ED%9A%8C)&amp;diff=15539&amp;oldid=prev"/>
				<updated>2018-01-24T13:04:3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집단기구|대표표제=마계|한글표제=마계|한자표제=馬契|대역어=|상위어=계(契)|하위어=|동의어=|관련어=공인계(貢人契)|분야=사회/향촌/계|유형=집단·기구|지역=|시대=|왕대=|집필자=김현영|설치시기=|폐지시기=|소속관서=|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09360|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ua_11104115_002 『영조실록』 11년 윤4월 15일]}}&lt;br /&gt;
&lt;br /&gt;
1707년에 용산에 사는 말을 가진 사람들이 정부의 공적인 수송에 응하기 위하여 만든 계.&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조선후기에는 국가에서 한강 주변의 공적인 수송을 위하여 말을 모아 역을 제공하게 하고 주변의 주민들에게 세를 거두어 그 비용을 충당하게 하였다. 이에 따라 공적으로 수납(輸納)할 것이 있으면 한강 연안에 사는 부민(富民)들이 말을 모아서 계(稧)를 만들어 이에 대한 역을 담당[支應]하였는데, 이를 마계(馬契)라고 하였다.&lt;br /&gt;
&lt;br /&gt;
=='''설립 경위 및 목적'''==&lt;br /&gt;
&lt;br /&gt;
원래 정부 공용 물자를 운반하는 태운역(駄運役)은 조선초기부터 정식화된 [[방역(坊役)]]으로 한성부의 공방(工房)이 이를 관장하였다. 각 아문에서 운반할 물건이 있을 경우 한성부에 공문을 보내면, 한성부에서 태가(駄價), 즉 운반비를 정한 후에 해당 부(部)에 지시하여 방민(坊民)을 정하고 이를 거행하였다. 처음에는 도성 내외를 막론하고 모든 방민에게 부과되었는데, 17세기 이후에는 점차 강가에 거주하는 방민에게만 부과되었다.&lt;br /&gt;
&lt;br /&gt;
=='''조직 및 역할'''==&lt;br /&gt;
&lt;br /&gt;
마계는 크고 작은 [[국역(國役)]]에서 태운역을 담당하는 공인계(貢人契)로 창설되었다. 마계는 세곡 하역과 창고에의 납부를 담당하였던 모민계(募民契)와는 달리 정부의 공용 물자를 운송하여 운반비를 정식으로 [[호조(戶曹)]]에서 지급 받는 별무공인계(別貿貢人契)로 성립하였다. 그러나 마계 운영권을 장악한 권력과 유착된 자들은 비변사로부터 유리한 규정을 마련하고 한성부와 결탁하여 마계 재정의 안정화 방안을 마련하였다. 즉 강변 주민 가운데 역을 담당해야 하는 응역호(應役戶) 1호(戶)당 돈 3냥씩을 징수하여 그 노역을 보상 받는 방식에서 역(役)의 유무를 떠나 총 호수를 계산하여 돈을 거두는 규정을 마련하였다. 이에 방민들이 무리를 불러 모아 계인(契人)의 집에서 난동을 일으켰고 군문(軍門)에 예속된 자들도 이에 참여하였다. 이른바 경강민의 마계 습격 사건이다([http://sillok.history.go.kr/id/kua_11104115_002 『영조실록』 11년 윤4월 15일]).&lt;br /&gt;
&lt;br /&gt;
=='''변천'''==&lt;br /&gt;
&lt;br /&gt;
마계는 18세기 후반 이후에는 운부계(運負契)와 통합되어 세마운부계(貰馬運負契)가 되었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고동환, 『조선 후기 서울 상업 발달사 연구』, 지식산업사, 1998.      &lt;br /&gt;
*김동철, 「18세기 방역제(坊役制)의 변동과 마계의 성립 및 도고화(都賈化) 양상」, 『한국문화연구』1, 1988.      &lt;br /&gt;
&lt;br /&gt;
[[분류:사회]][[분류:향촌]][[분류:계]][[분류:집단·기구]]&lt;/div&gt;</summary>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f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