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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동장(銅匠)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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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20T22:03:01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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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ilman: XML 가져오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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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12-09T15:48:4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직역|대표표제=동장|한글표제=동장|한자표제=銅匠|대역어=|상위어=경공장(京工匠), 공장(工匠), 관장(官匠), 백공(百工), 사장(私匠), 장공인(匠工人), 장인(匠人)|하위어=|동의어=유동장(鍮銅匠)|관련어=유장(鍮匠), 주종장(鑄鐘匠)|분야=정치/행정/관속|유형=직역|지역=대한민국|시대=고려, 조선|왕대=고려, 조선|집필자=장경희|제정시기=|폐지시기=|소속관서=공조, 상의원|관품=|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2930|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da_11208017_002 『세종실록』 12년 8월 17일], [http://sillok.history.go.kr/id/kga_10905029_001 『세조실록』 9년 5월 29일], [http://sillok.history.go.kr/id/kda_11208021_005 『세종실록』 12년 8월 21일], [http://sillok.history.go.kr/id/kda_11606011_005 『세종실록』 16년 6월 11일]}}&lt;br /&gt;
&lt;br /&gt;
중앙의 관부에 소속되어 구리로 그릇을 만드는 장인.&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동장(銅匠)은 속칭 퉁장이다. 퉁은 동으로 만든 그릇의 속칭으로, 흑연(黑鉛)과 적동(赤銅)을 녹여서 만든 것이다. 고려시대에는 장인들을 각 출신 지역별로 파악하여 공장안(工匠案)·백공안독(百工案牘)을 작성하였으며, 일반 양인과 거의 마찬가지 신분으로 일률화되었다.&lt;br /&gt;
&lt;br /&gt;
조선초기에는 국방용 무기 제조를 위해 병조와 [[군기감(軍器監)]]에는 동장 4명을 소속시켰으나, 국가가 안정되면서 점차 왕실용 사치품의 제작이 늘면서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의하면 동장은 [[공조(工曹)]]·[[상의원(尙衣院)]]에 각각 4명씩 소속되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조선후기 『대전통편(大典通編)』, 『대전회통(大典會通)』 등의 법전에서는 이러한 규정이 달라지지 않았지만, 이미 사문화되어 있었다. 18세기에는 동장은 상의원·[[내수사(內需司)]]의 관장(官匠)이거나 훈련도감(訓鍊都監) 등 군문에 소속된 장인으로서 대개 4∼6명이 짝을 이루어 도감에 차출되었다. 18세기 중엽 이후 동장은 모두 사장으로 전환되어 사적 생산에 종사하였고, 19세기에는 도감마다 5∼6명씩 동원하였다.&lt;br /&gt;
&lt;br /&gt;
한편 조선시대 불교 사찰에서는 고려시대와 마찬가지로 각종 범종을 만들었는데, 이때 화승(畵僧)·화사(畵師)와 함께 주종장(鑄鐘匠)을 두어 제작하였다.&lt;br /&gt;
&lt;br /&gt;
=='''담당 직무'''==&lt;br /&gt;
&lt;br /&gt;
동장의 작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lt;br /&gt;
&lt;br /&gt;
첫째, 구리를 녹여 왕실의 일상용 그릇을 만드는 것이다. 구리 밥그릇[銅盂]이나 놋밥그릇[鍮鉢]을 만들었다([http://sillok.history.go.kr/id/kda_11208017_002 『세종실록』 12년 8월 17일]). 군기감에서 [[총통(銃筒)]] 600여 개를 훔쳐 놋그릇과 구리 그릇을 만들기도 하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ga_10905029_001 『세조실록』 9년 5월 29일]).&lt;br /&gt;
&lt;br /&gt;
둘째, 왕실의 의례 행사 때 필요한 공예품을 만드는 일을 하였다. 중국 사신을 맞이하기 위한 영접도감 때 사용한 주봉배(晝奉盃)를 만들었다([http://sillok.history.go.kr/id/kda_11208021_005 『세종실록』 12년 8월 21일]).&lt;br /&gt;
&lt;br /&gt;
=='''변천'''==&lt;br /&gt;
&lt;br /&gt;
구리를 다루는 장인은 청동기시대부터 존재하여 청동제 거울이나 동검 등을 만드는 일을 하였을 것이다. 이들 기술자들은 국가의 지배 계층을 형성하여 성장하였다.&lt;br /&gt;
&lt;br /&gt;
조선초기에 국방을 위해 각종 무기의 수요가 증가하였다. 이에 병조와 군기감에는 소속된 동장 2명을 4명으로 늘리도록 요청하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da_11606011_005 『세종실록』 16년 6월 11일]). 그러나 이후 국방보다는 왕실의 의례용품이나 일상품의 비중이 커지면서 성종 때 편찬된 『경국대전』을 보면 동장은 공조와 상의원에 각각 4명씩 소속되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이들 동장의 처치는 조선후기 『대전통편』, 『대전회통』 등의 법전에서도 여전히 공조와 상의원 소속에 각각 4명씩으로 달라지지 않았다.&lt;br /&gt;
&lt;br /&gt;
조선후기 왕실의 행사 때마다 설치 운영된 도감마다 구리로 각종 의물(儀物)을 만드는 동장을 차출하였다. 1604년 선조의 재존호도감(再尊號都監)을 비롯하여 왕실의 가례와 관련해서는 [[가례도감(嘉禮都監)]]·[[책례도감(冊禮都監)]]·[[존숭도감(尊崇都監)]]에, 왕실의 흉례와 관련해서는 국장도감(國葬都監)·[[부묘도감(祔廟都監)]]에, 길례와 관련해서는 제기악기도감(祭器樂器都監)·영녕전개수도감(永寧殿改修都監)에, 어용도사도감(御用都事都監)·금보개조도감(金寶改造都監) 등에 동장을 차출하였다.&lt;br /&gt;
&lt;br /&gt;
이렇게 조선후기 도감에 동원된 동장의 처지, 인원수 및 직역은 시기에 따라 변천하였다. 우선 17세기에는 도감마다 대개 2∼3명의 동장이 징발되었는데, 이들 특정 장인들은 서울에 거주하는 [[경공장(京工匠)]]으로서 무리를 지어 20∼30년간 함께 활동하였다. 17세기 초 도감에서 동장 정계남(鄭繼男)이 가장 이른 시기부터 징발되었다. 그 이후 정씨는 전문적인 동장 집안을 이루어 18세기까지 지속적으로 도감역(都監役)을 졌다.&lt;br /&gt;
&lt;br /&gt;
18세기 들어 동장은 상의원·내수사의 관장(官匠)이거나 훈련도감 등 군문에 소속된 장인으로서 대개 4∼6명이 짝을 이루어 도감에 차출되었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경국대전(經國大典)』      &lt;br /&gt;
*『대전통편(大典通編)』      &lt;br /&gt;
*『대전회통(大典會通)』      &lt;br /&gt;
*장경희, 『의궤 속 장인』, 솔과학, 2013.      &lt;br /&gt;
*서성호, 「고려 전기 지배체제와 공장」, 『한국사론』 27, 1992.      &lt;br /&gt;
*이광배, 「고려시대 범종의 발원계층과 주종장인」, 『동악미술사학』 13, 2012.      &lt;br /&gt;
*장경희, 「조선후기 왕실제기 주성 유기장 연구」, 『한국공예논총』 11-2호, 2008.      &lt;br /&gt;
*최응천, 「고려시대 금속공예의 장인」, 『미술사학연구』 24, 2004.      &lt;br /&gt;
*홍승기, 「고려시대의 공장」, 『진단학보』 40, 1975.      &lt;br /&gt;
&lt;br /&gt;
=='''관계망'''==&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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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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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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