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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대열의(大閱儀)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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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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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ilman: XML 가져오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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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의식행사|대표표제=대열의|한글표제=대열의|한자표제=大閱儀|대역어=|상위어=군례(軍禮)|하위어=|동의어=|관련어=|분야=왕실/왕실의례/군례|유형=의식·행사|지역=대한민국|시대=조선|왕대=|집필자=허태구|시작시기=세종대|시행시기=세종~정조|시행기관=|시행장소=동교(東郊) 낙천정(樂天亭) 등|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3503|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da_10306001_002 『세종실록』 3년 6월 1일], [http://sillok.history.go.kr/id/kda_10609024_002 『세종실록』 6년 9월 24일]}}&lt;br /&gt;
&lt;br /&gt;
조선시대에 왕이 직접 참관한 대규모 열병(閱兵) 의례.&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장수와 군사들이 진법을 연습하고 전투 훈련 하는 모습을 왕이 직접 참관하는 의례로, 군사들의 무위(武威)를 배양하고 통수권을 확인하기 위해 시행하였다. 매년 9월과 10월 중 [[강일(剛日)]]을 택하여 도성 밖에서 행하였다. 강일은 [[갑(甲)]]·병(丙)·무(戊)·경(庚)·임(壬)의 간지가 있는 날을 말한다.&lt;br /&gt;
&lt;br /&gt;
=='''연원 및 변천'''==&lt;br /&gt;
&lt;br /&gt;
대열의의 의주(儀註)를 마련하려는 논의는 세종대에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1421년(세종 3) 6월에 의주가 최초로 확정되었고([http://sillok.history.go.kr/id/kda_10306001_002 『세종실록』 3년 6월 1일]), 1424년(세종 6) 9월에 왕세자 관련 규정만 개정되었다([http://sillok.history.go.kr/id/kda_10609024_002 『세종실록』 6년 9월 24일]). 대열의 의주는 그 뒤 다시 한 번 개정되어 『세종실록』「오례(五禮)」에 수록되었다. 이전의 의주와 비교해 보면, 의식의 준비와 진행 시각, 왕의 동선, 왕세자의 위치, 배례(拜禮)의 횟수 등에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왕의 복식이 금갑(金甲)에서 [[상복(常服)]]으로, 왕세자 이하 종친 및 문무 관원의 복장도 갑주(甲冑)에서 상복으로 바뀌었다. 왕의 의장도 [[소가노부(小駕鹵簿)]]에서 대가노부(大駕鹵簿)로 격상되었다. 정조대에 편찬된 『춘관통고(春官通考)』에 따르면, 그 당시에 왕은 다시 갑주를 갖추어 입고 대열의에 참여하였다.&lt;br /&gt;
&lt;br /&gt;
=='''절차 및 내용'''==&lt;br /&gt;
&lt;br /&gt;
『세종실록』「오례」를 기준으로 대열의의 절차를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lt;br /&gt;
&lt;br /&gt;
행사 11일 전에 병조(兵曹)에서 대열의의 시행을 왕에게 아뢰어 허락을 받고, 장수들로 하여금 군사들을 검열하게 한다. 유사(有司)는 대열의를 시행할 교장(敎場)을 만들고, 왕이 대열의를 관람하는 자리인 선지(墠地)를 교장 북쪽에 설치한다.&lt;br /&gt;
&lt;br /&gt;
행사 전날에는 충호위(忠扈衛)와 [[액정서(掖庭署)]]에서 왕의 [[장전(帳殿)]]·소차(小次)·[[어좌(御座)]], 왕세자의 막차(幕次) 등을 설치하고, 전의(典儀)는 왕세자를 비롯해 종친과 문무 관원의 배위(拜位)를 정한다. 장수와 군사들을 선소(墠所)에 집합시켜 떠드는 것을 금지하고, 방위에 맞는 색깔의 기(旗)를 세운 뒤 화문(和門), 즉 군문(軍門)을 만든다. 군사들에게 지휘 통솔의 절차와 신호를 주지시킨다.&lt;br /&gt;
&lt;br /&gt;
행사 당일이 되면 해 뜨기 전 10각(刻)에 기병과 보병의 모든 군사들이 갑주를 착용하고 직진(直陣)을 만들어 대기한다. 장군과 대장은 기고(旗鼓) 아래에 선다. 1각은 15분을 말한다.&lt;br /&gt;
&lt;br /&gt;
해 뜨기 전 7각에 의례를 알리는 첫 번째 북소리인 [[초엄(初嚴)]]이 울리면 궁전문(宮殿門)과 [[성문(城門)]]을 개방하고, 대가 노부를 진열하고 호위 군사를 배치하여 왕의 거둥 준비를 마친다. 해 뜨기 전 5각에 두 번째 북소리인 [[이엄(二嚴)]]이 울리면, 판통례(判通禮)가 [[사정전(思政殿)]][[합문(閤門)]] 밖에서 중엄(中嚴), 즉 왕에게 예식에 참여할 것을 아뢴다. 여러 군사와 관원들도 참여할 준비를 맞추고 대기한다.&lt;br /&gt;
&lt;br /&gt;
해 뜨기 전 2각에 세 번째 북소리인 [[삼엄(三嚴)]]이 울리면, 왕이 [[익선관(翼善冠)]]과 [[곤룡포(袞龍袍)]] 차림으로 출궁하여 선소의 [[악차(幄次)]]로 들어간다. 종친과 문무 관원은 봉례랑(奉禮郞)이, 왕세자는 부지통례(副知通禮)가 인도하여 배위로 나아간다. 왕이 어좌에 오르면, 통찬(通贊)의 구령에 따라, 왕세자와 종친, 백관들이 왕에게 국궁(鞠躬)·사배(四拜)한다. [[중군(中軍)]]의 장수가 기를 누이면 각 [[진(陣)]]의 군사들도 북향하여 사배한다. 절을 마친 종친과 문무 관원은 대차(大次)의 좌우로 이동해, 왕이 관람할 수 있는 시야를 확보한다.&lt;br /&gt;
&lt;br /&gt;
대각(大角)이 세 번 울리면, 훈련과 [[습진(習陣)]] 즉 진법 연습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동군과 서군의 대장이 훈련 중 엄수해야 할 군법을 서약하고, 이를 각 군의 여러 지휘관과 군사들에게도 알린다.&lt;br /&gt;
&lt;br /&gt;
북을 울리고 기를 들면 기병과 보병이 행군을 시작한다. 기의 올리고 내림, 징과 북의 두드림에 따라 정해진 진퇴와 동작을 수행하면서 약속된 장소까지 이동해 정렬한다.&lt;br /&gt;
&lt;br /&gt;
정렬한 동서 양군은 오행상승지법(五行相勝之法)에 따라 [[진(陣)]]을 만들어 서로 대항하는데, 진법을 다섯 번 바꾸어 가면서 공격과 수비의 전투 능력을 점검한다. 진을 바꿀 때는 군사 50명을 선발하여 상대를 공격하게 한다. 다섯 번의 진법 전환을 마치면 양군은 다시 직진으로 전환한다.&lt;br /&gt;
&lt;br /&gt;
다시 북을 울리고 기를 내리고 올려 양군의 군사들을 약속된 장소까지 이동시킨 다음 접전시킨다. 접전을 마친 군사들은 원래 위치로 돌아온다.&lt;br /&gt;
&lt;br /&gt;
판통례가 대열의가 끝났음을 아뢰면, 왕은 [[장전(帳殿)]]으로 돌아가 다안(茶案), 즉 찻상을 받는다. 왕이 차를 다 마시면 판통례가 환궁할 것을 아뢰고, 어가(御駕)가 환궁을 시작한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lt;br /&gt;
*『춘관통고(春官通考)』      &lt;br /&gt;
*소순규, 「조선시대 대열의의 의례 구조와 정치적 의미」, 『史叢』75, 2012.      &lt;br /&gt;
&lt;br /&gt;
[[분류:왕실]][[분류:왕실의례]][[분류:군례]][[분류:의식·행사]][[분류:대한민국]][[분류:조선]]&lt;/div&gt;</summary>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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