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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당비파(唐琵琶)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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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ilman: XML 가져오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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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물품도구|대표표제=당비파|한글표제=당비파|한자표제=唐琵琶|대역어=|상위어=당악기(唐樂器)|하위어=|동의어=곡경비파(曲頸琵琶)|관련어=향비파(鄕琵琶)|분야=문화/예술/음악|유형=물품·도구|지역=대한민국|시대=고려~일제강점기|왕대=고려~일제강점기|집필자=이정희|용도=|재질=|관련의례=|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6718|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da_11505005_003 『세종실록』 15년 5월 5일], [http://sillok.history.go.kr/id/kda_12907002_001 『세종실록』 29년 7월 2일], [http://sillok.history.go.kr/id/kua_12501027_002 『영조실록』 25년 1월 27일], [http://sillok.history.go.kr/id/kda_11607018_005 『세종실록』 16년 7월 18일], [http://sillok.history.go.kr/id/kwa_12702017_001 『순조실록』 27년 2월 17일], [http://sillok.history.go.kr/id/kpa_10403010_001 『인조실록』 4년 3월 10일], [http://sillok.history.go.kr/id/ksa_14402017_001 『숙종실록』 44년 2월 17일], [http://sillok.history.go.kr/id/kda_11607018_005 『세종실록』 16년 7월 18일], [http://sillok.history.go.kr/id/kja_11101004_013 『연산군일기』 11년 1월 4일]}}&lt;br /&gt;
&lt;br /&gt;
현악기의 하나.&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당비파(唐琵琶)는 궁중과 민간에서 두루 사용되었다. 당악기였지만 당악뿐 아니라 향악까지 연주하였다. 악기의 몸체가 크지 않고 연주자의 몸에 맬 수 있어 이동 연주가 가능했다. 현재의 기타처럼 조선시대에 널리 쓰인 유용한 악기였다.&lt;br /&gt;
&lt;br /&gt;
=='''연원 및 변천'''==&lt;br /&gt;
&lt;br /&gt;
비파라는 이름은 연주할 때 발생되는 소리 표현과 관련이 있다. 손을 앞으로 내밀어 줄을 튕길 때에는 비(琵), 손을 끌어당기는 방식으로 연주할 때에는 파(琶)라고 하였는데, 이 두 가지 의성어를 합쳐 비파라는 악기 명칭으로 삼았다.&lt;br /&gt;
&lt;br /&gt;
비파가 아니라 당비파라고 부른 이유는 기존의 비파와 구별하기 위해서였다. 고구려 때 유입되어 이미 토착화된 비파를 향비파라 하고, 이보다 늦게 당(唐)에서 유입된 비파를 당비파라고 이름 지어 두 종류의 비파를 구분하였다.&lt;br /&gt;
&lt;br /&gt;
당비파는 통일신라시대부터 불교의 사리기(舍利器), 탑(塔) 등의 기록에 보이며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쳐 일제강점기까지 사용되었다. 특히 조선시대의 경우 궁중 안팎에서 당비파가 널리 쓰였다.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제례([http://sillok.history.go.kr/id/kda_11505005_003 『세종실록』 15년 5월 5일]) ([http://sillok.history.go.kr/id/kda_12907002_001 『세종실록』 29년 7월 2일]), 조회([http://sillok.history.go.kr/id/kua_12501027_002 『영조실록』 25년 1월 27일]), 연향([http://sillok.history.go.kr/id/kda_11607018_005 『세종실록』 16년 7월 18일]), 행차([http://sillok.history.go.kr/id/kwa_12702017_001 『순조실록』 27년 2월 17일]), 장례([http://sillok.history.go.kr/id/kpa_10403010_001 『인조실록』 4년 3월 10일])([http://sillok.history.go.kr/id/ksa_14402017_001 『숙종실록』 44년 2월 17일]) 등 다양한 궁중 행사에 활용되었다.&lt;br /&gt;
&lt;br /&gt;
민간에서는 사서인(士庶人)이 음악에 입문할 때 처음 배워야 할 악기로 손꼽힐 정도로 중요하게 인식되어 있었다. 조선시대 당비파 소리의 흔적은 『금합자보(琴合字譜)』, 『속악원보(俗樂源譜)』에 삽입된 비파 악보를 통해 일부 추측이 가능하다.&lt;br /&gt;
&lt;br /&gt;
=='''형태'''==&lt;br /&gt;
&lt;br /&gt;
물방울 모양의 공명통에 4현과 12주(柱)가 있는 모습이다. 공명통의 속이 비고 겉이 찬 것은 하늘과 땅을 나타내며, 4현은 사계절을 본뜬 것이고, 12주는 12율에 짝지은 것이라고 『악서(樂書)』에 기록되어 있다. 특히 공명통과 연결된 목의 끝부분이 굽은 점이 특징인데, 이 때문에 곡경비파(曲頸琵琶)라고도 불렀다. 당비파의 뒷면에는 몸에 둘러메고 연주할 수 있는 줄이 묶여 있어 이동 연주할 때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lt;br /&gt;
&lt;br /&gt;
당비파 연주법은 기타를 연주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왼손 엄지손가락으로 비파의 목을 잡고 나머지 네 손가락으로 네 줄을 짚으며, 오른손에는 나무 발[木撥]이나 가짜 손톱[假爪]을 활용하여 줄을 튕겼다. 성종대에는 평조(平調), 계면조(界面調), 상조(上調), 하조(下調) 네 가지 방식의 조율법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다양한 당비파 음악이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세종대, 연산군대, 인조대, 정조대 등 조선전기와 후기에는 지속적으로 궁중에서 만들어 궁중의 다양한 수요에 부응하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da_11607018_005 『세종실록』 16년 7월 18일])([http://sillok.history.go.kr/id/kja_11101004_013 『연산군일기』 11년 1월 4일]).&lt;br /&gt;
&lt;br /&gt;
제작 재료는 『악학궤범』에 상세히 밝혀져 있다. 공명통 뒤판으로 쓰일 나무로는 화리(華梨)가 제일 좋고, 철양(鐵楊)·황상(黃桑)·산유자(山柚子)·괴목(槐木)·상수리나무[橡斯]·산행(山杏)·박달(朴達) 등 단단하고 빛이 좋은 것은 모두 사용 가능하였다. 복판의 경우는 두충(杜冲)이 최상이며 노목(盧木)·아목(牙木)처럼 부드럽고 결이 곧은 나무도 썼다. 머리와 목 등 모든 장식에는 화리·오매(烏梅)·탄시(炭柿)·산유자를 재료로 삼았다. 안족 쪽에는 반죽(斑竹)을 쓰고 둘러메는 고리[擔環]에는 은이나 두석을 쓰고 둘러메는 줄[擔絛兒]에는 홍진사(紅眞絲)를 썼다.&lt;br /&gt;
&lt;br /&gt;
##00016718_그림1_ 『악학궤범』의 당비파 &lt;br /&gt;
&lt;br /&gt;
##00016718_그림2_『경모궁의궤』의 당비파&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악서(樂書)』      &lt;br /&gt;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lt;br /&gt;
*『악학궤범(樂學軌範)』      &lt;br /&gt;
*『용재총화(慵齋叢話)』      &lt;br /&gt;
*『금합자보(琴合字譜)』      &lt;br /&gt;
*『제기악기도감의궤(祭器樂器都監儀軌)』      &lt;br /&gt;
*『경모궁의궤(景慕宮儀軌)』      &lt;br /&gt;
*『춘관통고(春官通考)』      &lt;br /&gt;
*『속악원보(俗樂源譜)』      &lt;br /&gt;
*『순조기축진찬의궤(純祖己丑進饌儀軌)』      &lt;br /&gt;
*『고종임인진연의궤(高宗壬寅進宴儀軌)』      &lt;br /&gt;
*『대한예전(大韓禮典)』      &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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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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