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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담원춘(譚元春)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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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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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ilman: XML 가져오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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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인물|대표표제=담원춘|한글표제=담원춘|한자표제=譚元春|대역어=|상위어=|하위어=|동의어=담사옹(譚蓑翁)|관련어=경릉파(竟陵派), 시귀(詩歸), 의고파(擬古派), 종담(鍾譚), 종성(鍾惺)|분야=정치/외교/외교사안|유형=인물|지역=중국|시대=명/조선|왕대=명/조선|집필자=김소영|이칭=자: 우하(友夏), 호: 곡만(鵠灣)|성별=남|생년=1586년|몰년=1637년|본관=|출신지=       호북성(湖北省) 경릉(竟陵) |관력=|가족관계=|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6844|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va_12106021_002 『정조실록』 21년 6월 21일]}}&lt;br /&gt;
&lt;br /&gt;
명나라 말기 경릉파를 대표하는 문장가.&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담원춘은 고향 사람인 종성(鍾惺)과 함께 새로운 문학사조를 표방하였으며, 이들은 경릉파(竟陵派)로 불리었다. 경릉파의 시문학은 당시 문단을 지배하던 의고파(擬古派)의 사조에 반대하고, 고시(古詩) 및 당시(唐詩)에 대한 새로운 평가를 시도하여 주목을 받았다.&lt;br /&gt;
&lt;br /&gt;
=='''활동 사항'''==&lt;br /&gt;
&lt;br /&gt;
담원춘은 호북성(湖北省) 경릉(竟陵) 출신으로, 담사옹(譚蓑翁)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20세에 고향 선배인 종성과 뜻을 함께하였다. 당시(唐詩)를 모방한 복고풍의 의고파가 주도하던 경향에 반대하고, 경릉파를 결성하였다. 담원춘과 종성을 함께 일컬어 종담(鍾譚)이라 칭하였다.&lt;br /&gt;
&lt;br /&gt;
그들은 반(反)복고주의를 내세우며 고시 및 당시에 대한 전통적 평가를 폐기하고, 독자적인 감상을 통한 과거 시인들의 시에 담긴 순수한 정신을 표현하고자 노력하였다. 종성과 함께 『시귀(詩歸)』를 편집하였는데, 이 책의 여러 곳에 평어(評語)를 실어 옛 시인의 문장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적어 놓았다.&lt;br /&gt;
&lt;br /&gt;
담원춘은 남경(南京)·소주(蘇州)·항주(杭州) 일대에서 활동하였으며, 명 말기 복사(復社)운동에 참여한 인물들과 시를 주고받으며 교류하였다. 그는 10여 년간 호남성(湖南省) 상중(湘中), 호북성(湖北省) 악서(鄂西) 지역의 명산대천(名山大川)을 유람하기도 하였다. 『초유오룡담기(初游烏龍潭記)』 외 5편의 여행기를 남기기도 하였다.&lt;br /&gt;
&lt;br /&gt;
1627년에 향시(鄕試)에 합격하였으나 회시(會試)에 계속 낙방하여 벼슬을 하지 못하였다. 1637년 52세의 나이에 북경(北京)에 회시를 보러 갔으나 병으로 죽었다.&lt;br /&gt;
&lt;br /&gt;
18세기 조선후기의 문단에서는 새로운 문학 기풍이 대두되는 상황에서 16세기 초반 명나라 반의고파의 조류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졌다. 정약용(丁若鏞)은 상소에서 “어린 시절 서학 및 잡학에 대하여 가졌던 헛된 관심”에 대하여 자책하며, 담원춘 등 명말청초 시기의 학자가 일찍이 깨달은 것이라고 평가하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va_12106021_002 『정조실록』 21년 6월 21일]).&lt;br /&gt;
&lt;br /&gt;
=='''저술 및 작품'''==&lt;br /&gt;
&lt;br /&gt;
『담우하합집(譚友夏合集)』, 『명시귀(明詩歸)』, 『송문귀(宋文歸)』, 『시귀(詩歸)』, 『시촉(詩觸)』, 『우장(遇莊)』, 『위소주집(韋蘇州集)』&lt;br /&gt;
&lt;br /&gt;
=='''묘소'''==&lt;br /&gt;
&lt;br /&gt;
천문현(天門縣) 자죽대(白竹台). 현재의 호북성 천문시(天門市) 황담진(黃潭鎮)에 있다.&lt;br /&gt;
&lt;br /&gt;
=='''상훈 및 추모'''==&lt;br /&gt;
&lt;br /&gt;
담원춘과 종성이 모두 죽은 후, 천문현에 두 사람을 합사하고, ‘천하문장(天下文章)’ 네 글자를 현판으로 내걸었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이수웅, 『중국문학사』, 다락원, 2001.      &lt;br /&gt;
*임종욱, 『중국의 문예인식: 그 이념의 역사적 전개』, 이회, 2001.      &lt;br /&gt;
*김의정, 「명대 녀성 시인 왕미의 여행시」, 『중국어문학지』 39, 2012.      &lt;br /&gt;
*박재경, 「18세기 조선 문단의 명말청초 문학 인지 양상」, 『동방한문학』 54, 2013.      &lt;br /&gt;
*이철희, 「경릉파에 대한 조선후기 비평 양상」, 『어문연구』 153, 2012.      &lt;br /&gt;
&lt;br /&gt;
[[분류:정치]][[분류:외교]][[분류:외교사안]][[분류:인물]][[분류:중국]][[분류:명/조선]][[분류:명/조선]]&lt;/div&gt;</summary>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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