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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납지장(蠟紙匠)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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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직역|대표표제=납지장|한글표제=납지장|한자표제=蠟紙匠|대역어=|상위어=경공장(京工匠), 공장(工匠), 관장(官匠), 백공(百工), 사장(私匠), 장공인(匠工人), 장인(匠人)|하위어=|동의어=|관련어=지장(紙匠)|분야=정치/행정/관속|유형=직역|지역=대한민국|시대=조선|왕대=조선|집필자=장경희|제정시기=|폐지시기=|소속관서=|관품=|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2928|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ia_10406008_008 『성종실록』 4년 6월 8일]}}&lt;br /&gt;
&lt;br /&gt;
책 표지나 궁궐용 벽지로 사용되는 능화지를 제작하던 장인.&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조선시대에 국가에서 제작한 책의 표지나 궁궐이나 왕실 가구 내부의 벽지에 능화지(菱花紙)를 사용하였다. 납지장(蠟紙匠)은 밀납을 사용하여 책 표지나 벽지로 사용할 능화지를 만들었다. 이들은 상설 아문인 조지서 소속의 [[지장(紙匠)]]과 달리 [[실록청(實錄廳)]]이나 교정청 등 임시 도감의 지장으로 조선초기부터 한말까지 활동하였다.&lt;br /&gt;
&lt;br /&gt;
=='''담당 직무'''==&lt;br /&gt;
&lt;br /&gt;
납지장은 책 표지나 벽지 등에 사용되는 능화지를 만드는 일을 하였다. 능화지를 만들기 위해 목판 위에 새겨진 능화 무늬를 새긴 능화판(菱花板)이 준비가 되면 그 위에 종이를 올리고 밀납을 밀어 무늬를 베껴내는 것이다. 판화는 능화판에 닿는 면을 찍어내어 문양이 좌우가 바뀌는 데 반해, 납지는 밀납이 닿는 면을 탑본(榻本)처럼 베껴내어 문양이 그대로라는 점이 다르다. 능화지는 용도에 따라 책 표지용과 벽지용으로 나누어 사용하는 종이와 두께를 달리하여 제작한다.&lt;br /&gt;
&lt;br /&gt;
첫째, 책 표지용으로 사용되는 능화지는 종이의 두께가 두껍고 기름 먹인 종이를 사용하여 제작하였다. 책판(冊版)으로 사용하기 위해 문양을 찍어내고 그 위에 밀납을 칠해 방수 효과까지 의도하였다.&lt;br /&gt;
&lt;br /&gt;
둘째, 벽지로 사용하는 능화지는 색상에 따라 백능화지(白菱花紙)와 청능화지(靑菱花紙)로 나뉜다. 백능화지는 능화판 위에 한지를 올리고 색이 없는 밀납으로 능화 무늬를 베껴내는 것이다. 청능화지는 쪽염으로 남색을 염색한 한지를 능화판 위에 올린 후 밀납으로 능화 무늬를 베껴내는 것이다.&lt;br /&gt;
&lt;br /&gt;
=='''변천'''==&lt;br /&gt;
&lt;br /&gt;
납지장의 존재는 조선초기의 기록이 유일하다. 1473년(성종 4) 『예종실록』을 인출한 실록청에 박복동(朴福同) 등 4명이 있었는데, 그들에게 정포 1필씩 지급하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ia_10406008_008 『성종실록』 4년 6월 8일]). 이후 납지장이라는 용어는 사용되지 않는다. 조선후기에는 『조선왕조실록』을 편찬하는 실록청이나 [[선원록(璿源錄)]]을 수정하는 교정청에 지장이 소속되어 그들이 책 표지를 제작하였다. 18세기 초에는 도감마다 2명∼3명을 동원하였으나, 18세기 후반에는 8명∼10명을 동원하였는데 그들 중 일부가 납지장이었다고 여겨진다. 한편 왕릉을 조성하는 산릉도감에서는 정자각 내부에 백능화지와 청능화지를 발랐던 기록이 계속 있어 지장 중 일부가 납지를 제작하는 장인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장경희, 『의궤 속 조선의 장인』, 솔과학, 2013.      &lt;br /&gt;
*장경희, 「조선 후기 산릉도감의 장인 연구」, 『역사민속학』 25, 2007.      &lt;br /&gt;
&lt;br /&gt;
=='''관계망'''==&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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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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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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