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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납공(納供)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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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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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ilman: XML 가져오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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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12-09T17:28:5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개념용어|대표표제=납공|한글표제=납공|한자표제=納供|대역어=|상위어=|하위어=|동의어=|관련어=송사(訟事), 옥송(獄訟), 사송(詞訟), 추문(推問), 격고(擊鼓), 격쟁(擊錚)|분야=정치/사법/재판|유형=개념용어|지역=대한민국|시대=조선|왕대=|집필자=조지만|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08144|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ka_12003018_021 『중종실록』 20년 3월 18일]}}&lt;br /&gt;
&lt;br /&gt;
조선시대에 죄인이나 증인이 진술하는 것.&lt;br /&gt;
&lt;br /&gt;
=='''내용'''==&lt;br /&gt;
&lt;br /&gt;
조선시대에 재판은 송사(訟事)라고 하여 형사재판과 민사재판이 완전히 나누어져 있지는 않았으나, 형사법상의 범죄를 다루는 [[옥송(獄訟)]]과 개인 상호간의 권리나 재산 분쟁을 다루는 사송(詞訟)으로 구별되기는 했다. 사송의 경우 당사자가 문서와 구두(口頭)로 분쟁 사실을 주장하면 이를 관청에서 처리했던 것에 비해, 옥송은 당사자에게 일임하지 않고 죄인의 자백을 얻는 것에 주력했다.&lt;br /&gt;
&lt;br /&gt;
『조선왕조실록』에서 보이는 소송 관련 사례는 대부분 옥송이다. 당시의 옥송에서는 피의자(被疑者)와 피고인(被告人)의 구별이 없었고 피의자도 잡혀 온 이상 죄인으로 취급되었다. 장형(杖刑) 이상에 해당하는 자에 대해서는 우선 [[수금(囚禁)]]하였는데, 수금을 할 때 일정한 형구(刑具)를 씌워서 행동의 자유를 박탈하였다. 그 후 본격적인 신문(訊問)이 이루어지는데, 이를 추문(推問)이라고 했다. 죄인을 심문하는 관원은 추관(推官)이라고 하며 추관이 죄인을 신문하는 행위를 [[취초(取招)]]라고 한다. 여기서 취초를 받은 죄인이 진술하는 것이 바로 납공(納供)이다. 그런데 신문을 받아 진술하는 대상이 꼭 죄인에 한정되지는 않았으며, 증인(證人) 혹은 가족·친족·목격자·이웃사람 등과 같은 참고인도 포함되었다. 또한 『숙종실록』에서는 [[격고(擊鼓)]] 혹은 [[격쟁(擊錚)]]하여 진술한 것도 납공이라고 하고 있는 기사도 찾아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신문에 대한 진술은 구두로 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며, 그 내용은 기록되었다. 1434년(세종 16)에 영의정(領議政)황희(黃喜)가 죄인을 신문할 때에 향언(鄕言)·리어(俚語)로 기록하는 것을 그 말을 알 수 없다는 이유로 금지할 것을 청하여 받아들여졌다. 반면 1625년(인조 3)에는 기교를 부린 문서로 죄인의 진술한 바를 적어 올리기 때문에 이를 심리하는 관리들이 현혹된다며, 옛 규례에 따라 구어(口語)로 기록하도록 하자는 [[사헌부(司憲府)]]의 건의가 받아들여졌다. 『추안급국안(推案及鞫案)』에는 선조 연간부터 고종 연간까지의 중죄인들이 진술한 내용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lt;br /&gt;
&lt;br /&gt;
=='''용례'''==&lt;br /&gt;
&lt;br /&gt;
李壽仁刑問二次供曰 前供辭各人外 他餘參謀人 則臣未得知 獨李長宗參會 而前推時忘不納供([http://sillok.history.go.kr/id/kka_12003018_021 『중종실록』 20년 3월 18일])&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박병호, 『근세의 법과 법사상』, 진원, 1996.      &lt;br /&gt;
&lt;br /&gt;
=='''관계망'''==&lt;br /&gt;
&amp;lt;html&amp;gt;&amp;lt;script&amp;gt;function reload() {window.location.reload();} &amp;lt;/script&amp;gt;&amp;lt;input type=&amp;quot;button&amp;quot; value=&amp;quot;Graph&amp;quot; onclick=&amp;quot;reload();&amp;quot;&amp;gt;&amp;lt;iframe width=&amp;quot;100%&amp;quot; height=&amp;quot;670px&amp;quot; src=&amp;quot;http://encysilloknetwork.aks.ac.kr/Content/index?id=na00008144&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분류:정치]][[분류:사법]][[분류:재판]][[분류:개념용어]][[분류:대한민국]][[분류:조선]]&lt;/div&gt;</summary>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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