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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남계당(南季堂)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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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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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ilman: XML 가져오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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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인명사전|대표표제=남계당|한글표제=남계당|한자표제=南季堂|이칭=|대역어=|상위어=|하위어=|동의어=|관련어=|분야=인물|유형=문신|지역=한국|시대=조선|왕대=세조~성종|집필자=최양규|자= 희정(希正) |호=|봉작=|시호=|출신=양반|성별=남자|출생=|사망=|본관=의령(宜寧)|주거지= 서울[京] |묘소소재지=|증조부= 남심(南深) |조부= 남상명(南尙明) |부= 남지(南輊); 문과 급제, 호군(護軍)|모_외조=장씨(張氏); 장균(張均)의 딸|형제=|처_장인=여씨(呂氏); 여종경(呂宗敬)의 딸|자녀=|유명자손=|저술문집=|작품=|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10001644|실록연계=}}&lt;br /&gt;
&lt;br /&gt;
=='''총론'''==&lt;br /&gt;
&lt;br /&gt;
[생몰 연대 미상.] 조선 전기 세조~성종 때의 문신. 행직(行職)은 병조 정랑(正郞)⋅홍문관 수찬(修撰)이다. 자(字)는 희정(希正)이다. 본관은 의령(宜寧)이고, 거주지는 서울[京]이다. 아버지는 호군(護軍)남지(南輊)이고, 어머니 장씨(張氏)는 장균(張均)의 딸이다.&lt;br /&gt;
&lt;br /&gt;
=='''세조 시대 활동'''==&lt;br /&gt;
&lt;br /&gt;
1466년(세조 12) 고성춘시(高城春試)에 3등(等)으로 급제하였다.[&amp;lt;문과방목&amp;gt;]&lt;br /&gt;
&lt;br /&gt;
=='''예종 시대 활동'''==&lt;br /&gt;
&lt;br /&gt;
1469년(예종 1) 의정부 주서(注書)에 임명되었는데, 세조 때 &amp;lt;정난(靖難) 원종공신(原從功臣)&amp;gt;에 참여하지 못하였다고 하여, 예종 때 추후하여 1자급을 가자(加資)받았다.&lt;br /&gt;
&lt;br /&gt;
=='''성종 시대 활동'''==&lt;br /&gt;
&lt;br /&gt;
1470년(성종 1) 예문관 부교리(副校理)이 되어, 춘추관 사관(史官)을 겸임하였다. 그때 『세조실록(世祖實錄)』과 『예종실록(睿宗實錄)』을 편찬하는 데에 기주관(記注官)으로 참여하였다.&lt;br /&gt;
&lt;br /&gt;
1473년(성종 3) 『예종실록』이 완성되자, 기주관으로 수고하였다고 하여, 향표리(鄕表裏) 1벌을 하사받았다. 그 뒤에 이조 좌랑(佐郞)에 임명되었다.&lt;br /&gt;
&lt;br /&gt;
1474년(성종 5) 병조 정랑(兵曹正郞)이 되었다가, 호군(護軍)으로 승진하였다.[『성종실록』 5년 8월 18일 2번째기사]&lt;br /&gt;
&lt;br /&gt;
1476년(성종 7) 사헌부 지평(持平)이 되었고, 1478년(성종 9) 사간원 헌납(獻納)이 되어, 옛날 불교 유적지에 절을 다시 세우는 사람을 탄핵하고 성종에게 불교의 신봉(信奉)을 금지하도록 건의하였다.&lt;br /&gt;
&lt;br /&gt;
1479년(성종 10) 중시(重試)에서 병과(丙科) 1위로 급제하였다.[&amp;lt;문과방목&amp;gt;] 그해 제주도 경차관(敬差官)에 임명되어, 제주도에 가서 유구국(琉球國)으로부터 돌아온 제주도 표류인(漂流人)들의 가족들을 위로하였다.&lt;br /&gt;
&lt;br /&gt;
1484년(성종 15) 외직으로 나가서 전라도 담양부사(潭陽府使)가 되었는데, 마침 큰 가뭄이 들자 굶주리는 사람들을 구휼(救恤)하여 고을 사람들을 모두 살려냈다.&lt;br /&gt;
&lt;br /&gt;
1486년(성종 17) 사헌부 집의(執義)가 되었으며, 그 뒤에 홍문관 수찬(修撰)에 임명되었다.&lt;br /&gt;
&lt;br /&gt;
1492년(성종 23) 함경도 안변부사(安邊府使)로 나갔는데, 하삼도(下三道)의 농사짓는 방법을 가르쳐서 수확량을 크게 늘렸다.[『성종실록』 23년 10월 26일 2번째기사]&lt;br /&gt;
&lt;br /&gt;
1493년(성종 24) 정3품상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승품되어, 전라도 남원부사(南原府使)로 나가서 선정(善政)을 베풀었다.&lt;br /&gt;
&lt;br /&gt;
=='''성품과 일화'''==&lt;br /&gt;
&lt;br /&gt;
남계당(南季堂)의 사람됨이 인자(仁慈)하고 화평하였으며, 법을 준수하는 양리(良吏)의 풍모가 있었다.[『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49]&lt;br /&gt;
&lt;br /&gt;
남계당(南季堂)이 전라도 담양부사(潭陽府使)가 되었을 때에 정사를 청렴하고 간결하게 처리하며, 기근에 대비하여 항상 곡물을 비축하였다. 마침 가뭄이 크게 들었으나, 창고의 곡물을 방출하여 기민(饑民)을 성의껏 구휼(救恤)하자, 고을 사람들이 한 사람도 굶어죽지 않고 모두 살아났다. 전라도 감사가 이를 보고하자, 성종이 교서(敎書)를 내려 포상하고 훌륭하다고 칭찬하였다.[『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39]&lt;br /&gt;
&lt;br /&gt;
1492년(성종 23) 10월에 성종이 경연(經筵)에 나아가서 흉년에 기민(饑民)들을 구휼(救恤)하는 문제를 논의하였는데, 영안도(永安道: 함경도) 관찰사(觀察使)를 지낸 우의정허종(許琮)이 말하기를, “신이 안변부사남계당의 정사를 보니, 백성들을 잘 살게 하려고 정성을 다하였는데, 하삼도(下三道)의 농사짓는 방법을 백성들에게 가르치고 경작에 힘쓰도록 하니, 백성들이 처음에는 부사를 원망하다가, 나중에는 수확량이 크게 늘어나는 것을 깨닫고 곧 심복(心服)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언제나 관민(官民)들이 편안하게 살도록 정사를 펴는데, 이런 사람은 세상에서 쉽게 얻을 수 없습니다. 남계당은 상을 줄 만합니다.”하니, 성종이 말하기를, “포상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다.[『성종실록』 23년 10월 26일 2번째기사] 그해 11월에 성종이 안변부사남계당에게 교서(敎書)를 내리기를, “듣건대, 그대가 농사를 권장하는 데 부지런하고, 또 백성들을 잘 어루만져 인정(仁政)을 베푼다고 하니, 특별히 1자급을 가자(加資)한다. 그대는 그리 알라.” 하였다.[『성종실록』 23년 11월 5일 5번째기사]&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        『세조실록(世祖實錄)』            &lt;br /&gt;
*        『예종실록(睿宗實錄)』            &lt;br /&gt;
*        『성종실록(成宗實錄)』            &lt;br /&gt;
*        『중종실록(中宗實錄)』            &lt;br /&gt;
*        『국조방목(國朝榜目)』            &lt;br /&gt;
*        『관암전서(冠巖全書)』            &lt;br /&gt;
*        『담양삼강록(潭陽三綱錄)』            &lt;br /&gt;
*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            &lt;br /&gt;
*        『동문선(東文選)』            &lt;br /&gt;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lt;br /&gt;
*        『점필재집(佔畢齋集)』            &lt;br /&gt;
*        『추강집(秋江集)』            &lt;br /&gt;
*        『허백정집(虛白亭集)』            &lt;br /&gt;
&lt;br /&gt;
[[분류:인물]][[분류:문신]][[분류:한국]][[분류:조선]][[분류:세조~성종]]&lt;/div&gt;</summary>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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