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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나식(羅湜)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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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5-12T23:33:48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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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ilman: XML 가져오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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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8-01-08T06:50:1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인명사전|대표표제=나식|한글표제=나식|한자표제=羅湜|이칭=|대역어=|상위어=|하위어=|동의어=|관련어=|분야=인물|유형=문신|지역=한국|시대=조선|왕대=중종~명종|집필자=이현숙|자= 정원(正源) |호= 장음정(長吟亭) |봉작=|시호=|출신=양반|성별=남자|출생=1498년(연산군 4)|사망=1546년(명종 2)|본관= 안정(安定)[비문] 나주(羅州)[『연려실기술』]|주거지= 서울[京] |묘소소재지=|증조부= 나유선(羅裕善); 양산군수(梁山郡守) |조부=나계종(羅繼宗); 한성부 참군(參軍)|부=나세걸(羅世傑); 계공랑(啓功郞) 창릉참봉(昌陵參奉)→(증) 사헌부 지평(持平)|모_외조=풍양조씨(豐壤趙氏); 대사헌 조익정(趙益貞)의 딸|형제=(동생) 나숙(羅淑); 문과 급제, 홍문관 부제학(副堤學) (동생) 나익(羅瀷); 문과 급제, 홍문관 전적(典籍)|처_장인=|자녀=|유명자손=|저술문집=장음정집(長吟亭集)|작품=|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10001686|실록연계=}}&lt;br /&gt;
&lt;br /&gt;
=='''총론'''==&lt;br /&gt;
&lt;br /&gt;
[1498년(연산군 4)∼1546년(명종 2) = 49세.] 조선 중기 중종~명종 때의 문신. 행직(行職)은 선릉참봉(宣陵參奉)이다. 자(字)는 정원(正源)이고, 호(號)는 장음정(長吟亭)이다. 본관은 안정(安定)이고, 거주지는 서울[京]이다. 아버지는 창릉참봉(昌陵參奉)나세걸(羅世傑)이고, 어머니 풍양조씨(豐壤趙氏)는 대사헌조익정(趙益貞)의 딸이다. 홍문관 부제학(副堤學)나숙(羅淑)과 성균관 전적(典籍)나익(羅瀷)의 형이다.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의 문인이고, 동생 나숙(羅淑)과 함께 &amp;lt;을사사화(乙巳士禍)&amp;gt; 때 &amp;lt;이휘(李煇)의 옥사(獄事)&amp;gt;에 연루되어 화(禍)를 당하여, ‘&amp;lt;을사명현(乙巳名賢)&amp;gt;의 두 나씨[二羅]’라고 일컬어진다.&lt;br /&gt;
&lt;br /&gt;
=='''중종 시대 활동'''==&lt;br /&gt;
&lt;br /&gt;
1534년(중종 29) 사마시(司馬試) 생원과(生員科)로 합격하였는데, 나이가 37세였다.[&amp;lt;사마방목&amp;gt;] 벼슬에 나아가기를 싫어하여 과거를 보지 않았다. 음직(蔭職)으로 선릉참봉(宣陵參奉)이 되었다. 중종 말에 계비(繼妃) 문정왕후(文定王后)가 세자(世子: 인종)를 폐위하고 자기가 낳은 대군(大君: 명종)을 세자로 삼으려고 하였으므로, 인종의 외삼촌 윤임(尹任)의 대윤(大尹) 일파와 명종의 외삼촌 윤원형(尹元衡)의 소윤(少尹) 일파가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싸웠는데, 이때 나식은 대윤의 윤임을 도와 소윤의 윤원형과 싸웠다.&lt;br /&gt;
&lt;br /&gt;
=='''인종 시대 활동'''==&lt;br /&gt;
&lt;br /&gt;
1544년(인종 즉위) 인종이 즉위하여, 윤임의 대윤 일파가 정권을 잡자, 윤임에게 사림파(士林派)를 등용하도록 건의하여, 동생 나식도 홍문관 부제학(副提學)에 임명되었다.&lt;br /&gt;
&lt;br /&gt;
=='''명종 시대 활동'''==&lt;br /&gt;
&lt;br /&gt;
1545년(명종 즉위) 인종이 31세의 젊은 나이로 죽고, 겨우 12세의 어린 명종이 즉위하자, 문정왕후가 수렴청정(垂簾聽政)하였다. 이때 정권을 잡은 윤원형의 소윤 일파가 &amp;lt;을사사화&amp;gt;를 일으켜서, 윤임의 대윤 일파를 일망타진할 때 나식⋅나숙 형제도 &amp;lt;이휘의 옥사&amp;gt;에 연루되어 참화(慘禍)를 당하였다. 이때 나식은 대윤의 중심인물로 지목되고 &amp;lt;이휘의 옥사&amp;gt;에 연루되어, 전라도 고흥 흥양(興陽)으로 유배되었고, 1546년(명종 1) 평안도 강계(江界)로 이배(移配)되었다가, 동생 나숙과 함께 같은 날에 사사(賜死)되었는데, 향년이 49세였다.&lt;br /&gt;
&lt;br /&gt;
1568년(선조 1) 영의정이준경(李浚慶)의 상소로 동생 나숙과 함께 신원(伸寃)되었다.&lt;br /&gt;
&lt;br /&gt;
문집으로는 『장음정집(長吟亭集)』이 남아 있다.&lt;br /&gt;
&lt;br /&gt;
=='''성품과 일화'''==&lt;br /&gt;
&lt;br /&gt;
성품은 호협하고 의(義)를 좋아하였다.&lt;br /&gt;
&lt;br /&gt;
나식은 평소 이휘(李煇)와 가깝게 지냈는데, 이휘는 대윤 윤임의 사위 이덕응(李德應)과 절친한 사이였다. &amp;lt;을사사화&amp;gt;가 일어나서 윤임의 대윤 일파가 화(禍)를 당할 때 윤임의 사위 이덕응도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당하였는데, 이덕응은 역모(逆謀)를 함께 도모한 사람으로 이휘를 끌어들였다. 이휘가 체포되어 의금부로 끌려가서, 나식⋅나숙 형제도 역모에 가담하였다고 자백하였다. 이에 나식⋅나숙 형제도 체포되어, 이휘와 함께 대질 심문을 받고, 참화를 당하였던 것이다.[『을사전문록(乙巳傳聞錄)』]&lt;br /&gt;
&lt;br /&gt;
그때 소윤의 이기(李芑) 등이 &amp;lt;이휘의 옥사&amp;gt;를 심문하고, 나식의 성품과 반역의 동기를 말하기를, “나식은 본래 흉악하고 패려한 사람으로서 항상 불측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고, 하고, 나식의 죄를 열거하기를, “중종 말기에 나식은 문정왕후가 세자(世子: 인종)를 폐출하고 자기가 낳은 대군(大君: 명종)을 세자로 세우려고 한다는 말을 퍼뜨리며, 말하기를, ‘동궁(東宮: 인종)을 몰래 엎고 경주(慶州)에 피해 가서 있겠다.’고 하였으며, 그 뒤에 인종이 즉위한 초기에 나식은 친구 이휘 등과 함께 종실 가운데 어진 사람을 택하여 대통(大統)을 잇게 하자는 주장을 먼저 제기하였다.”고 하였다. [『을사전문록(乙巳傳聞錄)』]&lt;br /&gt;
&lt;br /&gt;
나식이 중종 말엽에 세자(世子: 인종)를 보호하며 어려운 시기를 보낼 때 그 위태로운 상황을 시(詩)로 읊기를,&lt;br /&gt;
&lt;br /&gt;
“해는 창강 위에 저무는데,  / 日暮滄江上&lt;br /&gt;
&lt;br /&gt;
하늘은 차고 물결은 절로 일구나.  / 天寒水自波&lt;br /&gt;
&lt;br /&gt;
외로운 배가 빨리 닿아야 할 텐데, / 孤舟宜早泊&lt;br /&gt;
&lt;br /&gt;
풍랑이 밤새 더욱 일겠구나.  / 風浪夜應多”&lt;br /&gt;
&lt;br /&gt;
하였다.[『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권10]&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        『명종실록(明宗實錄)』            &lt;br /&gt;
*        『선조실록(宣祖實錄)』            &lt;br /&gt;
*        『사마방목(司馬榜目)』            &lt;br /&gt;
*        『고봉집(高峯集)』            &lt;br /&gt;
*        『기언(記言)』            &lt;br /&gt;
*        『매천집(梅泉集)』            &lt;br /&gt;
*        『명재유고(明齋遺稿)』            &lt;br /&gt;
*        『목재집(木齋集)』            &lt;br /&gt;
*        『미암집(眉巖集)』            &lt;br /&gt;
*        『백사집(白沙集)』            &lt;br /&gt;
*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lt;br /&gt;
*        『송사집(松沙集)』            &lt;br /&gt;
*        『심석재집(心石齋集)』            &lt;br /&gt;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lt;br /&gt;
*        『오산집(五山集)』            &lt;br /&gt;
*        『을사전문록(乙巳傳聞錄)』            &lt;br /&gt;
*        『임하필기(林下筆記)』            &lt;br /&gt;
*        『장음정유고(長吟亭遺稿)』            &lt;br /&gt;
*        『장음정집(長吟亭集)』            &lt;br /&gt;
*        『지봉유설(芝峯類說)』            &lt;br /&gt;
*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lt;br /&gt;
*        『해동잡록(海東雜錄)』            &lt;br /&gt;
&lt;br /&gt;
[[분류:인물]][[분류:문신]][[분류:한국]][[분류:조선]][[분류:중종~명종]]&lt;/div&gt;</summary>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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