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feed xmlns="http://www.w3.org/2005/Atom" xml:lang="ko">
		<id>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action=history&amp;feed=atom&amp;title=%EA%B9%80%EC%8A%B9%EA%B2%BD%28%E9%87%91%E5%8D%87%E5%8D%BF%29</id>
		<title>김승경(金升卿) - 편집 역사</title>
		<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action=history&amp;feed=atom&amp;title=%EA%B9%80%EC%8A%B9%EA%B2%BD%28%E9%87%91%E5%8D%87%E5%8D%BF%29"/>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title=%EA%B9%80%EC%8A%B9%EA%B2%BD(%E9%87%91%E5%8D%87%E5%8D%BF)&amp;action=history"/>
		<updated>2026-05-12T10:20:00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generator>MediaWiki 1.27.3</generator>

	<entry>
		<id>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title=%EA%B9%80%EC%8A%B9%EA%B2%BD(%E9%87%91%E5%8D%87%E5%8D%BF)&amp;diff=14356&amp;oldid=prev</id>
		<title>Silman: XML 가져오기</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title=%EA%B9%80%EC%8A%B9%EA%B2%BD(%E9%87%91%E5%8D%87%E5%8D%BF)&amp;diff=14356&amp;oldid=prev"/>
				<updated>2018-01-09T13:44:2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인명사전|대표표제=김승경|한글표제=김승경|한자표제=金升卿|이칭=|대역어=|상위어=|하위어=|동의어=|관련어=|분야=인물|유형=문신|지역=한국|시대=조선|왕대=세조~성종|집필자=최양규|자=현보(賢甫)|호=|봉작=|시호=|출신=양반|성별=남자|출생=1430년(세종 12)|사망=1493년(성종 24) 3월 18일|본관=경주(慶州)|주거지=서울|묘소소재지=경기도 인천(仁川) 주안리(朱岸里)|증조부=김곤(金稇)|조부=김중성(金仲誠)|부=김신민(金新民)|모_외조=남영 홍씨(南陽洪氏) : 홍수명(洪守命)의 딸|형제=|처_장인=밀양 박씨(密陽朴氏) : 박준(朴峻)의 딸 →(자녀) 3남 1녀|자녀=(1자)김전(金琠) (2자)김영(金塋) (3자)김서(金瑞) (1녀)이숭우(李崇禹)의 처|유명자손=|저술문집=|작품=|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10001337|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ga_10608017_003 『세조실록』 6년 8월 17일], [http://sillok.history.go.kr/id/kga_11107014_002 『세조실록』 11년 7월 14일], [http://sillok.history.go.kr/id/kia_10209122_003 『성종실록』 2년 윤9월 22일], [http://sillok.history.go.kr/id/kia_10608007_004 『성종실록』 6년 8월 7일], [http://sillok.history.go.kr/id/kia_10801013_008 『성종실록』 8년 1월 13일], [http://sillok.history.go.kr/id/kia_10807017_006 『성종실록』 8년 7월 17일], [http://sillok.history.go.kr/id/kia_10808017_005 『성종실록』 8년 8월 17일], [http://sillok.history.go.kr/id/kia_10911014_002 『성종실록』 9년 11월 14일], [http://sillok.history.go.kr/id/kia_11010025_005 『성종실록』 10년 10월 25일], [http://sillok.history.go.kr/id/kia_11212013_003 『성종실록』 12년 12월 13일], [http://sillok.history.go.kr/id/kia_11308122_005 『성종실록』 13년 윤8월 22일]}}&lt;br /&gt;
&lt;br /&gt;
=='''총론'''==&lt;br /&gt;
&lt;br /&gt;
[1430년(세종 12)∼1493년(성종 24) = 64세]. 조선 전기 세조(世祖)~성종(成宗) 때의 문신. [[승정원(承政院)]] 도승지(都承旨)와 [[사헌부(司憲府)]][[대사헌(大司憲)]] 등을 지냈다. 자는 현보(賢甫)이다.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거주지는 서울이다. 아버지는 [[중추부(中樞府)]] 지사(知使)김신민(金新民)이고, 어머니 남양 홍씨(南陽洪氏)는 홍수명(洪守命)의 딸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개국공신(開國功臣)]]인 계림군(鷄林君)김곤(金稇)이다. 이재(吏才)에 뛰어나서 성종의 사랑을 받았는데, 특히 옥사(獄事)를 공평하고 민첩하게 처결하여 칭송을 받았다.&lt;br /&gt;
&lt;br /&gt;
=='''세조~성종 시대 활동'''==&lt;br /&gt;
&lt;br /&gt;
1456년(세조 2) 식년(式年) 문과에 정과(丁科)로 급제하였는데, 그때 나이가 27세였다.[『방목(榜目)』] 그는 급제하기 전부터 재주가 있다는 이름이 났고, 벼슬하고 나서부터 현명하다는 명망이 있었다.[『허백정집(虛白亭集)』 권3 「형조참판김공묘명(刑曹參判金公墓銘) 이하 「김승경묘비명」으로 약칭」]&lt;br /&gt;
&lt;br /&gt;
세조 때 [[당하관(堂下官)]]으로 형조 [[정랑(正郞)]]과 호조 정랑을 역임하였고, 성종 때 [[종부시(宗簿寺)]][[정(正)]]·[[봉상시(奉常寺)]] 정·사헌부 [[집의(執義)]] 등을 지냈다.([http://sillok.history.go.kr/id/kga_10608017_003 『세조실록』 6년 8월 17일]),([http://sillok.history.go.kr/id/kga_11107014_002 『세조실록』 11년 7월 14일]),([http://sillok.history.go.kr/id/kia_10209122_003 『성종실록』 2년 윤9월 22일]),([http://sillok.history.go.kr/id/kia_10608007_004 『성종실록』 6년 8월 7일]),([http://sillok.history.go.kr/id/kia_10801013_008 『성종실록』 8년 1월 13일]) 당상관으로 병조 [[참의(參議)]]를 지냈으며, 승정원 동부승지(同副承旨)로 발탁되어 여러 번 옮겨서 승정원 좌승지(左承旨)에 이르고 승정원 도승지로 영전되었는데, 왕명의 출납을 잘한다고 칭찬을 받았다.([http://sillok.history.go.kr/id/kia_10807017_006 『성종실록』 8년 7월 17일]),([http://sillok.history.go.kr/id/kia_10808017_005 『성종실록』 8년 8월 17일]),([http://sillok.history.go.kr/id/kia_10911014_002 『성종실록』 9년 11월 14일]),([http://sillok.history.go.kr/id/kia_11010025_005 『성종실록』 10년 10월 25일]) 한성부우윤(漢城府右尹)을 거쳐 세 번 [[대사헌(大司憲)]]을 역임하였는데, 그때마다 조정의 기강을 숙정(肅正)하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ia_11212013_003 『성종실록』 12년 12월 13일]),([http://sillok.history.go.kr/id/kia_11308122_005 『성종실록』 13년 윤8월 22일]) 외직으로 나가서 경기도관찰사(京畿道觀察使)가 되었고, 내직(內職)으로 들어와서 호조 [[참판(參判)]]·예조 참판·공조 참판·형조 참판이 되었다. 김승경은 성종 때 중요한 관직을 맡아서 명성에 걸맞는 실적이 있었으므로, 성종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다.[「김승경묘비명」]&lt;br /&gt;
&lt;br /&gt;
=='''성품과 일화'''==&lt;br /&gt;
&lt;br /&gt;
김승경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성품이 어질고 신의가 있었으며, 행동이 신중하고 민첩하였다. 어버이를 효성으로 섬기고, 종족(宗族)을 인애(仁愛)로 대우하며, 벗에게 신의가 있어서 인륜을 져버리지 않았다. 임금에게 충성하고, 정사를 처리할 때 신중하였다. 이재가 뛰어났는데, 특히 옥사를 판결하는 데에 능하였다. 나라에서 죄수를 심의하여 처결할 때 의심스러운 문제가 있으면 반드시 김승경에게 맡겨 의혹을 밝히도록 하였는데, 김승경은 기꺼이 옥사를 맡아서 공정하고 민첩하게 처리하여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 평생토록 옥사를 맡아서 현명하게 처리하는 수고를 하였으므로, 그 자를 현보라고 하였다.[「김승경묘비명」]&lt;br /&gt;
&lt;br /&gt;
승정원에 있을 때에 여러 승지들은 모두 은대(銀帶)를 매는데, 성종은 특별히 김승경에게 금대(金帶)를 하사하여 허리에 매게 하였다. 사헌부 대사헌이 되었을 때 성종이 그 직무를 잘 수행하는 것을 훌륭하게 여겨 수찰(手札)을 내려서 격려하기를, “경이 내 마음을 알고, 내가 경의 뜻을 안다”고 하였다. 임금과 신하가 서로 크게 뜻이 맞았는데, 김승경의 품계가 참판에 머물고 [[판서(判書)]]에 오르지 못한 것은 두 사람이 비슷한 시기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죽은 뒤에 성종 때 최측근으로 활동하였던 것이 도리어 화근이 되어서 1504년(연산군 10) &amp;lt;[[갑자사화(甲子士禍)]]&amp;gt; 때 연산군(燕山君)의 생모 윤씨(尹氏)를 [[폐비(廢妃)]]하는 데에 연루되었다고 하여 [[부관참시(剖棺斬屍)]]의 추형(追刑)을 받았다.[「김승경묘비명」]&lt;br /&gt;
&lt;br /&gt;
=='''묘소와 후손'''==&lt;br /&gt;
&lt;br /&gt;
묘소는 인천 주안리(朱岸里)의 언덕에 있는데, [[홍귀달(洪貴達)]]이 지은 [[묘지명(墓誌銘)]]이 남아있다.[「김승경묘비명」]&lt;br /&gt;
&lt;br /&gt;
부인 밀양 박씨(密陽朴氏)는 박준(朴峻)의 딸인데, 자녀는 3남 1녀를 낳았다. 장남 김전(金琠)은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보덕(輔德)]]을 지냈고, 차남 김영(金塋)은 [[사옹원(司饔院)]][[봉사(奉事)]]를 지냈으며, 3남 김서(金瑞)는 상서원(祥瑞院) [[부직장(副直長)]]을 지냈다. 딸은 [[참봉(參奉)]]이숭우(李崇禹)에게 출가하였다.[「김승경묘비명」]&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단종실록(端宗實錄)』      &lt;br /&gt;
*『세조실록(世祖實錄)』      &lt;br /&gt;
*『성종실록(成宗實錄)』      &lt;br /&gt;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lt;br /&gt;
*『국조방목(國朝榜目)』      &lt;br /&gt;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lt;br /&gt;
*『국조방목(國朝榜目)』      &lt;br /&gt;
*『허백정집(虛白亭集)』      &lt;br /&gt;
&lt;br /&gt;
[[분류:인물]][[분류:문신]][[분류:한국]][[분류:조선]][[분류:세조~성종]]&lt;/div&gt;</summary>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f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