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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근강(近江)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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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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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ilman: XML 가져오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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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지명|대표표제=근강|한글표제=근강|한자표제=近江|대역어=|상위어=국(國)|하위어=|동의어=|관련어=관원(關ヶ原) 전투, 근담해(近淡海), 담해(淡海), 사행로(使行路), 사행록(使行錄)|분야=정치/외교|유형=지명|지역=|시대=|왕대=|집필자=김경태|이칭=강주(江州)|관할지역=|형성시기=|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5458|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ca_11605001_002 『태종실록』 16년 5월 1일], [http://sillok.history.go.kr/id/kca_11612025_005 『태종실록』 16년 12월 25일], [http://sillok.history.go.kr/id/kda_11207001_005 『세종실록』 12년 7월 1일], [http://sillok.history.go.kr/id/kia_12410020_007 『성종실록』 24년 10월 20일], [http://sillok.history.go.kr/id/kna_13404025_011 『선조실록』 34년 4월 25일]}}&lt;br /&gt;
&lt;br /&gt;
조선후기 통신사의 경로 중 한 곳으로, 내랑시대부터 명치초기까지 존재했던 일본의 여러 국(國) 중 하나.&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일본의 고대~중세 간선도로 구분인 5기 7도(五畿七道) 중 동산도(東山道)에 속하였다. 『고사기』에는 ‘근담해(近淡海)’·‘담해(淡海)’로 기록되어 있었다. 이 지역의 중심에 있는 비파호(琵琶湖)를 ‘담해·담해내해(淡海乃海)·근강지해(近江之海)· 근강해(近江海)’라고 불렀는데, 이와 함께 기내(畿內)에서 가까운 지역이라는 의미로 근강이라고 부르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701년 근강국이라는 표기가 등장한 이후 이름이 정착되었다.&lt;br /&gt;
&lt;br /&gt;
일본의 중심지인 기내(畿內) 지역에 접해 있고 교통의 요지였기에 정치·군사·경제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다. 조선후기 통신사의 경로 중 하나였는데, 사행록에 비파호의 풍경에 대한 묘사가 자주 등장하였다. 현재의 하자현(滋賀縣) 지역이다.&lt;br /&gt;
&lt;br /&gt;
=='''형성 및 변천'''==&lt;br /&gt;
&lt;br /&gt;
겸창(鎌倉)시대 근강의 수호(守護)는 좌좌목(佐々木)씨였다. 수호는 지방의 군사와 민정을 감독하는 직책이었다. 좌좌목 가문은 여러 가문으로 분가되었는데, 본가인 육각씨(六角氏)가 근강의 남쪽을, 또 한 일파인 경극씨(京極氏)가 북쪽을 지배하게 되었다. 이러한 구도는 대체로 실정(室町)막부 말기까지 이어졌다.&lt;br /&gt;
&lt;br /&gt;
조선과 관련해서는 태종대에 ‘대마도(對馬島) 근강수(近江守) 종무세(宗茂世)’의 사신이, 세종대에는 ‘태재부(太宰府) 종우마(宗右馬) 근강수무세(茂世)’가 와서 토산물을 바쳤다는 기록이 있다([http://sillok.history.go.kr/id/kca_11605001_002 『태종실록』 16년 5월 1일])([http://sillok.history.go.kr/id/kca_11612025_005 『태종실록』 16년 12월 25일])([http://sillok.history.go.kr/id/kda_11207001_005 『세종실록』 12년 7월 1일]). 여기서 등장하는 ‘근강수 무세’는 종무세와 동일 인물로 생각된다. 다만 그가 실제 근강 지역의 사람은 아니었을 것으로 보이며, ‘근강수’라는 직명 역시 차용 내지 도용한 것으로 생각된다.&lt;br /&gt;
&lt;br /&gt;
한편, 성종대에는 대내씨(大內氏)의 사신이 일본의 변란에 대한 정보를 전하였다. 일본의 수도인 경도(京都) 근처인 근강과 하내(河內) 지역에 도적이 발생하였는데, 대내씨 자신의 적자 신개(新介)를 출진시켜 근강의 적을 물리쳤다는 것이다([http://sillok.history.go.kr/id/kia_12410020_007 『성종실록』 24년 10월 20일]). 이 변란은 막부에 반기를 든 당시 근강 수호 육각행고(六角行高)에 대한 공격[장향(長享)·연덕(延德)의 난]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때 대내씨의 당주는 대내정홍(大內政弘), 적자는 대내의흥(大內義興)이었다. 조선은 이러한 정보를 통하여 근강의 위치 등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lt;br /&gt;
&lt;br /&gt;
전국(戰國)시대에 접어들면서 직전신장(織田信長)은 육각씨를 쫓아낸 후, 1576년 이곳에 안토(安土)성을 짓고 거처를 옮겼다. 그는 이곳에서 자유로운 분위기의 경제정책을 펼쳤고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게 되었다. 1582년 그가 사망한 후에는 곧 그의 부하였던 풍신수길(豊臣秀吉)이 차지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조카이자 양자인 풍신수차(豊臣秀次)와 여러 측근 장수들을 이 지역에 배치하였다. 여기에서 나오는 물산은 풍신정권의 중요한 자원이 되었다.&lt;br /&gt;
&lt;br /&gt;
임진왜란 시기 조선에서 포로로 일본에 끌려간 사람들이 조선에 알린 정보 중에도 근강이라는 지명이 등장하였다. 강항은 「적중봉소(賊中封疏」에서 일본의 여러 지역에 대한 정보를 자세히 전하였는데, 그중 근강에 대해서는 13개 군을 관할하는 일본에서 네 번째로 큰 지역이며 산과 들이 윤택하다고 하였다. 또 관원(關ヶ原) 전투의 정보를 전하면서 덕천가강(德川家康)과 대립하고 있는 석전삼성(石田三成)의 근거지가 근강에 있다고 하였다. 1601년 일본에서 탈출하여 조선에 귀환한 강사준과 여진덕 등도 관원 전투와 관련한 지역으로 근강을 언급하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na_13404025_011 『선조실록』 34년 4월 25일]).&lt;br /&gt;
&lt;br /&gt;
조선과 일본 사이에 국교가 재개된 후, 조선은 일본에 통신사를 파견하였다. 통신사는 당시 강호(江戶)막부의 장군이 체재하던 강호(현 동경)까지 갔는데, 그 여정 중에 근강 지역을 반드시 통과하게 되어 있었다. 현재 남아 있는 통신사의 사행록에는 대부분 근강 지역과 비파호에 대한 감상, 사람이 많고 물산이 풍부한 환경에 대한 묘사가 남아 있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      &lt;br /&gt;
*『간양록(看羊錄)』      &lt;br /&gt;
*『해행총재(海行摠載)』(일본사행록) 『속일본기(續日本紀)』      &lt;br /&gt;
*『일본서기(日本書紀)』      &lt;br /&gt;
*강재언, 『조선통신사의 일본견문록』, 한길사, 2005.      &lt;br /&gt;
*나카오 히로시 저, 유종현 역, 『조선통신사 이야기 한일 문화교류의 역사』, 한울, 2005.      &lt;br /&gt;
*삼택영리 저, 손승철 역, 『근세 한일관계사 연구』, 이론과 실천, 1991.      &lt;br /&gt;
*西ヶ谷恭弘編, 『守護·戰國大名事典』, 東京堂出版, 1998.      &lt;br /&gt;
*吉田茂樹, 『日本地名大事典』, 新人物往來社, 2004.      &lt;br /&gt;
*三省堂編修所, 『日本地名事典』, 三省堂, 2007.      &lt;br /&gt;
&lt;br /&gt;
[[분류:정치]][[분류:외교]][[분류:지명]]&lt;/div&gt;</summary>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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