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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귀성군준신원복관(龜城君浚伸冤復官)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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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사건|대표표제=귀성군준신원복관|한글표제=귀성군준신원복관|한자표제=龜城君浚伸冤復官|대역어=|상위어=|하위어=|동의어=|관련어=난언(亂言), 남이옥사(南怡獄事), 이시애란(李施愛亂)|분야=정치/정치운영/통치행위|유형=사건|지역=대한민국|시대=조선|왕대=|집필자=한춘순|발생시기=1687년(숙종 13)|발생장소=|관련인물집단=이선(李選), 김수항(金壽恒)|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2777|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ha_10108012_001 『예종실록』 1년 8월 12일], [http://sillok.history.go.kr/id/kia_10101002_006 『성종실록』 1년 1월 2일], [http://sillok.history.go.kr/id/kia_11001028_001 『성종실록』 10년 1월 28일], [http://sillok.history.go.kr/id/ksa_11306005_003 『숙종실록』 13년 6월 5일]}}&lt;br /&gt;
&lt;br /&gt;
1687년(숙종 13)에 숙종이 난언에 관련되어 유배지에서 죽은 귀성군 이준의 억울한 죄를 풀어 주고 이전의 관직을 복구함.&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귀성군(龜城君) 이준(李浚)은 세종의 4남 임영대군(臨瀛大君)이구(李璆)의 2남이다. 그는 세조의 총애를 받은 종친이었는데, 1467년(세조 13)에 발생한 이시애란(李施愛亂)을 진압한 후 정치적으로 급부상하였다. 예종 즉위 초에도 정치적 위상을 유지하였으나, 난언(亂言)에 관련되면서 처지가 위축되었다. 성종이 즉위한 후에는 세간에서 ‘왕이 될 만하다’는 난언의 중심인물이 되었고, 그로 인해 유배되었다가 유배지에서 죽었다. 1687년 6월에 이르러 그의 억울한 죽음이 신원(伸寃)되고 관작이 회복되었다.&lt;br /&gt;
&lt;br /&gt;
=='''역사적 배경'''==&lt;br /&gt;
&lt;br /&gt;
귀성군 이준은 이시애 난을 토벌한 후 적개(敵愾) 1등 공신으로, 28세의 젊은 나이에 영의정이 되었다. 예종대에 남이(南怡)의 옥사가 진정된 후에는 [[익대공신(翊戴功臣)]]이자 영의정으로 권력의 핵심에 있었다. 그런데 1469년(예종 1) 6월 임영대군을 수행하면서 그를 돕고 보호하는 일을 하던 반인(伴人) 전중생(全仲生)이 산을 불법으로 개간하다 [[별시위(別侍衛)]]이예경(李禮敬)에게 저지당했다. 그러자 전중생은 이예경에게 &amp;quot;장차 신하가 될 자가 우리 궁(宮)을 향하여 박절하게 한다.&amp;quot;고 말하였고, 이예경은 이것을 승정원에 고발한 사건이 벌어졌다. 이 일로 전중생은 능지처참(陵遲處斬)되었고, 귀성군은 처벌 받지는 않았지만 그의 처지는 급격하게 달라졌다([http://sillok.history.go.kr/id/kha_10108012_001 『예종실록』 1년 8월 12일]).&lt;br /&gt;
&lt;br /&gt;
=='''발단'''==&lt;br /&gt;
&lt;br /&gt;
귀성군의 처지가 위축된 상태에서 1470년(성종 1) 1월에는 생원인 김윤생(金允生) 등이 승정원에 자신이 들은 말을 알렸다. 임영대군 족친인 전 직장(直長) 최세호(崔世豪)가 말하길, 그의 숙부가 귀성군의 뛰어난 자질을 칭송하고 왕위 결정이 잘못되었다고 말했다는 것이었다([http://sillok.history.go.kr/id/kia_10101002_006 『성종실록』 1년 1월 2일]). 세조의 비인 정희왕후(貞熹王后)는 요절한 의경세자(懿敬世子)의 장자인 월산대군(月山大君)을 배제하고 동생 자을산군(者乙山君)을 예종의 후사로 지명하여 즉위시켰고, 즉위한 어린 성종을 대신하여 [[수렴청정(垂簾聽政)]]을 하고 있었다. 성종이 즉위하였으므로 그의 정통성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이미 기량을 인정받은 귀성군의 자질에 관련된 말들은 정국에 큰 정치적 파장을 불러올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최세호가 말한 내용과 같은, 귀성군에 대한 권맹희(權孟禧)의 난언이 보태지면서 관련자들에 대한 심문이 시작되었다.&lt;br /&gt;
&lt;br /&gt;
=='''경과'''==&lt;br /&gt;
&lt;br /&gt;
권맹희는 난언의 내용을 다 인정하였다. 아울러 최세호 난언의 진원지가 자신임도 밝혔다. 권맹희와 최세호 두 사람은 능지처참되었다. 누구도 귀성군을 두둔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귀성군은 공신의 명부에서 이름이 삭제되고 경상도 영해(寧海)에 안치되었다가, 유배지에서 사망하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ia_11001028_001 『성종실록』 10년 1월 28일]).&lt;br /&gt;
&lt;br /&gt;
1687년에 이선(李選)이 귀성군을 신원하고 복관해 주기를 청했다. 대신(大臣) 김수항(金壽恒)도 그의 죄목의 부당성을 극력 진달하여 귀성군에 대한 신원·복관이 이루어졌다([http://sillok.history.go.kr/id/ksa_11306005_003 『숙종실록』 13년 6월 5일]). 1789년(정조 13)에는 귀성군의 무덤을 경호하게 하였고, 1872년(고종 9)의 보고에 따르면 무안대군(撫安大君)이방번(李芳蕃)의 현손(玄孫)인 회원군(會原君)이쟁(李崢)이 귀성군 이준의 후사로 정해졌음이 드러났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정두희, 『조선 초기 정치 지배 세력 연구』, 일조각, 1983.      &lt;br /&gt;
*지두환, 『성종대왕과 친인척 1: 성종세가』, 역사문화, 2007.      &lt;br /&gt;
*김상오, 「이시애의 난에 대하여(상)」, 『전북사학』2, 1978.      &lt;br /&gt;
*김성준, 「종친부고」, 『사학연구』18, 1964.      &lt;br /&gt;
*한충희, 「조선 세조대(1455~1468) 종친 연구」, 『한국학논집』22, 1995.      &lt;br /&gt;
&lt;br /&gt;
[[분류:정치]][[분류:정치운영]][[분류:통치행위]][[분류:사건]][[분류:대한민국]][[분류:조선]]&lt;/div&gt;</summary>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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