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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구일식의(救日食儀)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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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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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ilman: XML 가져오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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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의식행사|대표표제=구일식의|한글표제=구일식의|한자표제=救日食儀|대역어=|상위어=군례(軍禮)|하위어=|동의어=구식례(救食禮), 구일식(救日食), 구일식의(救日蝕儀)|관련어=구월식의(救月食儀)|분야=왕실/왕실의례/군례|유형=의식·행사|지역=대한민국|시대=조선|왕대=|집필자=허태구|시작시기=|시행시기=|시행기관=|시행장소=|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3505|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ia_10609001_003 『성종실록』 6년 9월 1일]}}&lt;br /&gt;
&lt;br /&gt;
조선시대에 일식을 구제하기 위해 행하는 의례.&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일식은 태양이 달에 의해 일시적으로 가려지는 자연현상이지만, 근대 이전에는 천재지변의 하나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왕은 일식 현상이 사라질 때까지, 공구수성(恐懼修省) 즉, 두려워하며 수양하고 반성하는 의미로 [[소복(素服)]]을 입고 신하들과 함께 기도하는 구일식의를 행하였다.&lt;br /&gt;
&lt;br /&gt;
=='''연원 및 변천'''==&lt;br /&gt;
&lt;br /&gt;
『고려사(高麗史)』「예지(禮志)」에 구일식의와 구월식의(救月食儀)의 의주(儀註)가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이미 구일식의가 거행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시대의 경우 『세종실록』 「오례」와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두 의례의 의주가 정리되어 있는데, 양자의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영조대에 편찬된 『국조속오례의(國朝續五禮儀)』에서는 친림구일식의(親臨救日食儀)로 그 명칭이 바뀌었다.&lt;br /&gt;
&lt;br /&gt;
지방관이 구일식하는 의례도 왕의 구일식의를 준용하였다. 밤에 발생하는 일식에는 구일식의를 시행하지 않았는데, 하늘이 흐려 보이지 않는 경우에는 시행 여부를 두고 논란이 있기도 하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ia_10609001_003 『성종실록』 6년 9월 1일]). 영조대에는 왕과 시신(侍臣) 모두 [[천담복(淺淡服)]]을 입고 구일식의를 거행하였다.&lt;br /&gt;
&lt;br /&gt;
=='''절차 및 내용'''==&lt;br /&gt;
&lt;br /&gt;
『세종실록』 「오례」를 기준으로 구일식의의 절차를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행사 당일 [[액정서(掖庭署)]]에서 왕의 욕위(褥位)와 [[향안(香案)]]을 [[근정전(勤政殿)]] 섬돌 위에 설치한다. [[전악서(典樂署)]][[전악(典樂)]]이 청색·적색·백색의 북[鼓] 3개를 방위에 맞춰 섬돌 위에 두고, 병조(兵曹) 정랑(正郎)은 청색·적색·백색의 [[휘(麾)]] 3개를 고(鼓) 안에 진열하고, 모(矛)·극(戟)·월(鉞)의 병기(兵器) 3개를 고(鼓) 밖에 진열한다. 전의(典儀)는 시신(侍臣)의 자리를 전정(殿庭)의 동쪽·서쪽에 배치한다.&lt;br /&gt;
&lt;br /&gt;
일식 시작 5각(刻) 전에 병조는 시위하는 군사를 배열하고, 시신(侍臣)은 [[소복(素服)]]을 입고 근정문(勤政門) 밖에 나아가 평상시와 같이 선다. 1각은 15분이다.&lt;br /&gt;
&lt;br /&gt;
일식 시작 3각 전에 호위하는 관원과 사금(司禁)은 무기와 복장을 갖추고 [[사정전(思政殿)]][[합문(閤門)]] 밖에 나아가 하늘을 살핀다. 판통례(判通禮)가 중엄(中嚴)을 왕에게 아뢰면, 왕이 소복을 입고 자리에 나온다.&lt;br /&gt;
&lt;br /&gt;
일식 시작 1각 전에 봉례랑(奉禮郞)이 시신들을 인도하여 자리에 나아가다. 판통례가 바깥의 준비가 완료되었음을 왕에게 아뢰면 왕이 [[여(輿)]]를 타고 나아간다. 욕위에 이르면 해를 향하여 꿇어앉는다.&lt;br /&gt;
&lt;br /&gt;
[[서운관(書雲觀)]]에서 변고가 있음을 알리면, 사향(司香)은 향을 피우고 전악은 북을 치는데 일식이 종료되면 멈춘다.&lt;br /&gt;
&lt;br /&gt;
판통례가 어좌 앞에 나아가 내전(內殿)으로 돌아갈 것을 왕에게 아뢰면 왕은 여를 타고 돌아간다. 봉례랑이 시신들을 인도하여 나간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lt;br /&gt;
*『국조속오례의(國朝續五禮儀)』      &lt;br /&gt;
&lt;br /&gt;
[[분류:왕실]][[분류:왕실의례]][[분류:군례]][[분류:의식·행사]][[분류:대한민국]][[분류:조선]]&lt;/div&gt;</summary>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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