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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교종(敎宗)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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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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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12-09T16:43:2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집단기구|대표표제=교종|한글표제=교종|한자표제=敎宗|대역어=|상위어=선교양종(禪敎兩宗)|하위어=시흥종(始興宗), 자은종(慈恩宗), 중신종(中神宗), 화엄종(華嚴宗)|동의어=|관련어=선종(禪宗), 오교양종(五敎兩宗), 흥덕사(興德寺), 도회소(都會所), 계율종(戒律宗), 법상종(法相宗), 열반종(涅槃宗), 법성종(法性宗), 원융종(圓融宗), 총남종(摠南宗), 조계종(曹溪宗), 천태종(天台宗)|분야=문화/종교/불교|유형=집단·기구|지역=대한민국|시대=조선전기|왕대=조선전기|집필자=김용태|설치시기=1424년(세종 6), 1550년(명종 5)|폐지시기=1512년(중종 7), 1566년(명종 21)|소속관서=예조|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3059|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ca_10603027_001 『태종실록』 6년 3월 27일], [http://sillok.history.go.kr/id/kda_10604005_002 『세종실록』 6년 4월 5일], [http://sillok.history.go.kr/id/kma_10512015_002 『명종실록』 5년 12월 15일], [http://sillok.history.go.kr/id/kma_12104020_002 『명종실록』 21년 4월 20일]}}&lt;br /&gt;
&lt;br /&gt;
조선 세종대에 여러 불교 종파를 통합하여 만든 선교양종 중 교종 종파.&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1424년(세종 6)에 세종은 예조의 건의에 따라, 불교의 여러 종파를 선교양종(禪敎兩宗)으로 통합하였다. 더불어 선종과 교종 각각 18개씩, 총 36개의 사사(寺社)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거주 승려와 보유 토지 및 노비의 수를 지정하였다. 또 교종과 선종의 도회소(都會所)를 두어, 각각 소속 승려의 인사와 승과(僧科) 시행 등을 담당하게 하였다.&lt;br /&gt;
&lt;br /&gt;
이후 연산군 말년에는 교종도회소와 선종도회소가 모두 도성 밖으로 옮겨졌고, 승과 시행 또한 중단되었다. 16세기 초반인 중종 연간에는 선교양종이 공식적으로 폐지되고, 『경국대전』에서 [[도승(度僧)]] 등의 항목이 삭제되면서 법제상의 폐불(廢佛)이 단행되었다. 1550년(명종 5)에 선교양종이 재건되면서 도승과 승과가 재개되었지만, 1565년(명종 20)에 다시 폐지되었다.&lt;br /&gt;
&lt;br /&gt;
=='''설립 경위 및 목적'''==&lt;br /&gt;
&lt;br /&gt;
고려말기의 불교 교단은 [[오교양종(五敎兩宗)]]으로 불렸는데, 교종인 오교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지만 대체로 계율종(戒律宗)·법상종(法相宗)·열반종(涅槃宗)·법성종(法性宗)·원융종(圓融宗)을 가리킨다.&lt;br /&gt;
&lt;br /&gt;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태종대에, 기존의 불교 종파를 조계종·천태종·[[화엄종(華嚴宗)]]·[[자은종(慈恩宗)]]·[[중신종(中神宗)]]·[[총남종(摠南宗)]]·[[시흥종(始興宗)]] 등 7개로 축소하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ca_10603027_001 『태종실록』 6년 3월 27일]). 세종대인 1424년에는 이를 다시 선교양종으로 통폐합하였다. 즉 조계종·천태종·총남종을 선종으로 합치고, 화엄종·자은종·중신종·시흥종을 교종으로 통합하였다. 또 불교 관련 제반 사무를 담당하던 관청인 [[승록사(僧錄司)]]를 폐지하고, 그 대신 양종의 도회소를 설치하여 각각 소속 승려의 인사 및 승과 시행 등을 관장하게 하였다. 선종도회소는 서울의 [[흥천사(興天寺)]]에, 교종도회소는 [[흥덕사(興德寺)]]에 두었다([http://sillok.history.go.kr/id/kda_10604005_002 『세종실록』 6년 4월 5일]). 이러한 일련의 종파 통합 및 불교 시책은 토지, 노비 등과 같은 불교계의 경제 기반을 국가 재정에 귀속시키려는 억불 정책의 일환으로 단행되었다.&lt;br /&gt;
&lt;br /&gt;
=='''조직 및 역할'''==&lt;br /&gt;
&lt;br /&gt;
교종의 도회소는 서울 흥덕사에 설치되었는데, 조정에서는 행수장무(行首掌務)를 임명하여 승려들의 일을 살피게 하였다. 교종의 승과 교재는 『화엄경(華嚴經)』과『십지론(十地論)』이었으며, 소속 관서는 예조였다.&lt;br /&gt;
&lt;br /&gt;
=='''내용 및 변천'''==&lt;br /&gt;
&lt;br /&gt;
세종대에 예조에서는 [[계(啓)]]를 올려, 교종 18개 사찰에 총 1,800명의 거주승과 3,700결의 사전(寺田)만을 공인할 것을 건의하였다. 그러면서 각 사찰별 거주승의 정원과 전지의 결수(結數)를 구체적으로 정해 아뢰었다. 그에 따르면, 그 당시 교종도회소인 흥덕사의 경우 거주승은 120명, 토지는 250결로 정해졌다. 개성의 [[광명사(廣明寺)]]에는 원래 보유했던 토지 100결에 추가로 100결을 지급하고, 거주승 100명을 인정해 주었다. 그밖에 감로사(甘露寺)·[[연경사(衍慶寺)]]·[[영통사(靈通寺)]]·[[소요사(逍遙寺)]]·[[장의사(藏義寺)]]·속리사(俗離寺)·[[해인사(海印寺)]]·월정사(月精寺)·신광사(神光寺)·[[영명사(永明寺)]] 등도 각각 전지의 결수와 거주승의 수가 정해졌다. 그 중 금강산[[표훈사(表訓寺)]]는 원래의 토지 210결에 90결을 추가로 지급받고 150명의 거주 승려를 인정받아, 교종의 공인 사찰 중 가장 규모가 큰 사찰이 되었다.&lt;br /&gt;
&lt;br /&gt;
태종대와 세종대에 불교 종파 수의 축소와 사찰 경제 기반의 환수가 추진된 뒤, 성종대에는 승려 자격증에 해당하는 도첩(度牒)의 신규 발급을 일시적으로 중단하기도 하였다. 이어 연산군대에는 교종과 선종의 도회소가 경기도 광주의 [[청계사(淸溪寺)]]로 이전되었고, 승과의 정기적인 시행이 중단되었다. 결국 중종대인 1512년(중종 7)에 선교양종과 양종의 도회소가 폐지되었고, 1516년(중종 11)에는 『경국대전』의 불교 관련 조항이 삭제되었다.&lt;br /&gt;
&lt;br /&gt;
명종대인 1550년(명종 5)에는 무자격 승려의 폐해를 바로잡는다는 명분으로 선교양종이 복립되고, 교종과 선종의 승과 및 [[도승(度僧)]]이 재개되었다([http://sillok.history.go.kr/id/kma_10512015_002 『명종실록』 5년 12월 15일]). 이는 그 당시 수렴청정을 하고 있던 문정왕후(文定王后)의 뜻에 따른 것이다. 교종은 수진(守眞)이 [[판사(判事)]]로 임명되었고, 세조의 능인 [[광릉(光陵)]] 인근에 위치한 [[봉선사(奉先寺)]]가 교종의 본사로 지정되었다. 당시, 선교양종에 각각 종론(宗論)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종판사의 후임을 선종 승려가 맡는 등의 일이 일어나자 교종 측에서 반발하는 등 양측의 갈등도 존재하였다. 문정왕후가 양종의 존속을 유언으로 남기고 세상을 떠났지만, 1566년(명종 21) 유생들의 혁파 건의에 따라 선교양종은 결국 폐지되었다([http://sillok.history.go.kr/id/kma_12104020_002 『명종실록』 21년 4월 20일]).&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경국대전(經國大典)』      &lt;br /&gt;
*「흥왕사대각국사묘지명(興王寺大覺國師墓誌銘)」      &lt;br /&gt;
*김영수, 『조선불교사고』, 중앙불교전문학교, 1939.      &lt;br /&gt;
*김용태, 『조선후기 불교사 연구-임제법통과 교학전통』, 신구문화사, 2010.      &lt;br /&gt;
*이능화, 『조선불교통사』, 신문관, 1918.      &lt;br /&gt;
*한우근, 『유교정치와 불교-여말선초 대불교시책』, 일조각, 1993.      &lt;br /&gt;
*高橋亨, 『李朝佛敎』, 寶文館, 1929.      &lt;br /&gt;
&lt;br /&gt;
=='''관계망'''==&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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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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