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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계담(罽毯)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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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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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ilman: XML 가져오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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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7-12-09T15:22:3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물품도구|대표표제=계담|한글표제=계담|한자표제=罽毯|대역어=|상위어=직물(織物)|하위어=인(茵), 전(氈)|동의어=구유(氍毹), 모담(毛毯), 융담(絨毯), 탑등(毾㲪)|관련어=모석(毛席), 모욕(毛褥), 조선모철(朝鮮毛綴), 조선철(朝鮮綴)|분야=생활·풍속/의생활/제구|유형=물품·도구|지역=대한민국|시대=삼국~조선|왕대=|집필자=이민주|용도=깔개, 자리, 요|재질=모직(毛織)|관련의례=혼례(婚禮)|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3981|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ia_10301022_004 『성종실록』 3년 1월 22일], [http://sillok.history.go.kr/id/kka_13612029_004 『중종실록』36년 12월 29일]}}&lt;br /&gt;
&lt;br /&gt;
[정의] 모직물로 만든 깔개나 담요.&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계담은 모직물로 만든 우리나라의 전통 융단이다. 깔개, 방장(房帳), 자리, 요 등으로 사용하였으며, 탑등(毾㲪), 모담(毛毯), 융담(絨毯)이라고도 한다. 일본에서는 조선철(朝鮮綴) 또는 조선모철(朝鮮毛綴)이라고 하는데, 이는 날실을 팽팽하게 건 곳에 색이 있는 씨실을 무늬의 색에 따라 꿰매 가듯이 짜 넣는 평직의 변화 조직으로  태피스트리(tapestry) 기법을 사용하였다.&lt;br /&gt;
&lt;br /&gt;
=='''연원 및 변천'''==&lt;br /&gt;
&lt;br /&gt;
우리나라에는 청동기시대 때부터 모직물로 만든 깔개가 있었다. 청동기시대 유적지로 알려진 평안북도 강계시 공귀리 유적에서 흙으로 빚어 만든 수직식 직기의 추가 발견되어 이 사실을 뒷받침한다.&lt;br /&gt;
&lt;br /&gt;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당나라 태종에게 ‘오색구유(五色氍毹)’를 보냈다고 하였는데, 『광운(廣韻)』에 구유는 모석(毛席) 또는 요(褥), 즉 털방석 또는 담요를 의미한다고 했다.&lt;br /&gt;
&lt;br /&gt;
고려시대 『삼도부(三都賦)』에도 고려의 귀족들은 바닥에 채담(彩毯)을 깔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역시 다채로운 무늬를 넣어 짠 융단이었다. 이처럼 화려하게 만든 깔개 내지 담요는 조선시대에도 인기가 있었다. 그러나 계담은 사치 품목으로 규정되어 여러 차례 금지하는 명이 내려졌다.&lt;br /&gt;
&lt;br /&gt;
1472년(성종 3) 사치를 금하는 전지(傳旨)에 따라 예조(禮曹)에서 올린 『속육전(續六典)』의 혼인 조목에서 혼석(昏夕)의 배석(拜席)에 계담을 사용할 수 없으며, 단지 한 겹 돗자리만을 쓸 수 있게 하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ia_10301022_004 『성종실록』 3년 1월 22일]). 또 1541년(중종 36)에는 당하관 이하에서는 혼인 때 화려하고 값비싼 비단과 계담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였으며, 이를 어길 때에는 장 80대에 처한다([http://sillok.history.go.kr/id/kka_13612029_004 『중종실록』36년 12월 29일])고 한 것으로 보아 계담을 사치 품목으로 보고 강력하게 규제했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형태'''==&lt;br /&gt;
&lt;br /&gt;
계담은 주로 깔개, 방장, 담요 등으로 사용하였으므로 그 형태는 네모난 방형이 주를 이룬다. 계담에는 호랑이, 사자, 봉황, 매화, 기타 초목 등의 무늬를 넣었으며, 남색을 기본으로 짙은 갈색, 연갈색, 주황색, 연두색, 흰색 등을 섞어 조화를 이루었다. 한국적 색채의 조화가 잘 드러나는 물품이라고 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국립문화재연구소 편, 『우리나라 전통무늬1 직물』, 눌와, 2006.      &lt;br /&gt;
*심연옥, 『한국직물 오천년』, 고대직물연구소, 2002.      &lt;br /&gt;
&lt;br /&gt;
[[분류:생활·풍속]][[분류:의생활]][[분류:제구]][[분류:물품·도구]][[분류:대한민국]][[분류:삼국~조선]]&lt;/div&gt;</summary>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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