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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경안도(慶安道)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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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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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ilman: XML 가져오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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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개념용어|대표표제=경안도|한글표제=경안도|한자표제=慶安道|대역어=|상위어=|하위어=덕풍역(德豊驛), 아천역(阿川驛), 오천역(吾川驛), 유춘역(留春驛), 양화역(楊花驛), 신진역(新津驛), 안평역(安平驛)|동의어=|관련어=능행로(陵行路), 역도(驛道), 역승(驛丞), 찰방(察訪), 광주부(廣州府)|분야=경제/교통/육운|유형=개념용어|지역=|시대=|왕대=|집필자=조성운|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2263|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ga_10309012_004 『세조실록』 3년 9월 12일], [http://sillok.history.go.kr/id/kja_10311009_002 『연산군일기』 3년 11월 9일], [http://sillok.history.go.kr/id/kja_10311009_002 『연산군일기』 3년 11월 9일]}}&lt;br /&gt;
&lt;br /&gt;
조선시대에 경기도 광주(廣州)의 [[경안역(慶安驛)]]을 중심으로 한 역도.&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경안도(慶安道)는 조선 세종 연간에 설치된 것으로 보이는데, 경상좌도의 진상품과 왜인들의 수공(輸貢) 물품을 한양에 전달하는 수송로의 역들을 관할하였다. 또한 왕이 도성을 출발하여 여주 영녕릉(英寧陵)으로 가는 능행로에 위치하여, 수행 인원의 접대 및 잡물 운반에 쓰이는 역마의 입대(立待) 등을 담당하였다.&lt;br /&gt;
&lt;br /&gt;
=='''내용 및 특징'''==&lt;br /&gt;
&lt;br /&gt;
경안도는 양재도(良才道)·[[평구도(平丘道)]]와 함께 경기도 행정 구역에 속한 [[역도(驛道)]]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덕풍역·아천역·오천역·유춘역·양화역·신진역·안평역 등 7개 속역이 경안도에 포함돼 있다.&lt;br /&gt;
&lt;br /&gt;
『세조실록』에 따르면, 경상좌도의 진상품과 왜인들이 수공하는 물품은 모두 충청도의 장림역·황간역·수산역·연원역·가흥역 등과, 경기도의 [[안평역(安平驛)]]·[[신진역(新津驛)]]·[[양화역(楊花驛)]]·[[아천역(阿川驛)]]·유춘역(留春驛)·[[오천역(吾川驛)]]·경안역·봉안역·오빈역·[[덕풍역(德豊驛)]]·평구역 등을 경유하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ga_10309012_004 『세조실록』 3년 9월 12일]). 또 『연산군일기』에 따르면 안동(安東)의 도회진상(都會進上)인 영덕(盈德)의 별진상(別進上)도 이 경로를 거쳐 한양으로 수송되었으며, 일본의 사신도 이 길을 통해 사행을 하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ja_10311009_002 『연산군일기』 3년 11월 9일]). 이로 볼 때 진상품의 수송 및 일본과의 외교에서 경안도가 차지하는 비중이 컸음을 알 수 있다. 그뿐 아니라 경안도는 도성에서 여주의 영릉으로 가는 능행로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왕을 수행하는 다수의 인원을 접대하고 각종 물자를 운반하는 데 쓰이는 역마를 제공해야 하는 등의 부담을 지고 있었다.&lt;br /&gt;
&lt;br /&gt;
『연산군일기』에 &amp;quot;유독 경안일로(경안도)만이 심하게 조잔·피폐하다.&amp;quot;([http://sillok.history.go.kr/id/kja_10311009_002 『연산군일기』 3년 11월 9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경안도의 운영은 그리 원활하지 않았던 것으로 짐작된다.&lt;br /&gt;
&lt;br /&gt;
=='''변천'''==&lt;br /&gt;
&lt;br /&gt;
고려의 역도를 계승한 조선 왕조가 언제부터 역도를 개혁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1413년(태종 13)에 부분적인 개편에 나서서 경기도의 마산도(馬山道)를 청파도(靑坡道), 금곡도(金谷道)를 [[중림도(重林道)]], 풍해도구참(豊海道九站)을 동선보산도(洞仙寶山道)로 개편하고 청교도(靑郊道)를 증설하였으며, 이듬해에는 평구도를 복치하였다. 그 뒤 1423년(세종 5)에는 경상도에 [[황산도(黃山道)]]와 성현도(省峴道)를 설치하였고, 6진 개척을 계기로 태조 이후 신설한 역들을 관리하기 위해 역도-속역 체계를 확립하였다.&lt;br /&gt;
&lt;br /&gt;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경안도는 덕풍역·아천역·오천역·유춘역·양화역·신진역·안평역 등 7개 속역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1485년(성종 15)에 편찬된 『경국대전(經國大典)』에도 이 편제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런데 『성종실록』에 따르면 1475년(성종 6)에 평구도에 속한 덕풍역·경안역·양화역·신진역·안평역 등 5개 역을 예전대로 경안도에 소속시키고, 양재도에 소속된 아천역·오천역·유춘역 등 3개 역을 경안도에 이속시켰다. 이로 미루어 조선시대의 역도는 『경국대전』이 편찬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개편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뒤 1530년(중종 25)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경안도의 속역이 덕풍역·양화역·신진역·안평역·아천역·오천역·유춘역 등 7개 역으로 되어 있어, 『경국대전』에 기록된 경안도의 편제가 이후에도 변화 없이 유지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한편 세종대에는 경안도에 [[역승(驛丞)]]을 두어 관리하게 하였고, 1457년(세조 3)에는 [[찰방(察訪)]]으로 승격하였다. 이후 1865년(고종 2)에 편찬된 『대전회통(大典會通)』에 따르면 경안도를 비롯해 경기도의 양재도·영서도, 강원도의 은계도, 충청도의 성환도, 함경도의 고산도, 평안도의 대동도·어천도 등의 경우 성균관과 승문원의 관원 등 중앙 관원으로 하여금 찰방을 겸직하게 하고, 민정의 비위를 탐사하여 왕에게 직접 상주하게 하는 겸찰방 제도를 실시하였다. 경안도는 1896년(고종 33) 1월 18일, 대한제국 칙령 제9호 ‘각 역 찰방 및 역속 폐지에 관한 건’에 따라 폐지되었다.&lt;br /&gt;
&lt;br /&gt;
[[파일:P00012263_01.PNG|300px]]&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경국대전(經國大典)』      &lt;br /&gt;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lt;br /&gt;
*조병로, 『韓國近世 驛制史硏究』, 국학자료원, 2005.      &lt;br /&gt;
*유선호, 「朝鮮初期의 驛路와 直路」, 『역사교육』70, 1999.      &lt;br /&gt;
&lt;br /&gt;
=='''관계망'''==&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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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분류:경제]][[분류:교통]][[분류:육운]][[분류:개념용어]]&lt;/div&gt;</summary>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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