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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경기병(京騎兵)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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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ilman: XML 가져오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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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직역|대표표제=경기병|한글표제=경기병|한자표제=京騎兵|대역어=|상위어=군역(軍役)|하위어=호액(戶額), 보인(保人)|동의어=|관련어=별기병(別騎兵), 병조(兵曹), 역군(役軍), 고가(雇價)|분야=경제/재정/역|유형=직역|지역=대한민국|시대=조선시대|왕대=조선시대|집필자=손병규|제정시기=|폐지시기=|소속관서=|관품=|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1737|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ua_10706010_004 『영조실록』 7년 6월 10일], [http://sillok.history.go.kr/id/kua_11509006_001 『영조실록』 15년 9월 6일]}}&lt;br /&gt;
&lt;br /&gt;
병조의 재원 마련을 위해 주로 군포를 납부하던 군병. &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국초 경기병(京騎兵)은 호액(戶額)이 1,000명이고 [[보인(保人)]]은 3,000명에 달하였다. 경기병으로 입역(立役)하는 사람들은 호(戶)당 1명씩 차출되었으며, 이들은 한성에 거주하였다. 반면 이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해 주는 보인은 지방에 소재하였다. 호와 보를 물론하고 이들에게서는 모두 베 2필을 거두었다.&lt;br /&gt;
&lt;br /&gt;
=='''담당 직무'''==&lt;br /&gt;
&lt;br /&gt;
경기병은 18세기 초까지도 입역하는 경우가 있었으나 실제로는 모두 포를 거두는 자로 존재하였다. 경기병으로부터 징수한 포는 한성 각처 역군(役軍)의 고가(雇價) 등 [[병조(兵曹)]]의 재정으로 사용되었다.&lt;br /&gt;
&lt;br /&gt;
=='''변천'''==&lt;br /&gt;
&lt;br /&gt;
18세기 초까지는 형식적으로나마 경기병의 입역제도가 존재하였다. 1731년(영조 7)에 병조판서김재로(金在魯)가 “본조(本曹)의 도안(都案)에 이른바 경기병이란 자들은 외방에서 [[보포(保布)]]를 받아 경제적으로 지원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역(役)이 천하고 또 번거롭기 때문에 사람들이 싫어하고 회피하여 혹 다른 역에 투속(投屬)하거나 도망쳐 버렸고, 남은 자들은 또 한성부 내 아전[部吏]의 사적인 용도로 편입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고(故) 판서민진후(閔鎭厚)가 일찍이 연석에서 아뢰기를, ‘500명을 정원으로 해서 5부(五部)에 분배해 즉시 대신 충당하게 해야 한다.’라고 하였으나, 그 후에도 구태의연하여 다 충당하지 못했습니다.”라고 지적하였다.&lt;br /&gt;
&lt;br /&gt;
계속해서 그는 입역하는 자가 없고 포를 바치는 자도 별로 없어 약간의 보포로 사람을 고용할 뿐이니, 다시는 경기병을 입역시키지 말고 매 명마다 단지 포 1필씩을 거두어 사람을 고용할 밑천에 보태자고 건의하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ua_10706010_004 『영조실록』 7년 6월 10일]). 이로 볼 때, 18세기 초기까지는 형식적으로나마 경기병 입역의 제도가 존재했던 것 같다. 경기병의 입역을 없애자는 김재로의 건의는 숙종의 전교로 『신보수교집록(新補受敎輯錄)』 내에 수록되었다.&lt;br /&gt;
&lt;br /&gt;
1738년(영조 14)에는 경기병을 폐지하고 그 보인 1,500명을 별기병(別騎兵)으로 조직하여 포를 바치도록 하였다. 1739년(영조 15)에도 한성 5부의 부로(父老)들로부터 경기병의 폐단이 제기되었다. 17세기 이후 각 군문(軍門)이 계속 설치되어 양정(良丁)을 채울 수 없는데, 양정을 충정(充定)하도록 독촉하여 도민(都民)이 소요하는 폐단이 있다는 것이다([http://sillok.history.go.kr/id/kua_11509006_001 『영조실록』 15년 9월 6일]). 양역(良役)의 역종별 정족수를 하향 고정화하는 정액(定額) 작업이 진행되는 환경에서, 그 영향으로 1739년 9월에 경기병은 완전히 폐지되었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만기요람(萬機要覽)』      &lt;br /&gt;
*『신보수교집록(新補受敎輯錄)』      &lt;br /&gt;
&lt;br /&gt;
=='''관계망'''==&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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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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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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