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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강무의(講武儀)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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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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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ilman: XML 가져오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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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의식행사|대표표제=강무의|한글표제=강무의|한자표제=講武儀|대역어=|상위어=군례(軍禮)|하위어=|동의어=|관련어=|분야=왕실/왕실의례/군례|유형=의식·행사|지역=대한민국|시대=조선|왕대=|집필자=허태구|시작시기=태조|시행시기=|시행기관=|시행장소=|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3504|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aa_10511030_001 『태조실록』 5년 11월 30일], [http://sillok.history.go.kr/id/kda_10202022_005 『세종실록』 2년 2월 22일], [http://sillok.history.go.kr/id/kja_10508022_002 『연산군일기』 5년 8월 22일], [http://sillok.history.go.kr/id/kka_13109011_001 『중종실록』 31년 9월 11일]}}&lt;br /&gt;
&lt;br /&gt;
조선시대 왕의 친림 하에 실시되는 수렵 의례.&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무비(武備)가 해이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실시한 수렵 행사이다. 왕의 친림(親臨) 하에 실시되었으며, 군사 훈련의 성격도 지니고 있었다.&lt;br /&gt;
&lt;br /&gt;
=='''연원 및 변천'''==&lt;br /&gt;
&lt;br /&gt;
1396년(태조 5) [[의흥삼군부(義興三軍府)]]의 건의에 따라 의식 규례가 마련되었다([http://sillok.history.go.kr/id/kaa_10511030_001 『태조실록』 5년 11월 30일]). 『세종실록』 「오례」와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강무의의 의주(儀註)를 정리해 놓았는데 양자의 내용은 대동소이하다.&lt;br /&gt;
&lt;br /&gt;
태종대에는 강무장(講武場)이 전국에 산재하였는데, 세종대에는 경기도와 강원도에 걸친 4곳만을 강무장으로 지정하여 지역의 피해를 덜고자 하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da_10202022_005 『세종실록』 2년 2월 22일]). 조선초기에 자주 시행되었는데, 민력(民力)의 소모가 많아 시행 중지를 요청하는 건의도 적지 않았다([http://sillok.history.go.kr/id/kja_10508022_002 『연산군일기』 5년 8월 22일])([http://sillok.history.go.kr/id/kka_13109011_001 『중종실록』 31년 9월 11일]). 조선중기를 거치며 점차 쇠퇴하였다. 조선후기에는 사냥이 생략된 [[열무(閱武)]] 위주의 행사로 변했다.&lt;br /&gt;
&lt;br /&gt;
=='''절차 및 내용'''==&lt;br /&gt;
&lt;br /&gt;
『세종실록』 「오례」를 기준으로 강무의의 절차를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lt;br /&gt;
&lt;br /&gt;
행사 7일 전 병조(兵曹)는 백성을 징발하여 사냥하는 법을 따르게 하고 사냥할 들판에 경계를 표시한다. 당일 새벽 깃발을 사냥터 뒤편에 세우고, 장수들로 하여금 군사를 약속된 깃발 아래 집합시키도록 한다.&lt;br /&gt;
&lt;br /&gt;
행사 당일 병조에서 사냥을 시작하는 [[영(令)]]을 알리면, 군사들이 깃발을 세우고 주변을 에워싸는데 앞쪽은 틔워놓는다. 어가(御駕)가 북을 치면서 에워싼 빈 곳에 도착한다. 여러 장수들도 북을 치면서 에워싼 빈 곳에 나아가고, 몰이하는 기병을 출동시킨다. 왕이 말을 타고 남향하면 대군 이하의 관원들도 말을 타고 왕의 앞뒤에 도열한다.&lt;br /&gt;
&lt;br /&gt;
유사(有司)가 세 마리 이상의 짐승을 몰아 왕의 앞으로 나온다. 첫 번째 몰이에는 유사가 활과 화살을 정돈하고, 두 번째 몰이에는 병조에서 활과 화살을 올리며, 세 번째 몰이에는 왕이 쫓아가 짐승의 왼쪽에서 활을 쏜다. 왕이 화살을 쏜 뒤에야 여러 왕자들이 활을 쏘고, 그 다음에는 장수와 군사들이 차례로 쏜다. 이것이 종료되고 몰이하는 기병이 철수하면 백성들의 사냥을 허락한다. 이때 몰이에 쫓긴 짐승은 다 죽이지 않고, 이미 화살에 맞은 것은 다시 쏘지 않는다. 또 면상(面上)은 쏘지 않고, 털을 자르지 않으며, 사냥터 바깥으로 나간 것은 쫒지 않는다.&lt;br /&gt;
&lt;br /&gt;
사냥이 끝날 무렵, 병조에서 사냥터에 깃발을 올리면 어가와 여러 장수의 북을 크게 치고 군사들이 함성을 지른다. 잡은 짐승은 모두 깃발 아래 모으고 군사들은 깃발 왼쪽에 선다.&lt;br /&gt;
&lt;br /&gt;
큰 짐승은 관(官)에서 바치고 작은 짐승은 개인이 갖는다. 사자(使者)를 보내 잡은 짐승을 종묘에 바쳐 제사를 지내고, 나머지는 그 자리에서 요리해 연회를 베푼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lt;br /&gt;
*정재훈, 「조선시대 국왕의례에 대한 연구- 강무(講武)를 중심으로-」, 『한국사상과 문화』50, 2009.      &lt;br /&gt;
&lt;br /&gt;
[[분류:왕실]][[분류:왕실의례]][[분류:군례]][[분류:의식·행사]][[분류:대한민국]][[분류:조선]]&lt;/div&gt;</summary>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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