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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간룡(幹龍)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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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22T18:32:06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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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개념용어|대표표제=간룡|한글표제=간룡|한자표제=幹龍|대역어=|상위어=|하위어=농(壟), 지각(枝脚), 지룡(支龍), 지룡(枝龍)|동의어=대간(大幹)|관련어=원룡(元龍), 정룡(正龍), 정맥(正脈), 주룡(主龍)|분야=생활·풍속/풍수|유형=개념용어|지역=대한민국|시대=조선|왕대=|집필자=김혜정|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13824|실록연계=[http://sillok.history.go.kr/id/kda_11507015_002 『세종실록』 15년 7월 15일], [http://sillok.history.go.kr/id/kda_11507027_001 『세종실록』 15년 7월 27일], [http://sillok.history.go.kr/id/kga_11009007_003 『세조실록』 10년 9월 7일], [http://sillok.history.go.kr/id/kda_12704004_003 『세종실록』 27년 4월 4일], [http://sillok.history.go.kr/id/kva_11609011_001 『정조실록』 16년 9월 11일]}}&lt;br /&gt;
&lt;br /&gt;
용의 정맥(正脈)으로 나무의 큰 줄기와 같이 산의 큰 줄기가 되는 용맥.&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간룡은 지룡(枝龍)에 상대되는 말로써 나무의 줄기[幹]와 가지[枝]에 빗대어서 표현한 것이다. 즉 간룡은 인체의 척추와 같이 중심이 되는 지맥을 말한다. 풍수지리에서는 산의 중심부를 뚫고 뻗어 내려온 지맥을 받아서 그곳에 입지를 정하면 충만한 생기를 오롯이 받기 때문에 길지가 된다고 본다. 조선왕조에서 궁궐과 능 선정에서 간룡인가 지룡인가를 살피는 것은 생기가 충만하여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는 정도를 중시하는 외에, [[종법(宗法)]]을 중시하는 유교적 분위기의 영향도 컸다.&lt;br /&gt;
&lt;br /&gt;
=='''내용 및 특징'''==&lt;br /&gt;
&lt;br /&gt;
간룡의 땅은 그 규모에 따라 도읍지, 중소대도시, 마을 혹은 제왕을 있게 하는 혈이 될 수 있다. 간룡과 지룡을 살피는 까닭은 용에 흐르는 지기의 역량을 살피기 위함이다. 간룡과 지룡이 명확해지면 적서(嫡庶)가 분명해지고, 적서가 분명해지면 그 용의 역량이 보인다고 풍수서들은 간룡의 의미를 정리한다.&lt;br /&gt;
&lt;br /&gt;
간룡은 [[정룡(正龍)]]이라고도 하는데, 곧고 올바르게 뻗은 줄기로서 정기(正氣)를 받아 나가고 그 곁으로 무리의 산이 조공(朝恭)하고 포위하는 것으로 대개 뭇 산줄기들의 중앙에 위치하여 안정과 조화감을 준다. 그 기세는 생동적이며, 수려하되 웅장해야 한다. 간룡에 터를 잡아야 충신열사, 고관대작, 현인군자, 어진 효자가 나오는 혈이 형성된다고 믿었기에 조선왕실에도 궁궐이나 왕릉 선정에 간룡을 중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lt;br /&gt;
&lt;br /&gt;
1433년(세종 15) 최양선(崔揚善)이 경복궁 터가 진혈처가 아니라는 상소를 올려 왕과 대신들, 그리고 상지관들 사이에서 경복궁 진혈(眞穴) 여부에 대한 논쟁이 일었을 때 그 진혈·가혈을 구분하는 근거가 바로 간룡이었다. 즉 경복궁으로 이어지는 내룡이 간룡인가 승문원(承文院) 터로 이어지는 내룡이 간룡인가에 따라 그 진혈·가혈의 여부가 판가름 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간룡은 길고 지룡은 짧으며, 간룡은 강하고 지룡은 미약하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경복궁으로 이어지는 북악산이 간룡이고, 승문원으로 이어지는 지맥은 미약하여 지룡이 된다는 것이 당시 다수 의견이었다([http://sillok.history.go.kr/id/kda_11507015_002 『세종실록』 15년 7월 15일]). 조선은 지리의 학설을 외면할 수가 없는 나라이며, 지리를 쓰려면 간룡과 지룡을 알아야 한다는 세종의 말도 간룡을 중시한 면모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da_11507027_001 『세종실록』 15년 7월 27일]). 이러한 간룡·지룡 논의는 1464년(세조 10)에 다시 한 번 일어난다([http://sillok.history.go.kr/id/kga_11009007_003 『세조실록』 10년 9월 7일]).&lt;br /&gt;
&lt;br /&gt;
간룡과 지룡 개념은 왕릉 선정에서도 중요한 근거가 된다. 1445년(세종 27) [[헌릉(獻陵)]] 서쪽에 있는 곳으로 세종의 수릉(壽陵)을 정하고자 할 때 그곳은 간룡이 아니어서 쓸 수 없다는 의견이 나온다. 문제의 핵심은 대모산 아래 두 개의 간룡이 있을 수 없으므로 두 개의 능을 쓸 수 없다는 것이다. 간룡과 지룡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충분히 제기될 수 있는 문제이다. 이에 대해 당시 대신들과 지관들은 우의정하연(河演)과 예조 판서김종서(金宗瑞), 그리고 정인지(鄭麟趾) 등이 현장을 답사한 뒤 상서를 올리는데 그 핵심 문장은 다음과 같다. 『동림조담(洞林照膽)』「재혈편(裁穴篇)」에 무릇 산머리에서 두 갈래로 내려온 것은 두 머리가 혈이 된다. 대모산의 바른 용이 몸을 헤치고 곧게 내려와서 두 혈을 나누어 만들었으니, 바른 자리와 곁자리의 구분이 없는데, 어찌 낫고 못함을 의논할 수 있느냐라는 것이었다([http://sillok.history.go.kr/id/kda_12704004_003 『세종실록』 27년 4월 4일]).&lt;br /&gt;
&lt;br /&gt;
만약 대모산 주산에서 뻗어 내려오는 내룡을 간룡과 지룡으로 나누어버린다면 헌릉이 간룡이 되고 세종의 수릉 터가 될 곳은 지룡이 되어 능을 쓸 수 없다. 그러나 하연과 김종서 등은 헌릉 옆에 세종의 수릉을 만들기 위해서 이곳 대모산 아래에서는 간룡과 지룡의 구별이 없고, 두 개의 맥 혹은 두 개의 줄기가 있어 두 개의 혈이 생겼다는 논리를 편다. 즉 간룡으로 내려온 맥이나 지룡으로 내려 온 맥이나 지맥이 분명하면 쓸 수 있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종법 인식을 바탕으로 하거나, 간룡 중심의 판단이라면 헌릉 옆에 세종의 수릉을 쓸 수 없게 된다.&lt;br /&gt;
&lt;br /&gt;
=='''변천'''==&lt;br /&gt;
&lt;br /&gt;
간룡이란 용어는 『인자수지(人子須知)』에서 풍수지리의 주요 내용으로 다루어지고 있고 큰 맥은 삼대간룡을 중심으로 중국의 형세를 논한 것이다. 조선시대에 풍수지리 술법과 관련된 간룡은 초기에 언급이 되지만 이후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도읍풍수나 양기풍수 등에 대한 논의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후 정조 대에 간룡이 언급되지만([http://sillok.history.go.kr/id/kva_11609011_001 『정조실록』 16년 9월 11일]), 이후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동림조담(洞林照膽)』      &lt;br /&gt;
*『의룡경(疑龍經)』      &lt;br /&gt;
*『지리정종(地理正宗)』      &lt;br /&gt;
*김두규, 『조선 풍수학인의 생애와 논쟁』, 궁리출판사, 2000.      &lt;br /&gt;
*장성규, 『백두대간의 역사』, ㈜한국학술정보, 2008.      &lt;br /&gt;
*徐善繼·徐善述, 『地理人子須知』, 臺灣 竹林書局, 2007.      &lt;br /&gt;
&lt;br /&gt;
=='''관계망'''==&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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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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