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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가동(歌童)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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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ilman: XML 가져오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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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XML 가져오기&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lt;br /&gt;
&lt;br /&gt;
{{직역|대표표제=가동|한글표제=가동|한자표제=歌童|대역어=|상위어=|하위어=|동의어=|관련어=남악(男樂), 동남(童男), 무동(舞童), 악공(樂工), 장악원(掌樂院)|분야=문화/예술/음악|유형=직역|지역=|시대=조선|왕대=|집필자=이윤정|제정시기=세종대|폐지시기=|소속관서=장악원|관품=|실록사전URL=http://encysillok.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00000027|실록연계=}}&lt;br /&gt;
&lt;br /&gt;
조선시대 궁중의 연례(宴禮) 때 노래를 부르던 나이 어린 남자 악인(樂人).&lt;br /&gt;
&lt;br /&gt;
=='''개설'''==&lt;br /&gt;
&lt;br /&gt;
궁중 연례 때 노래를 부르던 나이 어린 남자아이로, 장악원 소속이다.&lt;br /&gt;
&lt;br /&gt;
이들은 대개 서울의 각사에 소속된 노비나 양인에게 출가한 자의 소생으로, 15세 정도의 어린아이 중에서 택하여 음악을 익히고 재주를 갖춘 후 회례연과 같은 연회에서 정재를 추게 하거나 노래를 부르게 하였다. 또한 나이가 들면 다시 악공(樂工)으로 이속(移屬)시키고, 전의 근무 연한까지 함께 계산하여 [[거관(去官)]]하게 하였다. 후에 악공이 되어 연주와 노래를 담당하는 예는 순조·헌종·고종 때의 여러 가지 진찬의궤(進饌儀軌)와 진연의궤(進宴儀軌) 등에서 많이 발견된다.&lt;br /&gt;
&lt;br /&gt;
가동의 수는 시기에 따라 가감이 있었으며, 성종 때 장악원에 소속된 가동의 수는 10명이었다. 이들은 모두 용모, 성음, 성품 등을 살펴 공노비 중에서 엄격하게 뽑혔다. 『악학궤범』 권2와 권9의 기록을 살펴보면, 행사 때 가동들은 초립(草笠)을 쓰기도 했고, 자줏빛 명주로 만든 두건을 쓰기도 했으며, 검은색 가죽신을 신고, 허리에 광다증대(廣多繒帶)를 띠었다.&lt;br /&gt;
&lt;br /&gt;
=='''변천'''==&lt;br /&gt;
&lt;br /&gt;
태종 때 하륜(河崙)이 동남(童男)과 남악(男樂)을 두자고 하였으나 시행되지 못하였고, 세종 때에 비로소 두게 되었다. 남악을 출연시키게 된 동기는 궁중에서 사신을 맞이할 때 여악(女樂)을 출연하게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지적된 데에서 비롯된다.&lt;br /&gt;
&lt;br /&gt;
특히 성종 때에는 가동이 [[정전(正殿)]]의 예연(禮宴)뿐만 아니라, 곡연에서 주악을 담당하였으며, 1485년(성종 16)에는 거둥[行幸] 중에 설치한 주정(晝停)에서도 연주와 노래를 담당하였다. 이후 1488년(성종 19)부터는 임금이 거둥할 때 어가를 따르기도 했으나, 재변이 있을 때는 중단되었다. 1492년(성종 23)에는 중국 사신 연향(宴饗) 때 주악을 담당하기도 하였으며, 주간뿐만 아니라, 야연(夜宴)에서도 가동들이 주악을 담당하였다.&lt;br /&gt;
&lt;br /&gt;
선조 때에 이르러서는 궁중의 연향뿐만 아니라, 관직에 있는 사람의 사가(私家)에서 베푸는 연회에서도 무녀 등과 함께 주악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가동은 조선말기까지 계속되었다.&lt;br /&gt;
&lt;br /&gt;
=='''의의'''==&lt;br /&gt;
&lt;br /&gt;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문종 때 박연(朴堧)은 종묘향사(宗廟享祀)에 조종의 성덕을 노래하는 데 청아한 음성의 가동이 없을 수 없고, 이웃 나라 사신을 위한 연악에는 반드시 노래가 있고 춤이 있는데, 맑은 소리와 아름다운 자태를 위해서라도 어린 나이의 가동이 없을 수 없다고 가동이 필요한 이유를 역설하고 있다[『문종실록』 즉위년, 11월 22일 7번째기사]. 여기에서 가동의 배경과 존재의 의의를 살필 수 있다.&lt;br /&gt;
&lt;br /&gt;
=='''참고문헌'''==      &lt;br /&gt;
*『악학궤범(樂學軌範)』      &lt;br /&gt;
*대한민국예술원 편집부, 『한국음악사전』, 대한민국예술원, 1985.      &lt;br /&gt;
*김수경, 「고려말 악공·기녀의 위상과 음악사적 의의」, 『한국문화연구』 15, 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문화연구원, 2013.      &lt;br /&gt;
&lt;br /&gt;
=='''관계망'''==&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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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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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name>Silma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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