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訓民正音)
주요 정보 | |
---|---|
대표표제 | 훈민정음 |
한글표제 | 훈민정음 |
한자표제 | 訓民正音 |
분야 | 국어학 |
유형 | 문헌 |
지역 | 한국 |
시대 | 조선 |
왕대 | 세종(世宗) |
집필자 | 박종국 |
저편자 | 세종, 정인지(鄭麟趾) |
간행처 | |
간행년일 | 1446년(세종 28) |
권책수 | 1책 |
소장처 | 간송미술관 등 |
조선왕조실록사전 연계 | |
훈민정음(訓民正音) | |
조선왕조실록 기사 연계 | |
『세종실록』 25년 12월 30일, 『세종실록』 28년 9월 29일 |
1446년(세종 28) 9월에 나온 훈민정음에 관한 이론서.
개설
『훈민정음』은 세종(世宗)이 나라 말을 소리대로 적어 모든 백성들이 쓰고 읽을 수 있게 하고자 직접 창제한 ‘훈민정음’, 곧 ‘한글’을 반포할 때인 1446년(세종 28) 9월에 나온 훈민정음에 관한 이론서이다. 한지에 인쇄하여 1책으로 묶은 목판본이다. 전문이 한글 낱자(자모)와 예(例)를 보인 낱내글자[音節文字], 또는 낱말을 제외하고는 모두 한문으로 되어 있어 한문본이라 한다. 그리고 이 책은 본문편(本文篇), 해례편(解例篇), 정인지 해례 서문으로 되어 있는데, 그 내용을 기록한 책의 장수는 모두 33장(66쪽)이다. 본문편은 모두 4장(8쪽)으로 1쪽 7간, 1간 1행, 1행 11자로 되어 있고, 해례편은 정인지의 해례서를 포함하여 모두 29장(58쪽)으로 1쪽 8간, 1간 1행, 1행 13자(정인지서는 12자)로 되어 있다. 『훈민정음원본(訓民正音原本)』, 또는 『훈민정음해례본(訓民正音解例本)』이라고도 부른다.
편찬/발간 경위
세종은 새로운 글자인 훈민정음 창제에 착수한 지 여러 해 만인 1443년(세종 25) 겨울에 그 작업을 마쳤다.(『세종실록』 25년 12월 30일) 이후 훈민정음을 반포하기 위하여 새로운 글자에 대한 해설서 편찬을 집현전(集賢殿) 대제학(大提學)정인지(鄭麟趾), 집현전 응교(應敎)최항(崔恒), 집현전 부교리(副校理)박팽년(朴彭年), 신숙주(申叔舟), 집현전 수찬(修撰)성삼문(成三問), 집현전 부수찬(副修撰)이개(李塏), 이선로(李善老) 등 집현전 학자 7인과 돈녕부(敦寧府) 주부(注簿)강희안(姜希顔)에게 명하였고, 1446년(세종 28) 9월 상한에 완성되었다.(『세종실록』 28년 9월 29일)
서지 사항
이 책은 현재 1446년에 출간된 초간본이 남아 있다. 수백 년 동안 자취를 감추었다가 1940년 7월경 경상도 안동군 와룡면 주하리이한걸(李漢杰)의 집에서 발견되어 서울전형필(全鎣弼)의 서재를 거쳐 국보 제70호로 지정되었다. 현재는 간송미술관에 소장 중이며, 1997년 10월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 책은 발견 당시 책의 앞 두 장(네쪽)이 빠져 있던 것을 나중에 보사(補寫)하였는데, 붓으로 쓸 때 실수로 세종의 서문 끝부분인 ‘편어일용이(便於日用耳)’를 ‘편어일용의(便於日用矣)’라고 잘못 썼고, 구두점도 몇 군데 잘못 찍었다.
이 외에 2008년 상주에서 동일한 판본의 『훈민정음』이 발견되었는데,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훈민정음』보다 보존상태가 좋아 세간의 관심을 받고 있다. 그러나 소유권자를 둘러싼 소송이 벌어지면서 공개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구성/내용
『훈민정음』의 내용은 본문편, 해례편, 정인지 해례서로 나누어서 보면, 본문편인 일명 예의편(例義篇)에는 첫째 훈민정음이라는 권두 서명에 잇대어 새 글자를 만들게 된 취의를 밝힌 반포문격인 세종의 서문이 실려 있다. 둘째 새로 만든 글자인 초성의 기본 음소 17자(ㄱㅋㆁ ㄷㅌㄴ ㅂㅍㅁ ㅈㅊㅅ ㆆㅎㅇ ㄹㅿ) 및 병서 6자(ㄲㄸㅃㅉㅆㆅ : 각자 병서)를 포함한 23자와 중성 11자(ㆍㅡㅣㅗㅏㅜㅓㅛㅑㅠㅕ)의 소리값을 규정하였다. 셋째 훈민정음 28자의 여러 가지 운용법을 설명하였는데, 종성에는 다시 초성 글자를 쓴다는 것, 순경음(脣輕音) 되는 법과 병서를 규정, 중성 글자가 초성 글자와 결합할 때의 위치, 글자는 합해야(초성·중성·종성) 소리를 이룬다는 것, 사성(거성·상성·평성·입성)의 표시법 등이 그것이다.
해례편은 제자해(制字解)·초성해(初聲解)·중성해(中聲解)·종성해(終聲解)·합자해(合字解)·용자례(用字例)로 나누어져 있다.
첫째 제자해에서는 (1)새 글자를 만든 대원리를 설명하였다. (2)초성(기본 음소) 17자를 만든 방법을 말하였다. (3) 초성 17자를 오행(五行), 계절, 오음(五音)에 결부시켜 말하였다. (4)초성 23자를 전청(全淸 : ㄱㄷㅂㅈㅅㆆ)·차청(次淸 : ㅋㅌㅍㅊㅎ)·전탁(全濁 : ㄲㄸㅃㅉㅆㆅ)·불청불탁(不淸不濁 : ㆁㄴㅁㅇㄹㅿ) 등 청탁(淸濁)으로 분류하고, 전탁과 순경음이 되는 방법과 소리값을 설명하였다. (5)중성은 11자인데 그 중에 기본 글자인 삼중성(ㆍㅡㅣ)의 소리값과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를 상형했다는 것을 밝혔다. (6)기본 글자를 배합하여 초출자(初出字)인 중성 4자(ㅗㅏㅜㅓ)를 만든 이유와 그 소리값을 밝히고, 재출자(再出字)인 중성 4자(ㅛㅑㅠㅕ)는 각각 초출자와 혀의 위치와 혀의 높낮이가 같으나, 다만 모두 기본 글자의 하나인 ‘ㅣ’자와 결합된 중성 글자임을 밝혔다. (7)초출자·재출자를 만든 까닭을 밝혔다. (8)중성자의 배열을 음양으로 나누어 설명하였는데, 특히 초출자와 재출자에 대하여 설명하고, ‘ㆍ’가 초출자와 재출자에 다 있는 것은 양이 음을 거느려 만물에 두루 흐르는 것과 같다 하였으며, 재출자가 모두 사람을 겸한 것은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 되어 능히 음양에 참여하기 때문이라 하였다. (9)기본 중성 세 글자(ㆍㅡㅣ)는 하늘·땅·사람[天地人]에서 본을 따 삼재(三才)의 이치를 갖춘 것으로 이 세 글자는 이를 배합한 여덟 글자의 근원이 되는데 ‘ㆍ’는 이 세 중성자 가운데서도 우두머리가 된다 하였다. (10)중성을 음양 오행과 위수(位數)에 결부시켜 설명하고 ‘ㅣ’ 중성자만이 홀로 위(位)와 수(數)가 없는 것은 사람을 본뜬 것으로 사람은 만물을 생성하는 근원이기 때문임을 밝히고, 이 ‘ㅣ’는 곧 중성의 중간이니 스스로 음양 오행 방위의 수가 있다고 하였다. (11)음과 양은 하늘의 이치이고, 강(岡)과 유(柔)는 땅의 이치라 하였다. (12)모든 중성자를 심천(深淺)과 합벽(闔闢)으로 설명하였다. (13)모든 초성을 허실(虛實 : 허는 후음, 실은 아음), 양체(颺滯 : 양은 설음, 체는 치음), 경중(輕重 : 순음의 경중을 말함)으로 설명하였다. (14)초성과 종성이 낱내의 부음(副音)으로 동일성임을 땅의 도리에 비겨 설명하였다. (15)초성, 중성, 종성이 합하여 낱내를 이루는 것을 동정(動靜)에 비겨 설명하였는데, 사람은 동정을 겸하였다고 하였다. (16)음양 오행을 오상(五常)과 오장(五臟)에 결부하여 설명하였다. (17)초성과 하늘, 종성과 땅, 종성과 사람을 결부시켜 설명하였다. (18)대개 자운(字韻)의 요점은 중성에 있으니, 초성과 종성이 합하여 소리[聲]를 이루는 것이라 하였다. (19)초성·종성을 건(乾)에 비겨, 건은 곧 하늘인데, 음양으로 나뉨을 설명하였다. (20)네 계절을 원형이정(元亨利貞)에 대비하고 이들이 순환함을 가리켜 설명하였다.
둘째 초성해에서는 (1)훈민정음의 초성은 곧 운서(韻書)와 자모(字母)라고 규정하고, 성음(聲音)이 이로부터 나므로 모(母)라 하였고, (2)어금닛소리 ‘군(君)’자의 초성은 ‘ㄱ’이니, ‘ㄱ’이 ‘ᅟᅮᆫ’과 더불어 ‘군’이 된다 하며, 다른 초성들도 이와 같은 방법으로 된다고 설명하였다.
셋째 중성해에서는 (1)중성은 자운의 가운데에 있어 초성과 종성을 합하여 소리를 이루는 것이라 하고 그 예를 보였으며, (2)두 글자합음의 규정과 한 글자 중성[一字中聲]에 ‘ㅣ’가 합한 글자 10개 및 두 글자 중성에 ‘ㅣ’가 합한 글자 4개를 설명하였다.
넷째 종성해에서는 (1)종성은 초성과 중성을 이어서 자운을 이루는 것이라며 그 보기를 보였고, (2)소리에는 완급의 다름이 있으므로 평성(平聲)·상성(上聲)·거성(去聲)은 그 종성이 입성(入聲)의 촉급(促急)함과 같지 않다고 하였고, (3)불청불탁의 글자는 그 소리가 세지 않으므로 종성에 쓰면 평성·상성·거성에 맞고, 전청·차청·전탁의 글자는 그 소리가 세므로 종성에 쓰면 입성에 마땅한 것이니, ‘ㆁㄴㅁㅇㄹㅿ’의 여섯 글자는 평성·상성·거성의 종성이 되고, 그 나머지는 모두 입성의 종성이 된다고 하였고, (4)그러나 ‘ㄱㆁㄷㄴㅂㅁㅅㄹ’의 여덟 글자만으로 종성을 넉넉히 쓸 수 있다 하고, ‘ㅅ’자로 두루 쓸 수 있는 보기를 보이고 ‘ㅅㅈㅿㅊ’ 종성에서 ‘ㅅ’자만 쓰는 것과 같다 하고, 또 ‘ㅇ’은 소리가 맑고 비었으니 반드시 종성에 쓰지 않아도 종성이 소리를 이룰 수 있다 하고, ‘ㄷㄴㅂㅁㅅㄹ’ 글자의 종성 쓰기의 보기를 보였고, (5)오음(五音)의 완급이 각각 절로 상대가 된다 하고, 반설음 ‘ㄹ’은 우리말에만 쓰이며 한자음에는 쓰이지 않는다 하였다.
다섯째 합자해에서는 (1)초성·중성·종성의 세 소리가 합하여 낱내 글자를 이룬다는 원칙을 말하고, 이 세 소리가 합하여 낱내 글자를 이룰 경우 각각 쓰는 위치를 구체적으로 말하였다. (2)병서의 규정, 곧 합용병서와 각자병서의 서법을 말하였다. (3)한자와 우리말(글자)을 섞어 쓸 경우 한자음에 따라서 중성자의 ‘ㅣ’나 종성자의 ‘ㅅ’으로 보충하는 일이 있음을 보기를 들어 설명하였다. (4)우리말의 평성·상성·거성·입성의 보기를 들어 설명하고, 이 표시는 글자의 왼쪽에 점을 찍어 표시하였는데, 우리말의 입성은 일정하지 않아서 평성 혹은 상성과 혹은 거성과 비슷하다는 것을 보기를 들어 설명하였으며, 점을 찍는 것은 평성·상성·거성의 경우와 같다고 하고, 한자의 입성은 거성과 서로 비슷하다고 말하였다. (5)사성의 성조(聲調)를 설명하고 이를 네 계절에 결부시켜 설명하였다. (6)초성의 ‘ㆆ’과 ‘ㅇ’은 서로 비슷하니, 우리말에서는 통용할 수 있다고 하였다. (7)반혓소리에는 가볍고 무거움의 두 소리[二音]가 있으나, 운서의 자모는 한 가지뿐이며, 또 우리나라 말에서는 가벼운 소리와 무거운 소리를 가르지 않지만 다 소리를 이룰 수 있다 하고, 만일 이를 갖추어 쓰려면 순경음의 보기에 따라 ‘ㅇ’을 ‘ㄹ’ 아래에서 연서(連書)하면 반설경음(半舌輕音)이 된다고 하였다. (8)중성자 ‘ㆍㅡ’가 ‘ㅣ’에서 일어나는 소리[聲, 곧 겹홀소리]는 우리나라 말에서는 쓰임이 없으나, 아이들의 말이나 변야(邊野)의 말에서 혹 들을 수 있다고 하였다.
여섯째 용자례에서는 초성·중성·종성으로 나누어 실제 말을 표기하는 보기를 들었는데, 초성에 34개 낱말, 중성에 44개 낱말, 종성에 16개 낱말을 훈민정음으로 제시하였다.
정인지의 해례 서문에서는 (1)천지 자연의 소리가 있으면 반드시 천지 자연의 글이 있는 법이라는 말을 서두에서 밝혔다. (2)각 나라마다 제각기 제 말에 맞는 글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였다. (3)우리나라는 예악문장(禮樂文章)이 중국과 견줄 만하나, 한자는 우리 글자가 아니므로 한자를 가지고는 우리말을 적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하였다. (4)신라설총(薛聰)이 지었다는 이두도 한자를 빌어 쓴 것이므로 한자 못지 않게 불편하여 훈민정음을 새로 만들었다는 이유를 설명하였다. (5)정음(正音) 28자는 세종대왕이 1443년(세종 25) 겨울에 창제하였는데, 간략한 보기와 뜻을 들어 보이고, 이름을 훈민정음이라 하였다고 밝혔다. (6)훈민정음은 꼴을 본뜨되 글자는 옛날의 전자(篆字)를 모방하고, 소리를 따라서 음 일곱 가락[七調]에 어울리게 하니, 삼극(三極)의 뜻과 이기(二氣)의 묘함이 다 포괄되어 있다 하였다. (7)훈민정음은 평이하고 실용적인 글자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우수성을 여러 각도에서 설명하였다. (8)세종대왕의 명에 따라 훈민정음 해례 편찬에 참여한 이는 집현전 대제학정인지를 포함하여 최항(崔恒), 박팽년(朴彭年), 신숙주(申叔舟), 성삼문(成三問), 이개(李塏), 이선로(李善老) 등 집현전 학자 7인과 돈녕부 주부강희안(姜希顔) 등이라 말하고, 해례는 모든 사람이 잘 알 수 있도록 자세히 해석을 가하였으므로 이를 보는 이로 하여금 스승이 없어도 훈민정음을 스스로 깨닫게 하였을 뿐이지, 그 깊은 근원과 정밀한 뜻의 묘한 것에 있어서는 편찬자들인 자기들은 능히 나타낼 수가 없다고 하였다. (9)세종은 하늘이 내린 성인(聖人)으로 제도와 베풂이 모든 임금보다 뛰어났다고 하였다. (10)세종이 훈민정음을 지은 것은 자연에서 이룩한 창제라면서 동시에 세종의 영명한 성덕(聖德)을 기렸다. (11)이 해례 서문은 정인지 자신이 1446년(세종 28) 9월 상한에 썼다고 하였다.
이상은 『훈민정음』의 내용으로, 이 책의 한글 글자는 훈민정음 반포 당시의 글자꼴을 보여주는 점에서도 유명하다. 모든 글자 획이 붓글씨의 영향을 받지 않고, 현대 돋음 글자의 모습을 보인다. 중성 ‘ㆍ’나 ‘ㆎ’ 등의 점이 완전히 둥근 것도 특징이다.
한편 현재 알려진 훈민정음의 판본을 한문본과 언해본으로 나누어 말하면, 한문본은 세종 당시에 된 『훈민정음』 곧 『훈민정음원본』(훈민정음해례본)과 『세종실록(世宗實錄)』에 실린 『세종실록본(世宗實錄本)』, 세종 이후에 된 『배자예부운략본(排字禮部韻略本)』, 『열성어제본(列聖御製本)』, 『경세훈민정음도설본(經世訓民正音圖說本)』 등이 그것이다. 언해본은 『월인석보(月印釋譜)』 권1책 첫머리에 실린 『세종어제훈민정음(世宗御製訓民正音)』인 『서강대학본(西江大學本)』과 『희방사본(喜方寺本)』과 『박씨본(朴氏本)』(박승린씨본) 사본인 『일본궁내성본(日本宮內省本)』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세종실록본』에는 국내에 『태백산본(太白山本)』과 『정족산본(鼎足山本)』이 규장각(奎章閣)에 전한다.
의의와 평가
현존하는 『훈민정음』은 우리 문자학상 둘도 없는 귀한 문헌이다. 특히 국어학, 음성학, 음운론 등의 연구 자료는 물론 조선 초기의 언어와 표기법 연구 및 한글 글 자체 연구 등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참고문헌
- 『훈민정음』
- 『세종실록(世宗實錄)』
- 『세조실록(世祖實錄)』
- 『성종실록(成宗實錄)』
- 김민수, 『주해 훈민정음』, 통문관, 1957
- 김석득, 『우리말 연구사』, 정음문화사, 1983
- 김윤경, 『한국문자급어학사』, 동국문화사, 1954
- 문효근, 「훈민정음 제자 원리」, 『세종학연구』8,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98
- 박종국, 『훈민정음』, 정음사, 1976
- 박종국, 『말본사전』, 정음사, 1980
- 박종국, 『훈민정음 예의에 관한 연구』, 1982
- 박종국, 『세종대왕과 훈민정음』,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84
- 박종국, 『국어학사』, 문지사, 1994
- 박종국, 『한국어발달사』, 문지사, 1996
- 박종국, 『세종대왕기념관』, 세종대왕기념사업회, 2001
- 박종국, 『한글문헌해제』, 세종대왕기념사업회, 2003
- 박종국, 『훈민정음종합연구』, 세종학연구원, 2007
- 박종국, 『한국어발달사증보』, 세종학연구원, 2009
- 박종국, 『우리 국어학사』, 세종학연구원, 2012
- 세종대왕기념사업회 편, 『한국고전용어사전』, 세종대왕기념사업회, 2001
- 안병희, 「중세어의 한글 자료에 대한 종합적인 고찰」, 『규장각』3, 1979
- 최현배, 『한글갈』, 정음사, 1942
- 최현배, 『고친 한글갈』, 정음사, 1961
- 허웅, 『한글과 민족문화』,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74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