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준헌(黃遵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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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말 외교 관료이자 사상가로 활동한 인물.

개설

황준헌은 주일청국공사관 참찬관으로 활동하며 조선 정부가 취해야 할 외교 전략을 담은 『사의조선책략(私擬朝鮮策略)』을 저술하여, 1880년 제2차 수신사로 일본을 방문한 김홍집에게 전하였다. 1882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주재 총영사, 1891년 싱가폴 주재 총영사 등 외교관으로 계속 활동하였다. 일본에서 활동하던 시기에 쌓은 견문을 바탕으로 『일본국지(日本國誌)』와 같은 저서를 저술하였다. 황준헌의 저술과 사상은 강유위·양계초 등 변법개혁파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그 역시 활발한 개혁활동을 펼쳤다.

활동 사항

황준헌은 1876년(광서 2) 거인(擧人)이 되었고 1877년 초대 주일청국공사하여장(何如璋)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참찬관으로 일본에서 외교 활동을 펼쳤다. 1880년 제4차 수신사김홍집(金弘集)이 일본에 갔을 때 공사하여장과 함께 그를 만나 국제 관계와 조선이 취해야 할 외교 전략을 논의하였다. 황준헌은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한 조선의 외교 전략으로 친중(親中)·연미(聯美)·결일(結日)을 주장하고, 이러한 자신의 의견을 정리한 『사의조선책략』을 저술하여 김홍집에게 전하였다(『고종실록』 17년 9월 8일). 『조선책략』의 내용이 알려지면서 조선의 척사파들이 크게 반발하여 황준헌과 그의 저서를 조선 내로 가져온 김홍집을 비난하였다(『고종실록』 17년 10월 3일)[ 『고종실록』 18년 2월 26일 4번째기사].

황준헌은 이후 조미수호통상조약(朝美修好通商條約) 체결 시에도 조약 초안을 작성하여 조선이 조약을 체결하는 데 참고하도록 하였다. 이후 1882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주재 총영사, 1890년 초 주영국공사 참찬(參贊)직에 임명되었다. 이듬해인 1891년에는 싱가폴 주재 총영사에 임명되어 외교관으로서 계속 활동하였다.

황준헌은 청일전쟁 이후 귀국하여 강유위를 비롯한 급진적인 신사, 관료층이 추진하고 있던 변법운동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개혁 사상을 실현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1895년 9월부터 강유위와 만나 강학회(强學會)에 합류한 황준헌은 양계초 등과 상해(上海) 『시무보(時務報)』 발행을 주도하였다. 1896년 광서제는 황준헌을 서호남안찰사(署湖南按察使)에 임명하였다. 그는 개혁파였던 순무(巡撫)진보잠(陳寶箴) 휘하에서 담사동(譚嗣同)·당재상(唐才常) 등 호남의 신사, 관료들과 협력하여 시무학당(時務學堂)·남학회(南學會)·보위국(保衛局) 등을 설립하고, 『상보(湘報)』를 창간하는 등 개혁정책을 추진해 갔다.

황준헌은 1898년 일본 공사에 임명되는 등 계속해서 광서제의 신임을 얻었으나 서태후에 의하여 무술정변이 일어나면서 파면되어 귀향하였다. 고향에 머무는 동안 일본으로 망명한 양계초와 지속적으로 교류하며 그의 사상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또 교육의 중요성을 깨닫고 고향에 가응흥학회의소(嘉應興學會議所)를 설립하여 교육 활동을 펼치기도 하였다.

학문과 사상

황준헌은 일본에서 외교관으로 활동하며, 명치유신 이후 일본의 변화상, 근대적 개혁의 성과 등을 살펴보았다. 이를 바탕으로 1879년 『일본잡사시(日本雜事詩)』를 저술하고, 1887년에는 『일본국지(日本國誌)』를 저술하여 1895년 간행하였다. 그는 이 두 저서를 통하여 일본의 역사와 문화, 명치유신 이후 일본이 추진한 근대적 개혁의 성과를 인정하고 화이론적 일본관·세계관을 탈피하였다. 그는 청국·일본·조선이 동일한 유교문화권이라는 인식하에 일본인이 제창한 아시아연대에 호응하였다. 그리고 이와 같은 아시아연대론을 바탕으로 『사의조선책략』을 저술하여, 조선과 청국·일본·미국이 협력하여 러시아를 공동으로 방어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는 강유위 등이 주도하였던 변법운동에 참여하면서 명치유신 이후 일본의 개혁을 참고로 한 자신의 개혁 구상을 실현하고자 하였다.

저술 및 작품

『사의조선책략(私擬朝鮮策略)』·『인경려시초(人境廬詩草)』·『일본국지(日本國志)』·『일본잡사시(日本雜事詩)』

참고문헌

  • 황준헌, 『조선책략』, 범우사, 2013.
  • 배경한, 「황준헌의 『조선책략』과 ‘아시아주의’」, 『동양사학연구』 127, 2014.
  • 조병한, 「청말 중국의 변혁사조와 근대 일본 인식」, 『사학연구』 88,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