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패안(紅牌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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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과 합격자들을 모아 합격증을 수여하는 방방의(放榜儀)를 거행할 때 홍패를 올려놓은 일종의 받침대.

개설

조선시대 문무과 합격자들에게는 홍패라는 합격증서가 발급되었다. 전통시대 관료제에서 과거를 통하여 관료로 선발된 것은 왕의 입장에서 보나 새로 선발된 신진 관료의 입장에서 보나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합격자를 공식적으로 알리고, 그들에게 그 증서를 수여하는 의식을 국가의 중요한 의례 가운데(중) 하나로 명시하였다. 그것이 바로 조선시대 「오례(五禮)」 가운데 가례의식(嘉禮儀式)의 문무과방방의(文武科放榜儀)로 드러난 것이다.

이 문무과방방의에 따르면 방방의가 거행되는 당일 문무과 합격자들에게 수여할 홍패를 한꺼번에 비치해 두었다가 절차에 따라 이조 정랑과 병조 정랑이 문무과 합격자 개인에게 일일이 나누어 주도록 되어 있었다(『세종실록』 16년 3월 7일). 이 문무과방방의에서 홍패안이라는 표현이 보이고, 1450년(문종 즉위년)에 예조에서 문과 전시의(殿試儀)에 대하여 아뢰는 기사에서 또 한 번 보였다(『문종실록』 즉위년 10월 6일). 여기에 기재된 홍패안은 당시 방방의를 통하여 급제자들에게 발급할 여러 건의 홍패들을 올려 둔 일종의 받침대 역할을 한 작은 탁자[案]를 가리켰다. 의식이 진행되는 절차에 따라 이 안을 들어 옮겨야 했으므로 그에 따른 인원도 미리 지정되어 있었다.

연원 및 변천

『고려사』「예지(禮志)」에도 국자감시 합격자 발표 의례인 동당감시방방의(東堂監試放牓儀)에 대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홍패안에 대한 내용은 보이지 않으므로 고려시대 방방의에서 홍패안과 같은 기물이 사용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조선시대에는 세종대에 문무과방방의를 제정하면서 홍패안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처음 등장하였고, 이후 정조대의 『원행을묘정리의궤』 등에도 홍패안에 대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으므로 조선시대에는 세종대 이래 지속적으로 방방의를 거행할 때 홍패안이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형태

구체적인 형태는 현재까지 전하고 있는 실물이나 문헌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규명되지 않았으므로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다만, 정조대에 그려진 『화성행행팔첩병(華城行幸圖八疊屛)』 가운데 「낙남헌방방도(洛南軒放榜圖)」가 있어 대략적인 형태를 추정해 볼 수 있었다. 이 그림 가운데 홍패들을 올려놓은 탁자 형태의 기물이 보인다.

    1. 00016409_그림1_「낙남헌방방도(洛南軒放榜圖)」, 『화성행행팔첩병(華城行幸圖八疊屛)』, 1795. (리움미술관 소장)

참고문헌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대사례의궤(大射禮儀軌)』
  •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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