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천의(渾天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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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대 우주관인 혼천설(渾天說)에 기초해 기원전 2세기경에 처음 제작된 천문 관측 기구.

개설

혼천의(渾天儀)는 일명 혼의(渾儀)·혼의기(渾儀器)·선기옥형(璇璣玉衡)이라고도 불렸는데, 고대 중국의 우주관인 혼천설에 기초를 두어 기원전 2세기경에 처음 만들어졌다. 혼천의라는 명칭은 중국 한나라 때부터 사용되었고, 그 이전에는 선기옥형 또는 기형(璣衡)이라고 불렸다.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 확실한 자료는 없으나, 삼국시대 후기에서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 만들어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내용 및 특징

천체를 관측하는 기기 중에 별의 위치 측정을 주 목적으로 하는 기기 중 가장 오래된 것이 중국에서 유래된 혼천의이다. 혼천의는 태양계의 행성을 비롯하여 천체의 위치를 측정하는 천문 기구로, 천체의 운행을 보여주는 우주 모델이면서 시간도 측정할 수 있는 일종의 천문시계이다. 왕권을 상징하며, 유교의 왕도 정치 이념을 구현하는 상징적인 도구로도 여겨져 동아시아에서는 중요한 천문의기로 다루어져 왔다. 선기옥형 혹은 혼의라고 불리기도 했으며 한국과 중국, 일본 모두 천체 관측 기구로 사용하였다.

혼천의를 처음 만든 나라는 중국이다. 기원은 중국 요순시대였다고 하나, 문헌상으로는 한 무제 때 낙하굉(落下閎)이 처음 만들었고, 후한 때 장형(張衡)이 혼천설이라는 우주론에 근거하여 혼천의를 제작하였다고 전한다. 한국에서는 1433년(세종 15)에 정초, 박연, 김진(金鎭) 등에 의하여 최초로 만들어졌다고 기록되어 있다(『세종실록』 15년 6월 9일). 제왕은 천문을 관측하여 백성들에게 농사철을 알려주어야 한다는 동양적 천문관인 관상수시(觀象授時)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며, 천문학이 발달하면서 새롭게 보완되고 변화되었다.

혼천의의 혼(渾)은 둥근 형태를 말하며, 구조는 세 겹의 동심 구면으로 되어 있다. 제일 바깥층에서 중심으로 지평환(地平環)·자오환(子午環)·적도환(赤道環) 등 세 개의 환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래 초창기 원시적인 혼천의는 두 개의 기본 환(環)으로 되어 있는데 그 목적은 천체의 위치를 적도좌표계인 입수도와 거극도를 측정하기 위해서이다. 두 환 중의 하나는 적도에 고정시킨 적도환이다. 이 환과 평행인 적도면에 주천도수로서 365.25도가 새겨져 있다.

지평환은 지평에 평행하며 천구를 상하로 양분하고, 자오환은 천구자오선과 일치하는 대원(大圓)을 이루고, 천구북극·천정·천구남극 등이 이 대원 상에 있어 지평환과는 지평에서 직각으로 만난다. 적도환은 천구적도와 일치하는 환으로서 자오선과는 직교하나 지평환과는 엇비슷하게 만난다. 이들 세 개의 환이 교착되어 그곳에서의 천구를 알 수 있고, 천구의 상하와 사방을 추측할 수 있는데, 이 환들을 육합의(六合儀)라 한다. 가운데 층은 황도환(黃道環)과 백도환(白道環)으로 구성되어, 해와 달 그리고 별을 관측할 수 있다. 따라서 가운데 층을 삼진의(三辰儀)라 하는데 여기서 황도는 태양의 길, 백도는 달의 길을 의미한다. 안쪽에는 적경쌍환(赤經雙環)·극축(極軸)·규관(窺管)으로 구성되며, 망원경과 같이 천체를 관측하는 규관을 통하여서는 동서남북 사방을 볼 수 있다. 이들 각 층의 각 환에는 필요한 수의 눈금을 표시하여 정확하게 관측하였다. 혼천의는 아침·저녁 및 밤중의 남중성(南中星), 천체의 적도좌표·황도경도 및 지평좌표를 관측하고 일월성신의 운행을 추적하는 데 쓰였다.

변천

한국의 혼천의는 삼국시대부터 있었다고 짐작하지만 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최초로 문헌상 보이는 것이 『세종실록』에 있는 ‘혼천의’이다. 기록상으로는 1432년(세종 14) 예문관 제학정인지, 대제학정초 등이 왕명을 받아 고전을 조사하고, 이듬해 6월에 정초·박연·김진 등이 새로 만든 혼천의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세종실록』 15년 6월 9일).

이 기간에 제작된 천문의기로는 혼천의와 간의 이외에도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혼상(渾象)·규표(圭表)와 앙부(仰釜)·천평(天平)·현주일구(懸珠日晷) 등의 해시계, 그리고 간의를 축소한 소간의도 있었다. 소간의가 만들어진 것은 1434년(세종 16)이었고, 이천·정초·정인지 등이 주도하였다. 혼천의는 목재 혹은 구리로 제작되었으며, 1657년(효종 8)에는 최유지(崔攸之), 1669년(현종 10)에는 이민철(李敏哲)과 송이영(宋以頴)이 각각 움직이는 혼천의를 제작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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